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내 사진이 만들어지기 까지, 앞으로 내 사진을 만들 때까지
카메라를 처음 잡은 지 9년이 지나서야 내가 어떤 사진을 주로 찍어왔고, 어떤 사진을 찍고 싶은 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 전에는 그닥 그런 것에 큰 관심이 없이, '이런 사진 멋있다 나도 이런 사진 찍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어 왔었다. 나름 '저 잉간 사진 잘 찍는다' 하는 얘기가 듣고 싶었으면서, 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었을까 싶은데. '난 이걸로 돈 받는 프로가 아니니까' 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아는 동생의 지인이 신부대기실 사진을 찍어 달라는 부탁을 했었다. 부랴부랴 미래를 위한 투자랍시고 스피드라이트를 구해서는 열심히 찍었다. 가볍게 사례를 받았다. 찍으러 가는 길에 '몇 년 찍다 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집에 와서 보정까지 다 해서 넘기고, 시간이 지난 다음 하드에 남아있는 사진을 다시 보게 되었다. 좀 많이 실망스러웠다. 내가 자신 없어하는 인물사진에, 플래시 사용 경험도 없어서 카메라가 조절해 주는 광량에 의존할 수 없었고. 그냥 가볍게 사례를 받은 만큼의 사진이구나 싶은 느낌이었다. 이 때부터 '난 어떤 사진을 찍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을 슬금슬금 하기 시작했다.
첫 사진기를 산 첫 달.
노출에 대한 기본 상식을 그럭저럭 빨리 잡고 나서, 레퍼런스를 찾기 위해 여기 저기를 뒤적이던 때였다. 여기 저기 돌아보다, 최근 음란한 이슈로 망한 모 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그 곳에서 마치 광활한 몽골 평원 같은 사진을 보게 되었다. 나도 저런 사진을 찍고 싶다고 생각했다. 잘은 모르지만 어쨌든 내셔널 지오그래픽st 사진을.
근데 가만 보니 정작 내가 사진을 찍었던 것은 그런 소위 '아재'들이 찍었던 사진들과는 완전히 거리가 있었다. 이렇게 찍어 놓고 하드에 몇 년간 결과물을 쌓아두면서도 내가 이걸 깨닫게 된 것이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그것도 최근 시작한 SNS에 사진을 올리겠다고 옛날 사진을 뒤적거리다 깨닫게 되었다. 이미 광활한 풍경사진을 찍는 사람과 나는 생활 환경부터 차이가 났는데, 정작 내가 찍고 싶은 사진은 그런 사진이었다.
디지털카메라를 샀다.
이제 몇십 몇백 컷을 찍어대도 필름값이 나가지 않는다. 돈 없는 학생이던 내겐 이것은 축복과도 같은 조건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레퍼런스는 광활한 풍경사진을 찾아 대면서, 내가 담는 사진은 그런 것과는 거의 거리가 먼 사진들만 찍고 있었다. 심지어 사진 강의를 들었음에도, 과제 하는 데만 급급했지 내 사진에 대한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하드를 샅샅이 다시 뒤져보니, 본 것을 조금이나마 따라해 보겠다고 은연중에 노력은 했던 모양이다. 내게 나갈 기회와 돈이 있었을 때, 나는 갑자기 먼 곳으로 나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갑자기 나가서 산과 바다를 담았다. 어쩌다 해외도 나가서 해외도 담았다. 그리고 내 사진을 돌아봤을 때, 이 때의 기억은 좋았지만 사진은 근 몇 년간 과연 발전하였는가 싶어 자괴감이 살짝 들었다. 밥 벌어 먹으려고 사진 찍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왕 하는 거 잘 하면 나도 만족하고, 자랑해서 칭찬받으니까.
더 나은 기술로 만들어진 카메라를 사고도, 난 대체 내 사진이란 것에 대한 개념을 제대로 잡아놓지 않았던 것 같았다. 대부분의 순간에서 걷는 발길 닿는 대로 찍었고, 일단 봐서 예쁘다 싶으면 찍었다.
다만, 약간은 '내가 원하는 상황을 기다리는' 것을 조금씩은 터득하게 된 것 같았다. 이 때까지 기다린다면 이런 풍경이 나오겠지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은연중이 아닌 제대로 해봤던 것 같다. 만들 수 없다면 기다리는 수밖에. 기술이 발전해서 스마트폰으로 일출/일몰각을 재거나, 삼각대를 펼쳐 상황을 기다리고, 아니다 싶으면 자리를 옮겨서 다시 기다리는 것을 반복해 보았다.
하지만 그런 것을 하고 나니 체력이 너무나도 쉽게 방전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예전의 사진으로 다시 돌아가버리더라.
또 더 나은 기술로 만들어진 카메라를 샀다. 이번엔 현행 최신 성능이다.
그리고 또 이전과 별다를 것 없는 사진들을 찍었다.
나 카메라 왜 산 거니...
그래도 아예 발전이 없진 않았다. 여기보다 저기가, 이렇게보다 저렇게 찍으면 더 예쁠 것이다라는 것이 슬슬 몸으로 익혀진 것 같은 느낌은 들었으니까.
