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위해 온 우주가 응원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관심도 없던 무주로 가게 된 것은 친구의 갑작스러운 권유였다.
이름만 들어본 '무주산골영화제'
야외에서 다 같이 영화를 본다니!
말만 들어도 감성 넘치는 풍경이 머리에 그려지면서도 많은 인파와 뜨거운 햇빛,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벌레들이 떠올라 가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가게 되었다.
친구가 예매했다는 '등나무운동장'을 찍어보니 집에서부터 무려 1시간 30분 거리.
어찌 보면 가깝기도, 멀기도 한 거리였고 이 날은 괜히 멀게만 느껴져 플레이리스트부터 신나는 음악들로 손봤다.
운전 중 불안과 딴생각을 잠재워줄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함께.
갑작스레 참여하게 된 만큼 오후 늦게(4시 넘어) 도착한지라 역시나 등나무보다 사람만 보일 정도로 인파가 몰려있었다.
미리 저녁부터 사두자는, 정말 좋았던 결정을 내린 후 대충 맛있어 보이는 찬 닭강정과 떡볶이를 들고 등나무운동장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그냥 '와!' 감탄했던가?
일단 몇 초 가만히 무대와 잔디밭 위 색색깔의 돗자리들, 운동장을 둘러싼 등나무 벤치와 계단을 바라봤다.
그때부터는 모두 잊었던 것 같다.
소란 속에 힘들어할 나와 뜨거운 햇빛을 피하는 나, 심드렁하게 무대를 바라보며 대충 어딘가에 기대어 있을 나까지 모두 잊었다.
그곳에는 생생하게 운동장의 모든 감정과 냄새를 느끼며 야무지게 팝업스토어 사은품을 챙긴 나와, 별로 듣지도 않던 '에피톤 프로젝트'의 노래와 바람이 잘 어울린다며 호들갑 떠는 나뿐이었다.
심지어 아비브 팝업에서는 2등을 해 야무지게 패드 본품까지 챙겨 온 나.
그리고 불타오른다는 말이 어울리는 노을까지, 그곳의 모든 것에 시선을 뺏겨 버렸다.
어두운 국도를 다시 1시간 30분 돌아가야 한다는 걱정도 일단 미루고, 해가 진 후 시작된 무성영화와 곁들여진 밴드의 거문고 소리에는 심장 박동을 맞춰보았다.
이후 '아무 일' 없이 집으로 돌아와 평소처럼 씻고 누워 잠들기까지, 정말 아무 문제도 없었다.
'나의 모든 성취가, 지금까지 안정적으로 살아온 이유가 그저 우연이고 운이었을 뿐이야.' 고통받았던 내 안에 뭔가가 자리 잡았다.
매일의 일들은 필연적으로 일어나야 할 일이고, 우연을 가장하여 찾아온 필연은 고통뿐만이 아니라 기쁨도 줄 수 있다는 것.
'다음'을 너무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지 말자고 어두워진 천장에 대고 혼자 약속했다.
그래도 너무 무서울 땐 온 우주가 나를 응원한다고 생각하지 뭐, 그렇게 마무리 지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