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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무 Aug 10. 2021

ENFP 부부가 여행하는 법

계획은 거들뿐

MBTI 검사상 우리 부부는 전형적인 ENFP 다

"재기 발랄한 활동가"

특징은 즉흥적이고 낙관적이라는 데, 평소에도 그렇지만 특히 여행을 할 때면 그 특징이 제일 도드라진다.

일단 몇 가지 큰 계획은 세우지만, 그렇게 연연하지 않고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코스를 정하는 편이다.

어떤 정도냐하면 신혼여행으로 파리-산토리니를 다녀왔는데,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는

"흠... 꼭 봐야 하나... 그냥 다른 데 갈까?"
"그래"

1초도 고민 없는 결정은 아마 다른 타입의 사람(계획을 꼭 지키는 편인)이었다면 여행기간 동안 많은 다툼이 있었을 것 같았다. 루브르를 포기하고 그냥 별생각 없이 에펠탑도 멀찌감치 보고 샹젤리제 거리를 별생각 없이 걸었다. 주변의 가게들이나 좁은 골목길도 다 좋은 기억이었고, 남들 다가는 경험 대신 나만의 즐거움을 얻으면 된 거라 생각했었던 것 같다.

신혼여행 때 다녀온 파리. 어딜 가든 스냅사진은 늘 남겼던 것 같다.


아내와의 첫 여행의 기억은 호주 케언즈-시드니 코스였다.

연애할 때 떠난 첫 해외여행인 데다 바쁜 전공의 시절이라 계획은 당연히 세울 수 없었지만 그 와중에 몇몇 코스는 가봐야지라고 맘속에 담아두었다.

하지만 ENFP에게 계획은 무의미한 시간 낭비일 뿐, 역시나 그날그날 기분과 체력에 따라갈 곳을 정했다.

심지어 시드니에서 묵었던 숙소는 별로 맘에 들지 않아, 과감히 포기하고 맘에 드는 숙소로 옮기고 예상에도 없던 그 주변 코스를 돌면서 여행을 계속했다. 둘은 그렇게 생각이 잘 맞고 결정하면 바로 옮기는 ENFP였다

첫 해외여행 시드니에서, 풀밭에 누워서 쉬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기억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아이들과 여름휴가로 온 제주도 여행 3일 차다.

역시나 가기 전 세웠던 가봐야 할 곳, 카페, 등등은 한 군데도 가지 않고,

이번엔 리조트 안에서 편하게 쉬겠다던 생각은 어디 갔는지, 지난 2일 동안 해안도로를 따라 제주도를 시계방향, 반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돌았다. 학센 바비큐와 노을이 지던 풍경으로 여행 첫날을 시작했고, 지난 여행 때 들렀던 곽지과물해변의 피시 앤 칩스는 여전히 세계 제일로 맛있었다.


이튿날은 서귀포 쪽에 머물면서 남쪽 해안가를 따라 동쪽의 아쿠아리움을 보러 가는 긴 여정을 짜고 가다가


"와~ 이곳 너무 예쁜데?"

"잠깐 들렀다 갈까?"


내비게이션의 안내는 아랑곳없이 눈에 보이는 표지판과 건물, 그리고 자연을 따라 머물기를 반복하고 1시간 30분 만에 도착할 거리를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달려 도착하였다. 예상치 못한 아름다운 자연과 볼거리가 있었기에 3시간이 지루하지 않았고, 끝내 도착한 아쿠아리움에서 처음 보는 동물들을 본 네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았기에 달려온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이러다 보니 정작 리조트의 시설은 이용을 못하고 여행이 끝나가기에, 한마디 던졌다.


"우리 하루 더 있을까?"

"그래"


아내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역시나 대답은 1초를 채 넘기지 않았다.

결정은 했는데, 일단 정해놓은 예산이 넘치지 않는지 확인해야 했고 숙소 방이 가능한지도 봐야 했고, 비행기는 있나 확인을 하고, 렌터카와 카시트 등 모든 게 맞아야 했는데


"난 숙소랑 비행기를 확인할 테니, 카시트랑 렌터카를 확인해줘"

"응"


각자 확인을 해보니 비행기 값이 그 사이에 내려가서 하루 미루는 게 많이 남는데 다, 쓰지 못한 포인트를 긁어모으니 예산 초과가 거의 없이 가능해서 30분 후 모든 게 정리되었다.


이런 아내와 네 아이를 키워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남은 일정은 아마도(?) 조금 쉬면서 보낼 것 같지만 또 모르지 갑자기 훌쩍 지도에 점 하나 찍고 떠날지

해안도로에서 우연히 돌고래를 발견하고 잠시 멈춰서서...


인생도 비슷한 것 같다.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 같지만, 언제나 예상할 수 없고 거기서 벗어난다고 스트레스받는 것보단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적응하고 최선의 선택을 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현명하게 성장하는 길이 아닐까

누군가 얘기하지 않았던가

신이 정말로 인간을 지켜보고 있다면, 계획을 세우고 있는 인간을 보고는

"허허... 이것들이 계획을 세워?"

라며 비웃을 거라고


ENFP 부부의 여행은 항상 계획대로 되진 않지만,

하루하루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새로운 상황에서도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그런 일상이다.

마치 우리의 인생처럼...

예상치 못한 일정에서 얻는 순간의 기억들이 모여 우리와 아이들에게 보석 같은 시간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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