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사랑하는 만큼 시간을 들인 요리

송아지 스튜

by 파리누나



‘Blanquette de Veau’, 직역하자면 '송아지 담요'라는 다소 해괴한 이름의 이 프랑스 요리로 말하자면,

우리 동양인에게는 낯설지 몰라도 최소한 삼백 년 넘는 역사를 가진 프랑스 고전 중의 고전 요리다.

오래 전해 내려오는 많은 요리가 그렇듯이 그 기원을 정확하게 찾기는 어려우나, 영국 왕실에서 일했던 빈센트 라 샤펠이라는 이름의 프랑스 요리사가 쓴 책에 등장하는 요리법이 원조라고 인정받고 있다. 이런저런 변형을 거치다가 19세기 이후에 이르러 오늘날 먹는 방법과 비슷한 생김새가 전국적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푸짐한 한 그릇이 매력적인 이 스튜는 오늘 어느 프랑스인에게 물어도 누구나 아는 전통 요리로 명실공히 자리매김하였다. 숟가락만으로 살코기를 푹 떠먹을 수 있을 만큼 부드러운 고깃살과 버터향이 감도는 진한 크림소스는 프랑스인들이 선호하는 조리방식이기도 하다. 프랑스 요리에 익숙하지 않은 이방인도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어 국제적인 요리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프랑스인들이 푸아그라에 포도주, 연어 스테이크를 썰고 치즈 몇 조각과 마카롱으로 식사를 마무리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절반만 맞다. 이들에게도 약간의 사치를 누리는 식사가 그러하다. 우리가 된장국과 김칫국으로 일상을 그리듯이 그네 평범한 사람들의 식탁에 오르는 음식도 스튜처럼 소박하다.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물어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프랑스 젊은이들도 ‘송아지 스튜‘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아는 체를 한다. 할머니 댁에 가서 커다란 냄비에 끓여 온 식구가 먹을 것만 같은 요리라나. 맛이 없지는 않은데 특별히 평소에 생각나는 음식은 아니라는 반응이, 조금 진부한 요리로 치부되는 느낌이다.

개인의 취향이 우선인 그들은 같은 식탁에서도 본인이 원하는 음식을 먹는 게 익숙하다. 유제품을 먹지 않거나 채식을 한다거나, 혹은 정해진 때에 먹지 않는 등 본인만의 방법, 신념에 따른 식사법을 당당하게 드러낸다. 트렌드에 걸맞은 음식을 선택, 소비하는 세대에게 스튜는 조금 낡아버렸다.

진한 소고기 스튜 ‘비프 부기뇽’이나 닭고기 와인 스튜 ‘꼬꼬뱅’등 대표적인 프랑스 고전 요리들은 대체로 최소 서너 시간 이상의 요리 시간이 필요하다.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요리가 넘치는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더 이상 이런 것들은 집에서 해 먹는 음식들이 아니다. 프랑스 슈퍼마켓에서 앞서 언급한 요리들을 즉석조리식품 형태로 판매하고 있음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간편식으로 나온 옛 요리들조차도 외면받고 판매대에서 가장 먼저 빠지는 식품은 와인, 치즈와 더불어 각종 빵과 파스타 면, 소스류 그리고 햄이나 소시지 등이다.

프랑스인들은 식사를 세 시간씩 한다더니, 이제 옛날 얘기일까. 패스트푸드점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고 배달 음식 서비스 오토바이도 우리나라 못지않게 많이 보이는 오늘의 프랑스 수도 파리. 서양 음식의 근간이자 미식의 나라인 프랑스도 사정이 이러하니, 마음이 살짝 아프다.


