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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무 Aug 04. 2021

네 아이를 키운 다는 것

나는 운 좋게도 현재 아내와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집에 가까운 편이라 출퇴근 시간이 30분 남짓이지만 그사이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하루의 낙이자, 부부의 자유시간이기도 하다. 

짧은 시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늘 그래도 우리 예쁜 아가들이랑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음에 감사하는 걸로 마무리를 짓곤 한다.

아내와 함께하는 퇴근길은 부부의 유일한 휴식 시간이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이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를 위해 기꺼이 내가 희생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신기한 경험이랄까. 

아내와 연애를 할 때 막연히 아이는 둘은 부족하고 그래도 셋 정도는 생각했는데, 넷을 낳을 줄을 몰랐다는 이야기를 서로 하곤 한다. 구체적인 가족 계획 같은 건 없었고, 요즘 세상에 불임도 많다는 데 생기면 복이라 생각하고 낳기로 합의 아닌 합의를 하고 지내다 보니 거의 연달아 넷을 낳느라 아내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중간에 한 번의 유산을 겪기도 했기에, 실제로 8년 남짓한 결혼 생활 동안의 대부분을 아내는 임신과 출산 그리고 회복하느라 보낸 셈이다. 


그래도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같은 뱃속에서 나왔건만 각각이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고, 성격도 제각각이고 장, 단점도 다르지만 하나같이 다들 예쁘기 그지없다. 아기가 태어나면 이번엔 또 어떤 매력을 가진 아이가 나올까라는 기대가 있어서였나. 아내와 나는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 때마다 누리던 그 기쁨을 잊지 못한다.

하지만 육아는 현실이라고 했던가. 네 아이를 키우는 일은 결코 쉽진 않다. 둘일 때까진 부부의 맨투맨 마크로 아이를 돌볼 수 있지만, 셋 이상부터는 외부 인력의 유입 없이는 유지가 쉽지 않고, 맞벌이 부부에겐 더욱 그렇다.

다행히도 아이들이 인복이 있는 덕분인지, 친척 어르신들이 아이들을 잘 돌봐주셔서 우리 부부는 그래도 걱정 없이 직장 생활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었다. 물론 등, 하원을 챙기느라 직장에서의 퍼포먼스가 조금 떨어지는 것은 약간 감수하기로 했다. 그리고 직장에서의 일도 조금 더 여유가 있는 파트로 옮긴 것도 가정과 직장의 균형을 맞추려는 이유도 있다.


아이가 넷 인 건 여러모로 장점이 있다.
 일단 당당하게 회식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아내가 집에서 혼자 넷을 보고 있어서 일찍 가봐야 합니다." "오늘은 아내가 당직이라 제가 육아를 해야..."

신기하게도 나와 같이 바쁜 외과 의사들도 의외로 아이가 셋인 분들이 많다. 바쁜 와중에도 다들 언제들 그렇게 아이를 낳으셨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넷인 집은 거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그래 너는 가봐야지"라고 이해해주는 분위기가 생길 수밖에 없긴 하다.

그래서 회식으로 인한 체력을 많이 아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집에서 쉴 수 없는 것은 결국 매한가지니까, 피곤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6시에 칼 퇴근을 하더라도 7~8시 전에 집에 도착하기 쉽지 않다. 때문에 실제로 아이가 잠들 때까지 아이와 보내는 시간은 고작 2~3시간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것만 끝내고 가야지 하다 보면 훌쩍 9시 10시가 되고 우리네 선배들처럼 자고 있는 아이의 모습만 보게 되고, 다음날 아침에 새벽같이 출근하다 보면 아빠 엄마는 그냥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손님과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정과 일의 균형을 찾으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나름의 팁은, 최선을 다해 가정에 신경을 써야 그. 나. 마 균형이 맞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TV에 나온 카드 회사의 대리가 이야기했던가, 언젠가 짤리고 회사는 망하고, 우리는 죽는다.

"아무튼 출근" 카드회사 대리님의 책상앞에 씌여진 모토. 매우 공감된다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생만 되어도 부모와 노는 것보다는 또래와 어울리려 한다. 따라서 실제로 우리가 아이의 예쁜 모습을 보는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가 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나마 하루에 2~3시간인데, 그 시간정도는 내보려고 하고 꼭 지켜보려고 한다.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가능한 빠른 시간에 퇴근을 하려 한다. 물론 눈앞에 넘어가는 환자나 수술을 하고 있으면 불가능하기에 그 외의 상황에서는 가능한 빠른 시간 집에 가고, 집에서 아이들이 잘 때까지 최선을 다해 시간을 보낸다.

그 시간만큼은 직장에 두고 온 일이나, 걱정은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 그래 봐야 2시간 길어야 3시간인데 10시 전후면 아이들은 잠들고 그때 가서 고민해도 늦지 않다.

물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나면, 그나마 있던 체력이 방전되기 십상이라, 그 몸을 이끌고 다시 일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앞서 이야기한 퍼포먼스가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기회 비용이라 생각한다.

대신 나는 아이들을 얻지 않았는가.

내가 그 2시간 3시간 병원에 더 남아 있어서 하는 일의 가치가 아이들의 가치와 비할 수 있을까?

NEJM, Lancet의 화려한 IF(임팩트팩터)점수와 우리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비할 수 있을까? 

항상 마음에 새기는 말 " 아이들의 IF는 무한대다" 


논문 좀 쓴다 하는 사람들에겐 논문이 내 자식 같고, 좋은데 가면 자랑스럽고, 리뷰어한테 까이면 내가 더 속이 상하고 한다지만, 아이들이 주는 기쁨과 행복은 그에 비할 바가 못된다. 

내가 함께 시간을 보내고 건강하게 자란 이 아이는 자라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존재가 될 것이다. 이 하나의 우주를 키우는 것이 논문 10편을 쓰는 것보다 당연히 값진 일일 것이다.


그래도 일 욕심이 있기에, 아이들을 재워 놓고 1시간 정도 체력을 회복한 후, 11시부터 보통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다. 낮 동안 고민했던 주제나, 생각을 정리하기엔 오히려 밤이 차분해서 좋은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생산적인 일, 창조적인 일이 필요한데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면 과감히 접고 차라리 휴식을 취하거나, 머리를 덜 써도 되는 일을 하는 편이다. 

환자를 보는 일을 담당할 때는 밤에 다시 환자 한 명 한 명 열어보면서 빠진 것은 없는지 검토하는 게 일이었고, 지금처럼 연구에 조금 더 일이 몰려있을 때는, 브레인 스토밍을 하는 편이다. 

아무튼 하루 일과에 지쳐있는데 밀린 일을 한다고 2 시간 더 병원에 남아있는 것은 그렇게 생산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많지 않은 만큼 주변에 육아 하는 친구들에겐 항상 이렇게 해보라고 추천을 한다. 우리네 부모님들이 우리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것을 그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오늘도 이렇게 아이 넷을 재우고 혼자 끄적끄적 적어본다.

하루에 글 하나씩 쓰기 프로젝트인데 무사히 진행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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