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변해가는 모습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다고 한다. 크게 보면 맞는 말이다. 한 해동안 찍은 사진들을 모아놓고 대표적인 사진 몇 장을 뽑아보면, 계절이 바뀌었음을 바로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풍경이 선명하게 변한다. 하지만 짧게 보면 현실은 스키장 개장하듯이 정해진 날짜에 갑자기 풍경이 바뀌지 않는다. 벚꽃 노래가 음원차트 상위권으로 올라오려 할 때도 바깥 풍경은 대부분 갈색이고, 단풍은 온 산이 순식간에 물들지 않고 나무마다 개체차가 있다.
개인적으로 느낀 계절의 변화나, 시기별로 생각했던 것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칼같이 봄/여름/가을/겨울로 나누기보다는 월별로 변해가는 모습을 정리해보았다.
벚꽃 예보가 뜨고 낮기온이 슬슬 따뜻해지는 시기고, SNS에는 봄에 대한 얘기들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인터넷의 반응에 비해 아직 바깥은 갈색으로 가득한 시기다. 만일 시간이 된다면, 남부지방에서부터 봄이 올라오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높은 곳에서는 매화나 산수유같이 나무에 피는 꽃들이, 낮은 곳에서는 수선화 같은 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때다.
4~5월은 사진을 찍을 때 가장 구도에 민감한 시기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 목련부터 시작해 유명한 꽃들이 피어나는 시기다 보니, 어딜 가든 사람이 많다. 3월과 함께 잎보다 먼저 피는 꽃들이 나무를 뒤덮는 시기라 큰 나무에 꽃이 뒤덮인 모습을 넓게 담거나, 나뭇가지 사이로 배경 흐림 효과를 노리는 편이다. 4월 중순부터는 초에 피었던 꽃들이 슬슬 시들고 연한 잎들이 흔히 보이기 시작하며, 나뭇잎을 이용한 배경 처리가 가능해지는 시기다.
벚꽃 등 높은 나무에서 피던 꽃들이 지고 나면 겹벚꽃과 함께 철쭉처럼 생긴 꽃들이 많아진다. 잎이 넓고 술이 얇은 종류의 꽃들이 많아져서,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도 난해하다. 벌들이 본격적으로 날아다녀서 이때부터 사진을 찍을 때 검은 옷을 최대한 피하는 등 여러모로 조심하기 시작한다. 이 즈음에 열리는 꽃박람회에 가면 깨끗하게 관리된 꽃들을 많이 볼 수 있다. 9~10월과 함께 특정 꽃이 무리 지어 있는 모습을 찍기 가장 좋은 시기다.
밖이 엄청나게 뜨거워지고, 모기기피제를 챙겨야 하는 시기가 온다. 5월 중순이나 말 즈음에 창포류나 작약류, 6월 초에 수레국화나 양귀비 같은 꽃들이 피어난다. 어떤 정원은 데이지류 꽃들이 많고, 다른 곳은 백합류 꽃들이 많은 등 정원마다 개성이 확연히 드러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5월 중순부터 시작해 6월까지 장미가 꽤 많이 보이는 시기고, 이 때도 여기저기서 꽃 축제가 많이 열리는 시기다.
사진을 찍는 것이 가장 힘든 시기지만, 개인적으로 이맘때쯤 빛을 가장 마음에 들어한다. 낮도 가장 길어지고 식물원이 문을 여는 시간이 가장 긴 계절이다. 빠르게는 6월 중순부터 루드베키아나 수국이나 산수국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비비추나 맥문동, 배롱나무꽃 같이 멀리 나가지 않아도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꽃들이 가장 많아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6월처럼 날씨가 변덕스러운데, 엄청나게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비 오는 날 찍은 사진은 여름이 제일 많은 것 같다.
9월 초까지는 여름과 별다른 차이가 나지 않는다. 여름꽃들이 슬슬 시들어가고, 가을 장미나 국화류같이 꽃잎이 많은 꽃들이 흔하게 보이는 시기다. 9월 초, 조금 이른 시기에 식물 배치를 바꾼 정원에 가면 아직 가을꽃들이 덜 피어난 모습에 의외로 실망할 확률이 높은 시기다. 코스모스나 가우라 등 바람에 쉽게 흔들리고 무리 지어 피는 꽃들이 흔하게 보인다.
슬슬 해가 짧아지는 것이 느껴지는 시기다. 대부분의 식물원들이 10월까지는 하계 영업시간을 적용하기 때문에, 여름에 찍던 느낌으로 사진을 찍다 보면 생각보다 빛이 부족하거나 의도한 대로 사진에 담기질 않아 난감해지는 상황을 자주 겪게 된다. 단풍 예보에서 알려주는 시기보다 먼저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나무가 있는 등 본격적으로 가을이 느껴지는 때이기도 하다. 빨간 열매가 달린 나무들을 흔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국화류 꽃들이나 억새류 등이 몰린 곳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해도 더욱 짧아지지만, 특히 11월부터는 식물원 영업시간이 짧아져서 일정을 잡을 때 신경 쓰는 시기다. 10월 말부터 슬슬 가까운 곳에서도 단풍이 보이고, 단풍이 든 나무와 잎이 말라있거나 다 떨어져 가는 나무들이 섞여있다. 개인적으로 이 시기에는 단풍이 든 모습도 예쁘지만, 갈색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담는 편이다. 온실 밖의 꽃들이 거의 사라지는 때이나, 동백꽃을 보고자 한다면 보통 11월부터 3월 초순까지 볼 수 있을 것이다.
바깥이 완전한 갈색으로 변해버린 시기다. 겨울 정원은 대부분의 식물들이 말라있거나 옮겨진 상태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겨울은 눈이 쌓인 풍경보다는, 빛나는 태양 아래 갈색으로 말라붙은 풍경을 더 자주 볼 것이다. 그래도 운이 좋아 눈이 내린 날 카메라를 챙겨 나갔다면 눈이 쌓인 나무들을 찍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온실에 들어간다면, 초겨울에는 열대식물 위주의 풍경이 주를 이루고, 2월 말 ~ 3월 초 정도에 난대온실이 있는 곳을 가면 봄꽃을 미리 볼 수 있다. 온실에 들어갈 때 렌즈에 김이 서리는 것이 불편할 것이다.
나는 이 시기에 촬영을 조금 줄이고, 한 해 찍은 사진을 정리하거나 내년에 찍을 사진들을 생각해보고, 여행 계획을 짜는 등 실내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을 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