그러던 중, 내 사진 생활에 대한 생각을 바꿔준 계기가 있었다.
수동 렌즈를 사고 예전 필카처럼 사용해 사진을 찍다가, 내 사진들이 500px Popular에 올라가버렸다. 세상에 이것은 가문의 영광... 물론 얼마 안 가서 다시 내려가버렸지만. 어쨌든 내 사진이 제대로 인정받는 첫 경험이었다.
나를 처음으로 500px Popular에 올려준 렌즈를 팔아버리고, 지름신이 강림하사 돈을 막 뿌려가며 다양한 렌즈를 샀다 팔았다 했다. 15mm 이하급 초광각도 써보고, 마크로 렌즈도 써보고, 200mm급 망원렌즈도 써보고 별 렌즈를 다 써봤더란다. 그리고 사진의 exif 정보를 모두 뜯어서 분석하게 되었다. 돈과 시간이 많이 깨졌다.
요즘 킨포크st 미세먼지 색감이 유행하는 것과, 필름 카메라가 힙스터의 허세템으로 자리 잡은 것을 알게 되었다. 위에 썼던 수동 렌즈의 '무보정 색감'에 대한 느낌을 잊지 못한 차에, 나도 '내가 좋아하는 색감'을 찾아보고자 했다. 마침 필름 시절에 인상 깊었던 색감을 흉내내고, 사진을 찍으러 갔다 올 때마다 설정값을 미세하게 조정하기 시작했다. 이미 보정한 사진도 다시 열어서 다시 보정했다. 디지털 이미지라 떡지면 초기화하고 다시 보정하면 되니까 편하게 보정했다. 이것도 시간이 많이 깨졌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외국의 레퍼런스들을 참조하기 시작했다. 인스타를 페북 같은 곳으로 간주했던 시절이라, 500px과 텀블러를 주로 참고했다. 내가 몰랐던 여러 기법들을 시험해보고, 최대한 기회가 생기면 찍었다.
그리고 카메라가 바뀐 만큼, 바뀐 판형과 기술에 적응하고 나서는 이전에 신경 쓰지 않았던 보케나 배경 흐림 등까지 신경 쓰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후보정을 이전보다 훨씬 많이 신경 쓰게 되었다. 영상은 포스트 프로덕션 단계가 당연하고 중요하게 여겨지는데, 왜 사진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던지.
새로운 SNS를 시작했다.
지금 내겐 거의 유일하게 B컷도 관대하게 올릴 수 있는 곳이 되었다. 그리고 인스타에 먹스타그램만 있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된' 사진들이 넘쳐남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자연물마저 정돈된 느낌을 주도록 찍더라. 이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또한, 킨포크st 미세먼지 색감을 조금 더 따라가게 되면서, 예전의 보정법을 좀 더 개선할 수 없을까 연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겨우내 그 SNS에 올릴 사진을 찾기 위해 장농하드를 뒤지며 인생컷을 찾다가, 내가 진정으로 무슨 사진을 찍고 싶었는 지를 알아가고 있다.
내가 처한 상황이 어차피 바쁜 직장인이라 주말밖에 시간이 없었다. 광활한 몽골 풍경st 사진은 내가 쉽사리 따라할 수 없다. 텀블러나 500px에 넘쳐 나는 엄청난 자연물 역시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이다.
나는 주로 주변의 자연물을 많이 찍어 왔었다. 풀, 나무, 꽃 등등... 화려한 거리나 야경보다, 흐린 날의 숲과 공원을 주로 다녔었고. 내가 그런 사진들을 찍기 위해 이것 저것 치밀하게 계산하지 않더라도 나도 만족하고 칭찬받는 사진이 나오는 그런 사진들을 내가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이런 사진을 찍는다. 내가 은연중에 많이 찍었으며, 내가 잘 할 수 있으며, 앞으로 더 먼 곳을 바랄 수 있는 사진이고, 결국 끝을 보고 싶은 사진이다.
지구 반대편 오지에 있는 엄청난 자연만큼, 버스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공원과 낮은 산의 자연 역시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몇 날 며칠을 기다리지 않더라도, 길을 걷다 보이는 것들에서 예쁜 구석을 찾을 수 있는 사진을 담기를 원한다.
기기적으로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사진보단, 그냥 손쉽게 찍을 수 있는 사진을 원한다. 아직은 인내심이 부족하고, 기다리는 동안 다른 곳의 다른 것에 대한 호기심이 더 크다. 기법적인 면보단 감각적인 면에 더 집중하고 싶다.
하나의 주제를 잡을 때는 주제가 모든 것을 압도하는 사진을, 전체 장면을 담을 때는 한쪽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모든 것이 자세한 사진을 원한다. 차분한 이미지를 담기 위해 끊임없이 색과 톤을 연구하고 사진을 끊임없이 바꿔 나가고 싶다.
이 생각도 예전의 무보정주의에 대한 생각처럼, 자다 이불킥을 날리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