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리누나 Apr 14. 2024

오십 삼일. 천냥 빚은 못 갚을 남편

눈꽃 딸기 토스트

"느이 신랑은 이것저것 잘해주면서 말로 다 깎아먹는 스타일 같아."


어휴, 그렇게 공감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친구의 말이었다.

남편의 화법, 표현방식은 그가 내뱉는 말 그대로만 들으면 같이 못 살 사람.


'와이프가 요리 잘해줘서 좋겠어요.'라고 누군가 말하면 남편은, '글쎄 요새는 밥 하기 싫어하던데요, 저는 삼식인데.'라고 한다거나,

'자녀 계획은 어떻게 돼요?'라는 질문에 '둘은 낳아야죠.'라 대답하고, '둘 키우려면 육아 참여도가 높아야 해요.'라고 돌아오는 말에, '와이프가 알아서 하겠죠.'라고 한다거나.

실제로는 매 끼니 내가 밥상을 차리면 '잘 먹을게요.'로 수저를 들고 '역시 와이프 밥이 제일이야.'라 하고,

육아는 아직 안 해봤지만 집안일(가사뿐 아니라 가정에서 생기는 모든 문제)에 절대 관심 없는 사람이 아니다. 행동은 그리 안 하면서 왜 말은 안 예쁘게 하는지, 참.



어제 병원 검진 때, 아가 머리 크기가 조금 큰 편이라 추후 지켜보다가 더 커진다면 수술을 고려하자고 하셨던 담당의 선생님. 병원에서 나와서,


"머리가 크면 자연분만 훨씬 아프겠지, 그러다가 수술하게 되면 좀 억울하기도 하고."


아직 자연분만에 대한 결심은 못 한 채, 그런데 머리가 크다고 하니 더 걱정도 되어서 혼잣말하듯 남편에게 말했다.


"자연분만 그렇게 무섭나? 수술이 회복하는데 더 오래 걸리고, 마취 깨고서부턴 진짜 아프다."


집에 와서도 남편 말이 자꾸 생각나서 오늘에서야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난 안 겪어본 고통이고, 여보도 어떨지 모르는 강도의 출산을 그렇게 무섭냐고 물어보니까 좀 그래. 마치 자연분만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들리잖아."


 "아니, 난 수술을 해봤잖아.(고등학생 때 팔 부러져서) 몸에 칼 대는 게 생각보다 데미지가 크다니까."


 "여보는 수술만 해봤지, 자연분만 안 해봤잖아. 애 낳는 게 더 아플 수도 있지."


"그러면 제왕절개 해라."


"... 내가 수술을 하고 싶다는 말이 아니라니까? 그냥 여보가 내가 겪을 출산의 고통을 화장실 가는 일처럼 말하는 게 서운하다는 거지. 어차피 고통을 대신해 줄 수도 없는데 말이라도 공감의 표현을 해줬으면 한다고."


진작에 남편은 공감 표현에 아주 약하다는 걸 알기에 이런 실랑이는 내 기분만 상할 뿐이다. 연애 초반에는 내가 울어도 겨우 토닥거리는 것 밖에 할 줄 모르고, 내가 이런 점이 서운하다 해도 별다른 대답이 없는 모습에 오히려 내가 당황스러웠다. 이 사람은 공감능력이 아예 없나, 아니면 나에 대한 애정이 이 정도뿐이라 그런가 혼자 각종 시나리오를 만들게 했더랬다.

 진짜로 내게 충분한 관심이 없고 노력하는 모습을 못 봤다면 결혼까지 하지도 않았을 테다. 그저 표현과 위로에 서투르고 여자의 언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일 뿐, 묵묵히 내가 해달라는 건 대부분 곧장 해 준다. 산부인과도 혼자 간 적이 한 번도 없고, 아주 조금만 다쳐도 달려와서 약 바르고 밴드 붙여주는 사람인데. 그래도 말이 서운하게 들릴 때면 다른 건 잊고 서운해지게 되니 오늘도 약간 옥신각신,


 "자기가 그냥 덜 아팠으면 좋겠다는 거였어."


라는 말을 끌어낸 다음 서로를 꼭 끌어안고 마무리했다.



 




작가의 이전글 오십 사일. 외유내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