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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May 19. 2020

달콤한 한 입, 추억 한 입

세상의 모든 호떡

한국인이라면 호떡에 관련한 추억이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싶다.

고소하고 달달한 냄새로 유혹하는 호떡 장수를 지나치기란 '아내의 유혹' 수준이 아니던가?

(아직도 아내의 유혹이라니, 하하)

대다수가 어릴 때부터 먹어온 간식이라 그런지

호떡은 냄새만 맡아도 '응답하라 그 시절',

모두 자기네만의 추억을 소환한다.


밀가루 반죽에 달콤한 소를 넣어 굽는 요리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말로 풀어놓으면 사실 아주 기본적인 조리법이라

 세상 곳곳에 비슷한 것이 있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가까운 중국에는 달콤한 팥소를 넣은 전병이 있다.

'豆沙锅饼'에서 첫 두 글자 'dousha'는 '콩 소'인데 보통은 팥소가 들어있다.(가끔 하얀 콩일 때도 있다.)

널따란 전병에 팥소를 넣고 돌돌 말아 깨를 뿌려 썰어서 내어준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식감이 일품.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 등 중국인들이 이주한 동남아 여러 나라에도 비슷한 형태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일본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간식, 도라야끼  どら焼き가 있다.

동그란 핫케이크 사이에 팥을 넣은 샌드위치 느낌의 간식, 

무엇보다 폭신한 핫케이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호떡과 비교하면 기름기가 적어 빵에 가깝다.


베트남에서 튀긴 전병 또한 익숙한 맛이다.

'Banh Tieu'라고 불리는데 튀김 도넛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스트를 넣고 숙성한다는 점에서 호떡과 제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소는 여러 가지가 들어가지만 보통 녹두 소를 넣고 겉에 깨를 덮어 튀긴다.

시장이나 길거리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길거리 음식!


미국이 아무래도 'fluffy', 잘 부풀어 오른 팬케이크를 선호하는 한편(베이킹파우더를 이용한)

유럽은 얇은 크레이프가 지배적이다.


헝가리 전통 간식인 'Palacsinta'

몇 가지 레시피를 살펴봤는데 일반 크레페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달걀과 밀가루로 살짝 묽게 만든 반죽을 얇게 부쳐낸 크레이프 속에

각종 과일잼(살구잼 등)이나 달콤하게 만든 코티지 cottage 치즈를 넣고 돌돌 말아먹는 음식.


폴란드  Naleśniki 도 위 헝가리 버전과 아주 흡사하다.

반죽에 요구르트나 사워크림을 넣기도 한다는 게 조금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일반 크레이프와 비슷하게 만든다고 보면 된다.

폴란드 버전에는 자두나 블루베리 잼 혹은 그냥 설탕만 뿌려먹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치즈를 넣어 식사용으로 아침을 대신하기도 한다고.



프랑스의 크레이프는 너무 잘 알려진 터라 굳이 짚고 넘어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관광객들도 꼭 한 번씩 먹고자 찾는 메뉴로 얇게 부친 크레이프를 보통 두 번 접어 먹기 편하게 준다.

단연 누텔라가 가장 잘 팔리고 꿀이나 설탕을 넣는 것이 보통 메뉴.


조금 더 멀리 가보자.

 남미 베네수엘라 버전은 한 번쯤 해 먹어볼 만하게 흥미롭다.

주식이나 다름없는 옥수수를 갈아서 만든 반죽으로 부쳐먹는 것인데,

'Cachapas(카차파스)'가 그것이다.

옥수수 색감이 그대로 살아있는 노란 반죽 안에 치즈를 가득 넣어 접는다.

보통은 모차렐라 치즈를 넣는다.


우리 호떡처럼 세계 여러 나라의 호떡(편의상)들도 대부분 어릴 때부터 먹어왔다는 코멘트가 많이 보였다.

비교적 저렴한 밀가루와 약간의 과일, 설탕 등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말하자면 가성비 좋고 아주 '서민적인' 재료와 조리법이기 때문이리라.

그렇다고 해도

이 달콤한 한 입이 씁쓸해질리는 없을 거다.



나는 호떡장수가 파는 호떡보다 엄마가 직접 해주시는 호떡을 더 많이 먹고 컸다.

이스트 없이도 찹쌀가루를 섞어 쫀득함을 살린 엄마표 호떡은

살아있는 우리 집 전설.

엄마는 호떡장수만큼 빠르고 정확하게,

설탕 속이 빠지지 않게 틈을 주지 않고 잘 봉하신다.

열몇 개도 뚝딱 만들어내는 마술사였다.

삼 남매인 우리를 위해 엄마는 참 많이도 호떡을 구우셨던 걸로 기억한다.



귀리가루를 섞어 만든 파리에서의 내 호떡.

감자, 치즈, 쪽파를 넣은 것과

꿀, 황설탕, 호두를 넣은 두 가지 호떡이다.

내 버전의 호떡이 다른 사람에게 또 다른 기억을, 추억을 줄 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 호떡(비슷한 것들)이 가진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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