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7R2와 sel90m28g와 함께, 노 들어온다 물 저어라
일기예보를 보니 낮에 소나기가 내린다고 했다. 금방 그칠 거고 강수량도 별로 안 되는 듯하여 적당히 편한 신발과 레인커버와 우비만 챙겨서 나갔는데. 소나기... 랬는데 분명. 무슨 번개가 치고 비가 45도 각도로 내린다. 이렇게 포풍같이 몰아치는 빗속을 뚫고 사진을 찍을 용기도 장비도 없었다. 내 신발 방수 안 되는 건데...
버스를 기다리며 돌아갈까 말까 고민했다. 다행히 비는 좀 잦아들어서 그대로 출발했다. 여긴 오기 전에 예약해야 하는 곳인데. 기껏 자리 안 나는 거 예약하였더니만 먼 길 허탕 치는 줄 알았다.
새 카메라를 사기 위해 이전 카메라를 팔아버리고, 한 달 정도의 공백기 동안 사진 관련 책들도 읽고, 인스타나 500px이나 폴라 열심히 뒤지면서 참고할 만한 사진을 찾아 보았다. 새 카메라를 사면 여길 오겠다고 다짐하고 예약을 했다. 넓고 볼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사진 스타일의 틀을 조금 깨보고자 다시 접사에 도전하기로 했다. 마크로렌즈를 처음에는 장난감 대하듯 다루다 내쳤던 기억이 나서 조금 주저했는데. 이제는 꽃 하나를 찾아 조금 오래 방황하고 기다리더라도, 몇 십 몇 백 장을 헛찍더라도 내 사진을 조금 더 나아지게 만들려면 미시세계를 들여다 봐야 하지 않나 싶었다.
이 날 여기에는 90mm 마크로렌즈와 loxia 2/50만 들고 갔는데. 막상 비가 오다 보니 렌즈를 바꿔 끼는 데 제약이 너무나도 심했다. 풍경 구도마저 거의 90mm 마크로로만 찍었다.
처음 갔을 때는 35mm 렌즈 하나만 들고 갔어서 꽃 먼저 찍기보다는 숲을 먼저 보러 갔다. 이번엔 마크로를 들고 갔으니 반대로 돌기로 하고 먼저 화목원 근처부터 돌기 시작했다.
비가 적당히 내리는 날은 특별한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비록 레인커버를 껴야 하고, 우비를 입으면 땀이 비 오듯 하고, 렌즈 교환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귀찮지만. 그래도 귀찮음을 참고 비 오는 날 나갈 수만 있다면 우리가 흔히 보는 해 뜨고 지는 시간의 빛나는 사진과는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진짜 엄청나게 흔들린다.
다행히 새 카메라에는 iso 최저 셔터스피드 설정 기능이 있다. 검색해보니 왠지 타사에는 이미 옛날부터 있는 기능인데 이제야 넣어준 느낌이지만... 어쨌든 이걸 설정해 놓고도 근접해서 찍으니 흔들리고, 계속 흔들린다고 들면서 찍으니 팔에 점점 힘이 빠지고 사진은 더 흔들리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망원 마크로가 고난이도랬는데 이걸로도 제대로 못 찍으면 망원은 아예 핸드헬드가 불가능하거나 팔운동을 열심히 하거나 해야겠구나 싶었다. 그나마 스크린으로 확인했을 땐 건졌겠거니 했는데 집에 와서 보니 다들 미묘하게 흔들려 있다. 일부러 셔속은 1/250이나 1/500 유지하면서 찍었건만 하...
정원 구석에 한 무리 꽃들이 있었다. 흔한 꽃들 중 하나만 떼내어 구도를 잡을 수 있는 꽃들을 골랐다. 그리고 배경이 깨끗하게 떨어지는 각도를 찾았다. 못 찾겠다 싶으면 다음 꽃으로. 이 걸 여러 번 반복하다 안되겠다 싶으면 아예 다른 무리를 찾아간다. 우연히 원하는 꽃을 찾았다 싶으면 이리저리 카메라를 돌려가며 그나마 구름에 가려진 빛을 더 잘 받는 각도도 찾아보고, 여러 각도에서 여러 장을 찍은 다음 집에 와서 자르고 지지고 볶고.
