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가족이 주는 고유한 맛

핸드메이드 딸기잼

by 파리누나

"우리 할머니 잼을 맛 보여줘야 하는데!"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마을에서 온 마고.

새하얀 웃음, 말소리에 리듬이 있는 그녀는 보고만 있어도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매력쟁이다.


마고를 처음 만난 지난겨울부터 그녀가 해오던 말은 대략,

"감자튀김은 소고기 기름에 튀기는 게 정석이야."

"솔직히 프랑스 빵 맛있는 곳 별로 없어. 벨기에 오면 진짜 바게트랑 크루아상을 보여줄게."

"감자튀김은 마요네즈에 먹어야 해, 벨기에 마요네즈는 다르다니까."

"맥주? 당연히 벨기에 맥주가 최고지. 오기만 해, 맥주 쭉 늘어놓고 마시게 해 줄 테니까!"



정말로 다 맛보게 될 줄은 몰랐다.

정말로 할아버지가 키운 딸기와 산딸기로 할머니가 정성으로 만든 잼으로 아침을 맞이할 줄은.

프랑스혁명기념일 연휴 동안 기차를 타고 마고네 집으로 향했다.

무뚝뚝한 듯 자상한 마고네 아빠 마크가 기차역까지 마중을 나오셨다.(아직도 친구네 부모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무척이나 어색하다.)

고흐의 그림이 자동 연상작용으로 생각날 만큼 널따랗고 고운 밀밭으로 둘러싸인 마고네 마을. 경치에 넋을 빼앗기기 직전에 잔디가 깔끔히 깎인 정원에 2층 집 마고네 당도했다.

'심바'라는 이름의 플란더스의 개만큼 커다란 개가 반겨주었고,

마고와 똑 닮은 엄마 카트리나와 목소리까지 똑같은 여동생 마틸드가 있었다.


신선한 바게트를 쓰윽쓰윽 잘라

도살부터 제조까지 한다는 마고네 단골 정육점에서 방금 사 온 소시지와 햄, 거기에 세 가지 다른 치즈를 곁들인 가벼운(?) 상차림으로 시작한 휴가.

곧바로 10분 떨어진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파리 플리마켓에 갔을 때 빈티지 컵을 만지작거리던 나. 마고는 자기네 할머니 집에 이런 거 한 무더기라며 사지 말라고 했었는데 과연 그랬다. 플리마켓의 것들보다 깨끗하고 하나하나 이야기가 깃들어 있으니 보는 재미가 배가 된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깨끗이 닦은 잼병이 스무 개도 넘게 늘어져 있었다.

'우와, 할머니 잼!' 내 표정을 읽은 마고는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인다.

버드나무가 흩날리는 뒤편 마당에는 바질과 파슬리, 타임이 옹기종기 자라는 작은 화단이 있다. 정원 가장자리를 따라서는 산딸기나무들, 잼으로 제2의 생을 맞이한 그 과실들이 있다. 이 좋은 햇살과 바람을 먹은 열매들은 그저 탐스럽기만 하다.


이튿날 아침, 주문해놓고 픽업해온 크로와상(마고가 얘기하던 그 크로와상이다)에 할머니 잼이 식탁에 올라있다.

사실 나는 잼을 사다 놓고 먹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버터향이 휘익 감도는 부드러운 크로와상에,

신맛과 단맛의 조화가 딱 떨어지는 딸기잼을 올려 한 입 먹었더니,

"마고, 할머니한테 잼 한 병 산다고 해도 돼?"

나도 모르게 한 마디가 튀어나왔다.

마고 엄마와 아빠가 기분 좋게 웃으셨고, 그대로 할머니에게 전했단다.


제대로 벨기에 가정식, 제대로 마고네 식 상차림으로 행복했던 사흘 반.

기상했더니 준비되어 있는 엄마손 팬케이크,

샤워했더니 차려져 있는 수제 미트볼이 들어간 엄마 맛 볼로네제 파스타,

포크를 들라치면 말없이 와인을 쪼르륵 따라주시는 아빠.

파리로 돌아오는 날 아쉬운 마음으로 가방을 챙겨 내려왔다.

이번에 테이블에 준비되어 있는 건,

할머니의 잼 한 병과 할아버지가 펜으로 그리신 마을 풍경 그림, 그리고 마고와 찍은 사진.


집에서 만든 거라고 무조건 맛있을 수는 없다.

(일례로, 함께 간 친구의 엄마 밥은 깜짝 놀랄 만큼 솜씨 없는 요리란다.)

똑같은 음식을 혼자서 혹은 다른 곳에서 먹었다면 맛은 완전히 달랐을 거다.

마고네 집에서 그녀의 가족과 함께 했기에 가능한 맛 들이었다.

최고의 딸기잼이었다.

아까워서 뚜껑을 열지 못한 채 그대로 냉장고에 들어가 있는 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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