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 스프레드 샌드위치
'보기 좋은 게 먹기도 좋다'라는 말에 동의하는가?
식상한 말 같아도 단순한 음식의 모양뿐 아니라 색깔과 텍스쳐, 크기 등 다양한 요소가 담긴 말이다.
맛만 좋으면 그만,
의 한계는 우리 뇌가 혀보다 영민하기 때문이다.
뇌가 특정한 방향으로 인식하고 나 버리면 같은 음식도 다르게 느껴진다.
특히 음식의 색깔은 생각보다 큰 영향력을 갖는다.
파란색이 식욕을 떨어트린다는 식상한 예시 말고도(정말 식상해진 게 파란색 캔디가 아주 잘 팔린다는 사실)
투명한 잔에 담긴 커피가 하얀 머그에 담긴 커피보다 더 달게 느낀다는 사례,
학생들에게 극소량의 붉은색을 이용해 화이트 와인을 레드 와인처럼 보이게 하여 시음하도록 했더니 80프로 이상이 레드 와인이라고 생각했다는 사례,
블라인드 테스트로 오렌지 주스를 먹게 한 뒤 무슨 맛인지 맞춰보라고 하면 상당수가 헷갈려한다는 사례 등 재미있는 뇌 속임 예시가 많다.
그러니까 음식을 보고 어떤 맛일지 이미 뇌는 대강의 예측을 한다.
해서 흠 없는 과일과 더 선명한 색감의 주스가 당연히 더 잘 팔리고
아, 국민 우유, 바나나 우유가 대표적인 예가 되겠다.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지만, 노란 바나나 우유가 변함없이 사랑받는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건, 컬러에 대한 무의식적인 편견이 문화적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버거킹에서 출시한 블랙버거가 미국에서는 먹히지 않았으나
일본에서는 인기를 끌었다는 것.
일본인에게 '블랙푸드'에 대한 인식은 건강, 장수, 럭셔리 등 좋은 이미지로 거부감이 없기 때문이다.
직관적으로 어떤 음식인지 예상이 갈 때 더 맛있다고 느끼고, 맛있을 것 같다고 이미 느꼈다. 맛이 예측 가능할 때 그것을 선택할 확률이 높다.
윤기 좔좔 흐르는 소스의 탕수육, 빨간 떡볶이, 치즈가 쭉 늘어나는 피자, 생크림 듬뿍 올라간 딸기 케이크 등등.
여담이지만 그래서 프렌치식 파인 다이닝이 대중화하기 어려운 점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에 미쳤다.
어려운 음식 이름으로 한 번 뇌가 혹사당한 다음,
눈 앞에 내놔도 어떤 재료가 어떤 방식으로 조리되었는지 도대체 가늠이 안 되니 두 번 뇌가 혼란스럽다.
그러니 먹어봐도 내가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인식'이 안되어 맛있다고 느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아시아 음식에서 우리가 이국적으로 느끼는 부분은 향신료나 허브의 생소함이라 결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파인 다이닝이 음식문화에서 우위에 있음은 결코 아니다.
프랑스인들이 파인 다이닝만 즐기는 것도 당연히 아니다.
개인적으로 편안한 음식들이 더 좋기도 하다.
다만 재료의 고유한 맛을 한껏 살리면서도 복합성을 이끌어내는 그만의 매력이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컬러 푸드를 얘기하다가 파인 다이닝까지 간 것이 그저 의식의 흐름은 아님을 알아주시길.
궁극의 맛을 표현하는 것만큼 파인 다이닝은 색감의 조화는 물론 요소 하나하나 모양과 크기도 계산하니 말이다. 모든 식품산업에서 색깔이(이미지) 고객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열쇠이니 말이다.
식품 산업을 생각하면서 나의 샌드위치를 만든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아주시길.
비트와 그릭 요거트, 라임주스에 소금, 후추를 갈아서 다진 샬롯을 더해 스프레드를 만들었다.
선명한 적색을 보니 하양과 노랑의 달걀이, 부족한 초록이 하나씩 더해져 봄을 맞이하는 샌드위치가 탄생했다.
갈색의 사워도우까지 조화롭다.
만들어놓고 예쁘다는 생각이 드니 먹기 전 이렇게 저렇게 담느라 정신이 팔린 게,
나의 뇌는 이미 맛있다고 감지하는 것 같았달까.
뭐, 정말로 나쁘지 않았다.(고 아마도 뇌로 생각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