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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May 06. 2023

#14 유대인이 먹는 법, 코셔 음식

뉴욕 맨해튼

 국제선 비행기를 여러 번 타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보았을지 모르겠다. ‘코셔밀 kosher meal‘. 코셔식은 특수식에 들어가는 저염식, 채식, 완전채식(비건) 등 중 하나인데 건강상이 아닌 종교상 이유의 특수식이다.

 전에 싱가포르 저비용 항공사에서 일하던 때는 무슬림이 많던 싱가포르 특성상 할랄 음식이 일상적이었다. 거기에 익숙해질 때 즈음 두바이로 항공사를 옮겼다. 유대교 율법에 따른 ‘코셔 음식’을 보니 또 새롭고 호기심이 반짝했다. 뭔가 건강한 느낌에 특수식보다 ‘특별식‘같다고 해야 할까. 그러다 가끔 이런저런 이유로 되돌아 갤리로 온 코셔밀을 뜯어서 맛보곤 했는데, 음. 궁금증에서 그치셔도 괜찮을 듯하다, 하하.

기내식으로 처음 접해서였을까 내게 코셔음식은 푸석푸석한 무미건조 느낌으로 남아있었다.


 코셔 음식이 가장 많이 소비되는 곳이라면 물론 이스라엘이다. 이외 코셔음식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곳? 아니, 어떤 음식도 다 찾아볼 수 있는 거기, 뉴욕이다.

 두바이에서 뉴욕까지의 비행이라. 어디에서부터 건 뉴욕 비행은 힘들다. 승무원도 승객도 다 힘들다. 정말 별의별 사람이 있고 예상 가능하거나 그렇지 않은 모든 일이 다 일어나는 게 비단 뉴욕  도시 자체가 아니라 뉴욕행, 뉴욕발 비행이다. 큰 일보다는 사소한 일들이 사방에서 시시각각 터진다.

 한 번은 에어버스 380 큰 비행기에서 산소통 1개 제외하고 모두 사용한 적도 있다. 2층까지 통틀어 산소통이 16개가 넘고 하나의 산소통으로 보통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산소 공급이 가능한데 말이다. 착륙하기 전까지 나는 한 할아버지에게 산소를 제공하느라 마무리 정리 듀티는 하나도 못했다. 착륙할 때 즈음엔 내가 산소가 필요할 지경이었다.

 하여 웬만한 뉴욕 비행은 요리조리 피해 다녔는데, 일 년 정도 남동생이 많고 많은 곳 중 하필이면 뉴저지에서 인턴 근무를 했다. 내가 비행을 가면 뉴욕 중심의 중심, 맨해튼 6번가 호텔에 머무를 수 있으니 동생은 ‘옳다구나’싶은 날이 내 뉴욕행. 울며 겨자 먹기로 동생이 있던 일 년간 다섯 번 정도 뉴욕 비행을 했다. 오지게 힘들어도 지인이 아니라 내 피붙이가 있는 곳이라면 비행 자체가 힘이 나고, 남편도 자식도 없던 당시의 나는 동생에게 이것저것 퍼줄 수(?) 있는 누나 노릇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으니까.(호텔 위치가 좋으면 내가 정한 곳이 아니지만 생색은 내가 다 낸다.)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각, 만석을 넘어 오버부킹 overbooking 인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첫 서비스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한 크루가 말하길,

 “You know, 뉴욕비행은 둘째를 낳는 거랑 비슷해. 너무 예뻐서 또 낳으려고 가졌다가 낳을 때 깨닫는 거지, 그게 얼마나 힘든지 그제야 욕이 나오고. “

 아하하. 정작 본인도 아이를 낳아보지 않았고 출산에 어떤 고통을 비교하랴 싶겠지만, 뉴욕 비행은 그렇게나 만만치 않다.

 비건 vegan 밀도 많고 코셔 밀도 뉴욕행에서는 꽤 많이 실린다. 특수식이 워낙 많은 섹터라 주의요망. 뒤바뀌기라고 하면 사달 난다!


히브리어 ’ 카쉬롯 Kashrut‘의 영어식 단어인 ’ 코셔‘는 ’ 적합한, 허용된 ‘의 의미로, 엄격한 율법에 따라 만든 음식이 바로 그들에게 ’ 용인된 ‘ 음식이 된다.

아랍 문화가 더 이상 생전 처음 보는 특이한 무엇이 아닌 오늘에는 이슬람교인들이 먹는 ’ 할랄 halal’ 음식과 헷갈릴 수 있는데, 돼지고기를 금하고 육고기 피를 완전히 빼고 섭취한다는 등의 유사한 점이 있으나 코셔가 훨씬 엄격하다. 기내식을 받아보면 코셔는 음식 하나하나가 개별 포장되어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이슬람교가 유대교보다 나중에 생겨난 점 또한 두 가지를 같다고 볼 수 없기도)

 율법은 아주 세세하고 내용이 많다. 유대 음식 중 왜 그리 연어 음식 종류가 많은가 했더니, 지느러미와 비늘이 갖춰진 어류만 먹어야 한다는 율법이 있기 때문이었다. 유독 연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인 줄 알았지 뭐야.

