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가 되고 싶었던 당근빵
세계 어디를 가도 나에게 케이크를 고를 선택권이 있을 때면, 초콜릿도 딸기도 생크림도 아니고
나는 당근 케이크를 고르는 사람이 되었다.
당근 케이크를 맛본 최초의 기억은 스무 살 언저리인데,
제일 맛있다고 기억하는 건 의외로, 집 근처 동네 카페에서였다.
아마도 아직 당근 케이크를 많이 먹어보지 않아서, 였을수도 있고
카페 사장님이 과하게 친절해서였을 수도 있다.
비가 오던 오후, 혼자 과제를 하고 있었는데 비가 그치질 않던 그 날,
사장님은 먼저 다가와 우산을 빌려주셨다.
이렇게 예쁜 옷 다 젖으면 안 된다고.
대학시절 내내 가장 아끼던 연분홍색 자켓이었던 것까지 생생하다.
우산은 거의 한 달이나 뒤에 가져다 드렸던 것 같다. 돌려받을 생각도 안 하셨다면서, 맛있는 커피를 내어주시던 따듯한 분.
그 날처럼 오늘 파리에 모처럼 비가 하루종일 내리고 있다.
그래서 당근 케이크가 생각난다,
라고 난 시침 뚝 떼고 감성적으로 쓸 수도 있으나 사실은,
지난 주 단 것을 찾던 호르몬의 불균형의 결과일 뿐이다.
가벼운 생크림보다 진한 크림치즈도 좋고, 시나몬과 카다몸 향신료에도 거부감이 없다.
제일 딱딱한 채소 당근을 이렇게 달콤한 케이크로 변신시킨 점도 매력적이다.
거기에 어떤 견과류도 잘 어울리는 것도 좋아.
완벽한 케이크 한 조각을 마음속에 그려봤지만
이 시기에 그런 사치까지 부리지는 않겠다.
달걀 하나에 황설탕, 시나몬 가루, 밀가루 조금, 당근은 넉넉히.
계량도 없이 대강의 반죽을 만들어 미니밥솥에 넣어 취사버튼만 눌러준다.
크림치즈 대신 진득한 그릭스타일 요거트에 꿀을 한 스푼 넣으면 집에서 만든 티 나는 프로스팅.
연상작용이 어찌되었든
만들어놓고 보니 그 동안의 당근케이크들이 스쳐 지나가고,
그리고 사실은 최상의 맛보다
케이크는 되지 못한 이 당근빵은 적어도,
위로든 외로움이든 어떤 형태를 가질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