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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Mar 26. 2024

칠십 이일. 그때 우리는

빵오쇼콜라


 파리에서 알고 지냈던 동생과 통화를 해서 그랬는지,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보안 강화에 나섰다는 뉴스를 봐서 그랬는지

프랑스로 돌아가는 꿈을 꿨다.

파리에 머물렀던 기간은 1년 반 남짓뿐이라 ‘돌아간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지만,

요리를 본격적으로 배운 곳이자 남편을 만난 곳이면서, 코로나 팬데믹 한가운데를 지났던 도시라 체감은 한 삼 년쯤 된다.

꿈속에서는 특별히 뭘 한건 아니고

‘여기는 프랑스, 다시 왔다.’는 느낌만 남아있다.

깨고 나서 오히려 여운이 길게 남아 그때의 사진들을 들춰보았다.


1년 반,

코로나 때문에 연속적이지 않으나 절반은 요리 학교와 인턴십의 기간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봉쇄로 인한 몇 개월의 집콕과 뒤이어 코로나 속 피어난 남편과의 연애 기간으로 축약할 수 있다.

(주변 지인들이 ‘전쟁 통에도 아이는 태어난다더니 ‘라며 우리 만남을 진귀하게 봤다.)

나이 서른에 요리 배우러 멀리 떠난다는 딸이 걱정이던 엄마는 여러 번 나를 말리셨는데,

지금은 가길 백 번 잘했다며, 사위 사랑이 극진하다.

그러니까 엄마의 걱정은 딸이 노처녀가 될까 봐, 였던가.


남편은 이미 프랑스에 4년째 살고 있던 직장인이었다.

한국 포털 사이트의 프랑스 거주 중인 한국인 모임 카페에서 누군가 주도한 와인 모임에서 만나게 되었다.

말도 별로 없고 공통점도 전혀 찾을 수 없었던 그에게 관심이 가지 않았고,

그가 나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온 것도 아니었다.

인사치레로 잘 들어갔냐는 안부를 주고받다가 매일 메시지가 오갔고, 봉쇄 때문에 제대로 된 데이트도 못한 채 조금 이상한 ‘썸’을 탔달까.

사교 모임은 금지였으나 집에서 조용히 소규모로 만나던 당시 분위기, 와인 모임 멤버 몇 명과 비밀리에 모였다. 물론 그와 나도 함께.

그리고 그날부터 ‘1일’이라는 촌스러운 시작점을 끊고 오늘 여기와 있다.


“이럴 줄 알았나!”

요즘 남편이 나에게 자주 농하는 대사다.


“이럴 줄 알았겠나!”

나의 똑같은 대답이다.


배를 쓰담쓰담하고 있던 내 손 위로 자기 손을 올리며 오늘도 똑같이,

“트램 타고 집에 데려다줄 때, 이럴 줄 알았나!”


우리가 매주 가던 주말 장터에는 아침에 갓 구워서 가져온 빵이 가득했다.

나는 어떤 빵이든 좋아했지만 남편은 유독, 초코 스틱 두 개가 박힌 페스츄리 빵오쇼콜라를 좋아했다.

함께 먹었던 빵오쇼콜라는 만들어주지 못하지만,

그보다 소중한 아가는 만들었네.

매일 아침 빵을 먹고 저녁에 와인을 마시던 그때 우리는, 이럴 줄 몰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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