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한 나물

나물 비빔밥

by 파리누나


식용 가능한 풀, 잎, 채소 그리고 버섯까지도 나물이라 부른다.

질기거나 강한 향 때문에 숙채식, 즉 삶거나 데쳐서 무침으로 해 먹는다.

상대적으로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 더 많은 풀 종류가, 오래전부터 값비싼 육류보다 주변 산과 들에서 찾을 수 있는 나물을 먹는 문화가 발달한 것이겠다.

아흔아홉 가지의 나물만 알아도 굶어 죽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만큼,

종류도 많지만 영양소도 가득하여

요새 많이도 따지는 '가성비' 좋은 반찬임에 틀림없다.

그러고 보면 서양이라고 해서 나물이 없는 것도 아니다. 시금치, 물냉이, 루꼴라 등도 나물인 셈인데 먹는 방식이 다르니 나물이라 쉬이 불러지지 않는다. 나물이라고 하면 더 소박하고 풋내가 나야 할 것 같은 게, 그러니까 한국 맛이 나야 할 것 같다는 거다.



-말린 나물을 잔뜩 받았는데, 집에 놀러 올래요?


말을 튼 지 얼마 안 된 학교 동생에게 물었다.

아직 내게 존대를 하는 그 친구는 조금 당황해하는 것 같았다.

-아, 주말에 마침 룸메이트도 집에 없어서 친구랑 비빔밥 해 먹으려고 하던 참이거든. 여자 친구 데리고 와요.

-아 네, 물어볼게요.

엄마가 한국에서 보낸 택배를 받은 이튿날 동생을 본 거라 물어본 건데, 괜히 부담 준 게 아닐까 싶었다.

아, 이렇게 나도 모르게 불편한 어른이 되는 게 아닐까?

순간 별의별 생각까지 들었다. 나이 차이가 그렇게 나는 것도 아닌데, 나도 의기소침해져 버렸다.


그 날 저녁, 띠링.

번호만 알았던 그 동생이 보내온 메시지를 알리는 소리.

-누나, 초대해주신 거 몇 시쯤이에요? 주소 알려주시면 맞춰 갈게요!


모양 참 예쁜 케이크를 두 조각 사들고 온 사랑스러운 커플이 어색한 듯 예의를 차리며 앉았다.

한 시간 뜨거운 물에 불리고 각각 양념해서 볶아낸 다섯 가지 나물을 담고,

갓 지은 밥과 노른자를 살린 달걀 프라이. 그리고 간장에 잰 소고기를 볶아 만든 약고추장을 테이블에 올린다.

통새우를 넣고 부친 전 한 접시에 감자 듬뿍 넣은 된장국으로 빈 공간을 채워주기.


쌉싸름한 나물이 있고 단맛이 도는 나물이 있으며, 씹을수록 고소한 나물이 있다.

네 명이 둘러앉은 식탁은 그런 서로 다른 나물들의 만남과도 같았다.

고유한 맛을 가진 나물들이 어우러져 새로운 향과 맛을 내듯,

우리도 한 숟가락씩 먹을수록 새로운 분위기가 만들어지며 어우러졌다.

아주 어리지도 그렇다고 아주 어른도 아닌 유학생들이 소박하고 소중하게 즐기는 한 상.


-사실은 안 올 줄 알았는데, 다 같이 먹으니까 좋다.

-아 제가 나물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얼굴 뵌 적도 없는데 나물이란 소리 듣고 염치없게 바로 간다고 했어요, 헤헤.


복숭아빛 뺨을 가진 여자 친구는 더욱 발그레해지며 웃었다.

홍차를 끓여 달달한 케이크에 곁들이니, 자정이 되도록 이야기가 끊이지 않은 자리다.

수준급의 요리실력을 가진 동생이고, 마찬가지로 파티시에 경력이 몇 년인 여자 친구라 먹을 게 아쉬울 리 없는 커플. 그런데 말린 나물 몇 가지가 그들을 먼 걸음 달려오게 만들었다.


나물이라서 그렇고,

나물이 아니어도 그러할,

음식이 맺어주는 관계에 행복해진 저녁이다.


목이버섯은 고모부가 직접 따서 말리신 보물


keyword
이전 09화당신을 사랑하는 만큼 시간을 들인 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