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먼 정원, A7R2와 loxia 2/35 + sel90m28g와
서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외곽에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 이런 곳들은 경험으로는 다들 제법 아름답게 잘 가꾸어져 있고, 겨울 빼고 1년 내내 꽃이 지지 않는 곳들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이런 곳들은 대중교통만으로 가기에는 너무나 멀다.
평소에 한택식물원이라는 곳이 그렇게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여긴 정말 가기가 너무 힘들어서 못 가고 있다가, 마침 각오하고 한 번 가보기로 했다.
국립수목원처럼 예약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제이드가든이나 아침고요수목원처럼 입장료가 좀 비싼 편이다. 내가 아는 근 만원에 가까운 입장료를 받는 교외의 정원들은 적어도 갔을 때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모두 잘 정돈되고 예쁜 꽃과 나무들이 피어 있었다.
여기도 그렇다.
들어가자마자 지는 꽃과 피는 꽃이 한가득이었다. 여름나비들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사방에서 벌 날아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히익
분명 모기기피제를 온몸에 뒤집어쓸 기세로 뿌리고 들어갔는데, 허브원에 들어갔다 나오니 모기 자국이 나 있었다. 이런...
분명 8월 말인데도 장미가 피어 있고, 로즈마리 꽃은 나도 처음 본다.
여름에 길게 피는 꽃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맥문동은 여기저기 흔하게 보일 정도인데 난 정말 이 꽃대의 꽃이 모두 다 핀 것을 본 적이 없다. 대체 꽃이 다 피긴 하는 걸까.
이 곳은 비비추 정원이 있다. 흔한 거리나 수목원의 보라색 비비추부터 시작해서, 꽃잎 끝만 보라색인 비비추, 잎이 특이한 비비추, 새하얀 비비추 등 여러 종류의 비비추가 있었다. 지금은 비비추가 거의 지는 시기이지만, 8월 초에 왔다면 분명 비비추로 뒤덮인 정원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루드베키아는 아직 한창이다. 땅을 넓게 쓰는 정원이라 그런지, 비비추도 루드베키아도 군락 수준으로 심어져 있었다.
이 곳의 정원들은 다른 수목원이나 식물원과 같이 몇몇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정 품종만 몰려 있거나, 특정 테마로 짜여져 있는 식이다. 꽃이 없는 구역이 거의 없을 정도로 흔하고 많았던 것이 다른 식물원과는 다른 점인 것 같다.
타죽을 기세로 햇볕이 강한 날이라 먼 데 가는데 난이도가 제법 있어서 걱정을 많이 했다. 다행히 가는 데 너무 오래 걸려서(...) 가자마자 곧 해질녘의 햇볓이 들어 생각만큼 빛이 강하지 않았다. 정원 근처에는 큰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는 형식이라 빛이 나무 틈새로 스며들어왔다.
물론 그래도 명부가 대부분 하얗게 타들어갈 정도로 빛이 강하긴 했다.
국립수목원처럼 숲 구역과 정원 구역이 분리되어 있지도 않았고, 푸른수목원처럼 그늘 하나 없을 정도로 노출되어 있지도 않았다. 정원의 경계나 여백 부분을 숲이나 숲길로 만들어 놓았고, 샛길로 들어갈 때와 큰 길로 다닐 때의 펼쳐지는 광경이 달라지도록 설계한 것 같았다. 오르막이 있긴 하지만 제이드가든처럼 경사가 꽤 급하지도 않았고. 비슷한 느낌의 정원을 찾자면 아침고요수목원 정도가 생각났다.
다만 벌이 너무 많았다. 여태껏 갔던 식물원/수목원 중에서 가장 많은 벌을 본 것 같다. 찍는 내내 벌 날아다니는 소리가 끊이질 않더라. 엄청 긴장하면서 찍었다. 무슨 벌집 옆에 있는 기분이었다.
정말 더운 날이었는데, 어째 오후 햇살은 마치 가을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강아지풀을 보면 영락없는 가을인데, 식물원 안은 아직도 여름이었다.
나처럼 사진을 찍으러 간 것이 아니라면, 1시간 좀 넘는 시간이면 이곳을 구석구석 다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시간제한은 없고 일몰 전까지라는 애매한 시간까지 볼 수 있다. 다만 거리가 서울 기준으로 제이드가든이나 아침고요수목원급인데, 교통편마저 너무 안 좋다. 거의 1시간 30분 간격 배차인 버스 한 대가 용인터미널에서 여기 바로 앞까지 온다.
정원 구성이 괜찮아서 기회가 되면 또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