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지 알고 찍으면 더 예쁘다(2)
나름 자연물, 그중에서도 정원/공원/수목원의 풀과 나무, 꽃들을 찍어 오면서도 정작 그것들의 세세한 이름은 잘 모르고 찍어왔었다. 별로 관심도 없었고, 궁금하다 했는데 막상 집에 와서 보정하고 A/B컷 추려서 인터넷에 올리고 나면 그새 까먹곤 했었다. 본격적으로 내가 어떤 사진을 찍겠다고 길을 정한 뒤로, 이런 것도 이제는 제대로 알면 더 좋지 않을까 싶었다. 사진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할 공간을 새로 찾은 김에, 이러한 것들을 하나하나 쌓아 나가면 어떨까. 어느 정도 동일한 피사체를 많이 담았다 싶으면, 습작부터 A컷까지 이것을 찍었을 때의 느낌에 대해 하나씩 쌓아 나가고 싶다.
여름에 유독 길거리에 많이 보이던 꽃들이 있었다.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마치 초롱꽃 같이 아래 방향으로 피어나는 보라색 꽃이 있었다. 눈에 계속 밟히는데 이름이 뭔지 몰랐고, 어떻게 찍어야 할지 난감했거나, 너무 흔하고 밑에 깔려 있어서 그냥 지나치곤 했다.
알고 보니, 이건 비비추란 꽃이라고 하더라.
기본적인 사항은 네이버 지식백과를 참고했다. 이건 위키백과 내용이 영 부실해서...
이 꽃은 7~8월에 피는 꽃이란다. 6월 하순에도 볼 수 있긴 했다. 꽃은 보라색인데, 흰색도 있는 듯. 여태껏 이 꽃을 나무 아래 그늘 진 곳에서 많이 본 것 같다. '자연적'인 공간보다는 주로 인공적으로 꾸며진 정원이나 공원, 길가 근처에서 보곤 했다. 그래서인지 단독으로 있는 것보단 무리 지어 있는 것을 더 많이 본 것 같다.
잎은 넓고 크다. 나무에 달려 있어야 할 것 같이 생긴 큰 잎이다. 저기 가운데서 꽃대가 올라와서 꽃을 피운다.
이 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는, 마침 장마철이었다. 비 오는 날 비를 맞으며 찍거나, 비가 막 그쳤을 때 찍었을 때의 느낌이 참 좋았다. 마치 우산 같은 느낌.
이 꽃은 그렇게 크지 않음에도, 꽃술부터 잎까지의 거리가 좀 있다.
그래서인지 최소초점거리에 근접하거나, 접사 찍을 때 꽃술에 초점을 맞추면 꽃잎이 날아간다. 그렇다고 심도를 올리자니 셔터스피드가 느려지고 배경이 뭉개지지 않아 꽃을 매우 강조하는 데엔 용도가 맞지 않고, 스택 마크로 기법을 활용하기엔 요즘 식물원에 함부로 삼각대 들고 갔다간 쫓겨나기 십상이기도 하거니와 무겁다.
그래도 꽃술과 꽃잎이 둘 다 드러나는 사진을 찍을 때는 보통 꽃술에 초점을 맞춘다. 꽃잎에만 초점을 맞춰보면 추상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사진이 아닌 이상, 주제가 좀 죽는 느낌을 받게 되더라.
얼짱각도st로 조금 옆으로 틀어 잡으면 느낌이 조금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한 포기에 여러 송이가 피는 꽃이니까, 정측면으로 잡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고.
꽃대가 위로 뻗고, 꽃은 아래 방향으로 길게 피어나는 만큼 주로 가로보다는 세로 방향으로 많이 담게 되었다. 그리고 비비추의 꽃대는 위로 높게 뻗는 편이긴 하지만, 높아봤자 사람 무릎 높이 정도라 언더로 찍어야 한다. 꽃을 찍는다면 언더로 찍을 일이 많으니, 스크린이 틸트되는 카메라를 쓴다면 좀 많이 편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아니면 많이 모여있다 보니, 배경처리가 쉽지 않은 환경이거나, 무리에서 분리해 잡아낼 수 있는 꽃이 없다면 그냥 무리 전체나 일부를 담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맨 아랫사진은 여럿이 모여 있는 구도로 담고자 했지만 렌즈 안 바꾸고 그냥 90mm 마크로렌즈로 찍었다. 90mm 화각으로 저렇게 담기 위해 꽤 먼 거리를 물러나야 했다.
8월 하순정도 되면 슬슬 지기 시작하는 것 같다. 꽃술은 아래로 처지고, 꽃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는 기다란 모양의 열매가 열리는 것 같더라.
덥지만 어쨌든 곧 9월이다. 8월 하순에 찾아간 남산야외식물원의 비비추는 이제 거의 다 시들어가고 있었다.
이 꽃도 내년에 다시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