 연체동물 낙지, 오징어, 조개는 절대금물이고 비늘이 없는 새우도 금한다. 허용된 육류는 ‘발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을 하는 짐승 고기’만으로 위가 1개인 돼지고기를 금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내가 가장 독특하다고 본 것이지만 유대인을 지인으로 둔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는 사항은 육류와 유제품을 동시에 섭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예 안 먹는 것이 아니라 ’ 동시 섭취‘가 안 된다. (왜 안 되는 가는 하나님의 명령이라…) 고기를 다 소화시킨 다음에야 유제품을 먹을 수 있다는 구약성경에 근거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고기패티에 치즈를 올리면 안 되고 햄이 올라간 피자에도 치즈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홀랜다이즈 소스에 베이컨 올린 에그 베네딕트도, 아니 스팸 김치볶음밥에 치즈도 안 되고… 물론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음식일뿐더러, 율법이란 단지 어떤 걸 먹고 안 먹고 보다 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신성한 규칙이니 그들은 아쉬울 것은 없으리라.(무려 613가지의 율법이 있다.)


 율법을 하나하나 보다 보면(그렇다, 궁금한 나는 읽어보는 사람이다) 먹을 수 있는 게 있나? 유대인들은 과연 뭘 먹고살지 더 궁금해진다. 하지만 뉴욕에 다다르면 역시 뉴욕이구나, 모든 음식이 맛있어지는 것이 바로 뉴욕이다.

19세기 동유럽 반유대주의가 심해지면서 대거 미국으로의 유입이 있었다.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지에서가 가장 많은데 미국인 중 약 4.8퍼센트가 조부모 중 한 명 이상이 유대인이라고 한다. 자연스레 그들이 먹는 음식 문화가 미국 곳곳에 자리 잡았다는 얘기.

 없는 음식 빼고 다 있는 뉴욕엔 우리에게 생소한 코셔 푸드가 모든 음식 중 하나가 되어 뉴욕 음식 문화를 구성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크게 유행한 소고기를 얇게 썰어 탑처럼 쌓아 빵 사이 끼운 패스트라미 샌드위치의 원조 ‘카츠 델리 kat’z delicatessen‘ 또한 코셔 음식점이다.  


 호텔까지 가는 버스에서 잠시 기절했던 나(를 포함한 모두)는 번진 아이라인을 아랑곳하지 않고 로비에 들어섰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있는 듯 복작복작한 뉴욕 한 복판 호텔 로비에서 그러나, 내  동생은 금방 눈에 들어온다.

 “헤이걸! 오우 누나, 이런 꼴로 비행한 거 아니지?”

 이놈아,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걸어온’ 줄 알아?

 라는 뜻을 담은 눈으로 흘겨만 본다. 말할 힘도 없거든.


한 숨 자고 나서 그 유명한 카츠 델리를 가보려고 길을 나섰지만 무슨 날이었던가, 그 널찍한 가게가 꽉 찼다. 맛집이고 뭐고 그날도 산소통 하나를 다 비워가며 승객을 돌보느라 음식을 못 챙겨 먹었던 나는 웨이팅은 없다, 다른 식당으로 동생을 이끌었다. 그리고 우연히 들어간 곳도 코셔 음식 전문 브런치 카페다.


 라키 latkes는 유대인의 명절 음식 중 하나로 양파, 달걀, 밀가루에 채 썬 감자를 섞어 튀기듯 부치는 감자전과 매우 흡사한 메뉴다.

 그 위에 사워크림, 생연어, 수란, 아보카도 허브로 마무리한 한 접시. 고기는 없으니 사워크림은 허용되는 식.

레몬즙이 넉넉히 뿌려져 있고 별다른 소스는 없어 깔끔한 재료의 맛들이 어우러진다. 거기에 바삭한 감자전이 기름칠을 적절히 해주고.

재료 맛이 강조된 요리를 즐기지 않는 초등학생 입맛의 동생은 토마토 스파게티를 쪼르륵 쪼르륵 라면 먹듯 해치웠다.


 맛있는 한 접시를 먹고 나니 코셔 음식에 대한 선입견도 사라졌다. 각종 제약 속에서도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내고야 마는 것, 뉴욕이다.


 한껏 즐거웠던 레이오버 후 돌아가는 비행은 다른 때보다 몸이 무겁고 두 세배 더 힘들지만 적어도 산소통이 절반은 남아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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