한창 남부지방에 수국 축제가 열렸을 때 시간이 없어서 못 갔는데, 여긴 나무수국이 피어 있었다. 흰색 또는 옅은 초록빛을 띄고 수국처럼 뭉쳐서 여러 송이가 핀다. 나무에 여러 다발이 뭉쳐 피어나니 멀리 떨어져 찍은 것도 아름답지만, 가까이 붙어서 깨끗한 배경을 찾아보는 것도 꽤 괜찮은 것 같다.
윗 사진은 미리 구도를 잡아 놓고 팔 아파서 쉬고 있는데 잠시나마 해가 들어올 때 찍었다. 저번에 왔을 때 비 온 뒤 하늘은 흐리지만 간간이 햇빛이 내려오는 순간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거다 싶으면 약간 기다려보기도 하게 되었다. 다만 여기는 일찍 문 닫으니 온종일 기다릴 순 없다.
철쭉은 여러 송이가 피던 화려한 봄~초여름과는 달리 잘 찾아보지 못하는 흔한 나무가 되어 있었다. 도라지꽃이 아직도 피어 있는 줄은 몰랐다. 이걸 찍으려고 보니 꽃 안쪽이 보이게 잡으려면 출입금지구역에 들어가든가 회양목을 꺾어야 하므로 포기하고 꽃 뒤쪽을 잡았다. 이것도 괜찮다 싶었다. 넓게 피는 꽃을 잡는 법이나, 꽃 뒤쪽을 잡는 법은 아직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싶었다.
일단 마크로 안 흔들리게 찍는 법부터 어떻게 좀...
왜 호박벌은 무궁화에 자주 보일까.
'국립' 수목원이라 그런 건지 무궁화가 제철이라 그런지, 건물 주변 정원은 온통 무궁화나무들로 뒤덮여 있었다. 마침 비도 그쳤겠다, loxia 2/50으로 갈아 끼우고 무궁화 나무를 찍으려 하는데 자꾸 호박벌이 웅웅거리며 주변을 맴돈다. 구도 잡겠다고 잘못 움직이다 공격받을 수도 있으니 움직임이 상당히 제한되었다. 호박벌만 있는 줄 알았더니 서너 종류의 벌들이 주변을 돌고 있었다.
국립수목원을 돌아다녀 보니, 숲 구역과 정원 구역이 나뉘어 있는 느낌이었다. 입구 주변과 낮은 곳은 정원들 위주로 꾸며져 있고, 입구에서 멀 수록 숲이 웅장하게 펼쳐진다.
이날은 들고 간 렌즈가 렌즈이니 만큼 입구 주변과 정원 중심으로 돌았다. 아쉽게도 화목원과 온실은 10월 초 정도까지 공사중이었고, 봄만큼 꽃이 화려한 여름도 아니라 꽃은 흔한 몇 종류의 꽃을 빼고는 다양하게 피어 있진 않았다. 비도 와서 사람도 없고 빛도 그렇게 드라마틱하지 않았다. 다만 나는 흐린 날을 좋아하므로 꽤 괜찮았다.
거의 문 닫을 시간이 다 돼서 나가려는데 자꾸 빛이 좋아진다.
가다가 다시 돌아와서는 자리를 잡고 막 돌려가며 찍을만한 것을 찾기 시작했다. 기껏 찾아도 잠깐 구름 사이에 해가 나올 타이밍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니 일단 재빨리 잡고 막 누르고 봤다. 초점 맞은 건 집에 가서 찾아도 되는 일이니.
더 있으면 분명 빛이 더 좋을 것 같지만, 문 닫을 시간이라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