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위로하는 팥칼국수

뼛속에서 노래하는 한식 멜로디

by 파리누나


서양요리의 근간이라 하면 역시 프랑스다. 요리의 기본기를 다지겠다는 다부진 마음으로 당도해 넉 달째 파리 생활중인 나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보드라운 바게트와 수백 가지 치즈, 와인으로 행복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바이러스로 인한 두 달간의 격리기간 동안 한식이 생각나는 건 어찌할 도리가 없다.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된 한국 음식과 엄마 손맛 기억이 봉인 해제된 기분이라면 표현이 되려나.

무언가 결핍된 환경, 불안한 심리상태에서 갈구하는 것은 뇌가, 혀가 그리고 마음이 저편 깊숙이 기억하는 맛들이다. 기껏해야 만들어 먹는 것은 수제비나 된장찌개 정도. 김치가 많이 들어가는 음식은 김치가 아까워서 못하고, 대개는 재료가 넉넉지 않은 상황이라 메마른 혀를 살살 달래 보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살피던 어느 오후, 일정량의 독서를 하자는 결심으로 자리를 잡고 앉은 찰나였다. 함께 요리 공부하는 캐나다에서 온 친구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너의 영혼을 위한 음식은(Comfort food) 어떤 거야? 시간이 많은 김에 다른 문화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위기 상황에서 그리워하는 음식들을 조사 중이거든! 재미있는 영상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그거 괜찮은 콘텐츠인데? 음, 생각 좀 해볼게.’

읽던 책을 일단 마저 읽으려고 하는데 같은 문장을 도돌이표 재생 중이다. 머릿속에는 이미 김치찌개, 시금치 된장국, 추어탕, 잔치국수, 삼계탕... 뜨끈하고 구수한 음식들이 하나둘씩 들어차고 있다. 목록은 길어지는데 딱 하나를 꼽자면...

아, 알았다.

팥칼국수.


한국을 여행해 본 적 있는 그녀에게 팥칼국수를 아느냐고 물었지만, 예상대로 대답은 ‘No.’

하긴, 전라도 음식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들도 먹어본 적 없는 이가 많은 게 팥칼국수다. 전라도 해남, 거기서도 아주 끝자락 작은 마을에서 우리 아빠는 위로 형이 하나, 아래로 동생이 셋 도합 다섯 형제가 함께 자랐다.

논 매고 고추 따는 시간을 덜어내면서 할머니는, 팥을 푹 삶아 커다란 한 솥의 팥물을 자주도 끓이셨다. 그 많은 입에 한 수저라도 더 넣기 위해 어느 날은 물을 더 많이 넣어 멀건 팥물이 되고는 했다. 칼국수 가락도 국물 속에서 찾아가며 먹어야 했던, 넉넉지 않은 어린 시절이었지만 아빠는 그 달콤하고 구수한 국물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단다.


할머니는 며느리인 우리 엄마에게 팥칼국수 만드는 법을 물려주셨고, 이번에 나는 엄마에게 그것을 전수받았다. 친구는 대강의 요리법만 알려주면 된다고 했지만, 엄마에게 하나하나 설명을 듣고 있자니 내가 먹고 싶어서 위가 베베 꼬였다.

이튿날 아침, 마스크와 장갑으로 무장하고 중국 식료품점으로 향했다. 중국산 팥과 찹쌀가루를 구했다. 엄마가 일러준 대로 하기만 하면 파리에서도 팥칼국수를 먹게 되는 거다.


칼국수 반죽인데 달걀 푼 물을 섞고 찹쌀가루를 넣어 일반 칼국수 반죽에 비해 다소 질다. 덧가루를 충분히 묻혀가며 날렵한 칼놀림으로 빠르게 반죽을 잘라야 서로 달라붙지 않는다.

팥은 한 번 씻어 푹 삶아 으깬 다음, 체에 한 번 더 걸러 꿀떡꿀떡 마실 수 있을 만큼 부드러운 국물을 만든다. 팥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를 때 칼국수를 휘리릭 넣고 떠오르면 약한 불에 한 소끔 끓인다. 소금 간만 살짝 하고, 설탕은 종지에 담아 따로 김치와 내는 게 정석이다.

몇 문장으로 간추려지는 요리법이건만, 만드는 데 반나절이 걸렸다. 먹을 줄만 알았지 이런 정성과 시간이 들어가는 음식인 줄은 여태 몰랐던 둘째 딸을 용서하시라.


부산 출신 룸메이트 언니는 단팥빵 속 팥도 빼고 먹는 사람인데, 그런 언니가 한 그릇을 다 비워냈다.

“이거 어떻게 한 거고? 내 평생 팥을 한 번에 이만큼 먹은 적은 처음이다!”

다양한 감탄사를 연발하는 언니의 모든 칭찬을 그대로 엄마에게 전송했다. 제일 잘 나온 먹음직스러운 한 그릇 사진과 함께.

물론 나도 한 그릇을 금방 해치웠다. 하지만 예상 가능하지 않은가, 내가 먹던 그 맛은 아니다. 국산 팥이나 찹쌀이 아니라서? 그럴 수도 있다. 반죽하는 힘이 부족해서? 그것도 한몫했을 거다. 엄마 반죽처럼 탱글 하지 않고 거의 떡과 국수 중간이 되었으니까. 아무렴, 내가 엄마를 옆에 두고 엄마가 쓰는 재료로 요리해도 그 맛은 절대 나지 않을 거다. 이것은 ‘엄마’라는 초월적인 존재가 만들어내는 맛일까?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그 음식은 뭐가 있어? 나도 궁금해.’

팥칼국수 사진을 보내주면서 친구에게 물었다.

‘기대보다 훨씬 다양하고 재미있어, 들어봐. 한 영국인은 토마토를 한 바가지 넣은 소고기 꼬리뼈 스튜를 얘기했고, 말레이시아 친구는 직접 만든 피쉬볼(어묵)을 넣고 팔팔 끓인 수프, 그리고 태국인 친구는 국물 맛이 끝내준다는 오리고기 국수. 제일 생소했던 건 나이지리아인이 얘기한 얌으로 만든 아말라에 오크라 수프였어. 맛이 상상도 안 가서 그건 내가 만들어 볼 수 있을지 모르겠어, 하하. “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음식의 공통점은 일단 뜨끈한 국물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각각의 이야기의 끝에는, 언제나 가족이 있었다. 할머니와 엄마가 연관된 음식이 가장 많다. 어렸을 때 아프면 엄마가 해주시던 음식도 있고 명절이나 기념일에 친척들이 모두 모여 먹던 음식도 여럿이었다. 떠올리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기억이 새겨진 맛.


타지에서 지내면서 내가 한국인이라는 자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된 팥칼국수 한 그릇이다. 언니와 나, 남동생 입맛은 그렇게 다르기도 어려울 만큼 다른데, 우리 삼 남매가 입을 모아 애정 하는 한식 요리가 팥칼국수.

그렇다. 팥칼국수를 먹는 날은 우리 다섯 식구 모두가 항상 한 식탁에 있었다. 엄마 눈치를 슬쩍 보면서 설탕 한 수저를 더 넣어가며 먹던 우리가 있었고, 할머니의 손맛을 추억하는 아빠가 있었다. 하나하나 손칼국수를 미느라 팔은 저리지만 고슴도치들이 반찬투정도 없이 싹 비워내는 그릇을 보며 흐뭇해하시는 엄마가 있었다.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바로 그 식탁일지도 모르겠다.

파리로 오기 전 엄마가 해주셨던 팥칼국수
내가 처음으로 해 본 엄마 레시피 팥칼국수, 파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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