글쎄, 우리나라로 치면 프랑스 전통 스튜는 육개장과 잘 맞아떨어져 보인다. 우리 농산물과 고기로 은근하게 오래 끓이는 요리들, 우리나라 오랜 음식들에도 재료 맛이 충분히 우러날 시간을 주는 인심을 품은 것이 많다. 특히 육개장은 조선왕조 궁중음식에서부터 기록을 찾을 수 있으니 송아지 스튜보다 역사가 길다. 제대로 만들자면 질 좋은 양지머리로 육수부터 천천히 끓여 걸러내고, 고사리와 숙주나물 등 각종 채소를 일일이 손질해서 푹 고아내야 하는 시간이 곧 맛인 요리다.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아니 세계 많은 바쁜 도시가 그러하듯, 수고를 요하는 요리들은 한국 가정에서도 점점 안 하는 추세다. 띵동, 전자레인지 1분이면 국밥도 먹을 수 있다. 그래도 우리나라 밀레니얼들은 레트로 문화의 영향인지 구수한 순댓국, 갈비탕, 각종 찌개류 등 한식이 고리타분하다는 생각은 덜해 보이지만, 초록창에 검색을 한 번 해보자. ‘미역국 쉽게 끓이는 방법’,‘갈비찜 빨리 만드는 법’등 ‘쉬운 요리법’ 검색률이 높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일명‘자취요리’ 또한 인기 유입어다. 적은 재료로 빠르고 간편하게 한 끼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 편의점 간편 식품이나 냉동식품의 다양화는 말할 것도 없다.

어떤 것도 변하지 않을 수 없는 오늘이다. 사회, 문화 변화와 형편에 맞게 해 먹고사는 것이 당연하다. 전통 요리도 당시 사회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와 적당한 조리 방법의 조화로 탄생한 것들이다. 편의점 식품이 수많은 이들의 삶을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도 그러하다.

그런데 먹는 것도 소비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그 트렌드 회전율이 너무도 빠르다. 또한 문화 간 교류가 실시간인 오늘 우리가 먹는 음식들이 훗날‘전통요리’로 남겨질 수 있을지 의문과 걱정이 든다. 현재 남아있는 오래된 음식들이 전통 방식을 변형해야 할지라도 그것들이 살아온 시간보다 더 오래 남아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느 때보다 흔적을 남기기 편리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송아지 스튜를 만드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대략 이러하다. 먼저 송아지 어깨살, 가슴살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찬물에 넣고 끓인다. 올라오는 거품을 제거하고 불순물이 많은 이 물은 버린다. 송아지 육수를 넣고 고기를 다시 솥에 넣어 함께 끓이는데, 이때 샐러리, 당근, 양파를 듬성듬성 잘라서 넣는다.

소금 간을 약간 한 다음 45분에서 1시간 정도 끓인다. 들어간 위 채소들은 거의 뭉개져 버리기 때문에 요리에 함께 내지 않는다. 스튜에 곁들이는 부재료는 양송이버섯, 작은 알 양파, 당근 등으로, 먹기 좋은 크기도 자른다. 각각 다른 팬에서 넉넉한 버터를 넣고 조리하도록 한다. 가정에서는 일반적으로 다 같이 넣고 한 솥에 끓이는 것이 쉽지만, 익는 속도가 각기 다른 채소들을 존중하는 방법이다.

크림소스는 달걀노른자와 크림, 육수를 섞어서 살짝 되직하게 만든다. 여기에 부드럽게 조리된 송아지 고기만 건져서 소스와 합쳐 한 번 더 뭉근하게 끓인다. 조리한 채소들을 곁들여 접시에 담고, 삶은 감자나 쌀밥을 곁들인다.

재료 준비부터 완성하기까지 최소한 세 시간을 잡아야 하는 요리다. 그런데 바로 먹는 것보다 프랑스인들은 이 요리는 다음날 먹어야 더 맛있다고 입을 모은다. 오호, 이것은 마치 김치찌개도 바로 끓인 것보다 다음날 먹어야 맛이 드는 이치, 사골국이 하루 이틀 정도 지나야 깊어지는 것과 같지 않은가?

새로운 음식이란 없는 법. 전해지고 내려오고 지구를 몇 바퀴 돌고 돌아 자리 잡고 변형되는 것이 음식의 속성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들인 요리들은 대체로 배신하지 않더라. 오랫동안 남아있는 요리들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사골을 끓이기 시작한다고 겁먹지 말기를 바란다. 깊은 솥보다 더 깊은 어머니의 마음속에서부터 끓이시는 것이다.

시간을 들인 만큼 많은 이의 몇 끼를 책임질 수 있는 가장 서민적인 요리들이 결국 오래 남는다. 오늘, 소고기를 손으로 하나하나 찢어 육개장을 끓여보심은 어떨까. 여름 보양식으로 이만한 것이 없으니 백 년 후 여름을 위해 오늘의 육개장에 정성을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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