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지름신 소환글
취미로 사진을 시작한지 햇수로는 9년째, 군대로 인한 공백기를 빼면 거의 7년 정도 되었다.
여러 가지 카메라와 렌즈를 샀다 팔았다 하면서 수업료... 라 쓰고 감가상각으로 돈을 날리고, 이제야 장비와 렌즈군을 거의 정리해간다. 여태껏 사진을 찍어 오면서 느낀 점들과, 그래서 내가 결국 어떤 장비를 갖추게 되었는 지에 대한 글을 써보려고 한다.
그리고 지름신을 소환한다.
나는 시즈모드 삼각대를 펼쳐 놓고 특정 장소에서 기다리는 종류의 사진은 크게 관심이 없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사진을 찍다 보면 '여기서 조금만 더 기다리면 이런 순간이 펼쳐질 텐데'와 '이거 기다리는 동안 다른 곳에 가면 다른 순간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로 생각이 갈린다. 난 보통 후자 쪽에 손을 들어주는 편이다.
특정 장소에서 여행하듯 길을 따라 입구부터 출구까지 걸어가며 사진을 찍고, 보통 중간에 '이거다' 싶은 지점이 있다면 그 때는 한 장소에서 여러 컷을 찍거나 기다리는 편이다. 일부는 시즈모드 됐고 일부는 퉁퉁퉁퉁퉁퉁!
그리고 나는 하나의 주제를 잡을 때는 주제가 모든 것을 압도적인 사진을, 전체 장면을 담을 때는 한쪽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모든 것이 자세한 사진을 원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이런 것들은 기피하게 됐다.
분명 망원화각의 이점은 존재한다. 의외로 자연물을 찍을 때는 원래 그렇든 인위적으로 막아놨든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구간이 존재한다. 못 들어가는 곳에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져 있다면 출입금지구역 따위 무시하고 들어가든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그런 때 망원렌즈 생각이 절실해진다.
망원렌즈를 쓸 때마다 느꼈던 거지만, 진지하게 내가 이걸 '활용하겠다'라는 느낌보단 '신기해서 갖고 논다'는 느낌이 자꾸 들어서 싫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화각대 렌즈는 무겁다. 안 무거운 망원렌즈는 화질 따위 버린 거다. 무슨 통나무 들었다 놨다 하는 것도 아니고 중간에 가다 귀찮아서 촬영을 포기하게 되더라.
분명 예전에 풀프레임 디지털카메라를 쓸 때의 로망 같은 존재였지만, 막상 풀프레임 카메라를 산 뒤에 써보니 흥미가 싹 사라진 화각이다. 역시 이 화각대도 숲 사진을 찍는 데 거리를 벌리기 힘든 순간에 유리하게 쓰일 수 있다. 전봇대 만한 나무의 전체 모습을 담으려는데 움직임이 제한된다면 반드시 이 렌즈 생각이 나게 된다.
하지만 이 화각은 사물의 디테일 보다는 장면 전체를 보게 만든다. 내가 찍는 풍경은 정말 풍경이라기 보다 풍경 같은 구도로 피사체를 담는 것을 선호하는데, 그런 면에서 이 화각은 디테일을 생략해 버리고 전체적인 장면에 집중하게 만든다.
일단 최대 개방값은 밝으면 밝을수록 좋다. 심도를 늘리는 것은 쉬우나, 낮추는 것은 장비 한계 이상으로 불가능하니까. 피사체와 카메라의 거리가 가깝고 배경과의 거리가 피사체와 멀다면 흉내는 낼 수 있지만, 같은 조건에서 더 밝은 렌즈를 갖다 대면 오히려 더 쉽고 더 효과가 극대화된다.
당연하게도 자연물은 특정 사물 하나만 날 좀 보라고 툭 튀어나와 있거나 종잇장마냥 얇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심도는 .4렌즈를 써도 언제나 2.0 이상을 사용하게 되는데... 어차피 안 쓸 거면 .4 렌즈가 무슨 소용이겠냐 싶다.
물론 있으면 좋고 사고 싶지만 비쌈. 그리고 내가 쓰는 마운트에 아직 별로 없다.
위키백과에서 물리학 문서를 찾아봐도 느끼는 거지만, 거시세계만큼이나 미시세계도 정말 엄청난 분량이 존재한다. 자연물 잘 담는다고 마크로 촬영까지 잘 하느냐 하면 그건 아니고. 일단 엄청난 인내심을 요구한다. 그냥 찍을 때는 입김 수준의 바람만으로도 사진이 흔들려버리니 바람이 멈출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스택 기법을 쓰자니 이건 이거대로 시간을 엄청 잡아먹는다. 일단 대상을 찾고 나면 자리를 잡고 기다려야 하는 점에서, 낚시를 해본 적은 없지만 낚시가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근데 이건 도전해봐야 할 영역인 것 같아 언젠가는 시도할 생각이다.
결국 나는 이런 종류의 장비를 쓰게 되었다.
난 한 장 한 장 신중하게 사진을 담는 편이다. 순간적인 것을 포착하는 때는 내겐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그리고 내 사진은 한 쪽 끝부터 반대쪽 끝까지 모두 화질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줌렌즈보다는 단렌즈가 유리하다. 다만 줌렌즈가 없으면 귀찮은 순간이 있어서 줌렌즈를 아예 팔아버리진 않았음.
그리고 내가 찍는 피사체는 대체로 움직일 일이 없다. 풀이 발이 달려서 찍으려고 하면 도망가버리고 그러진 않으니까. 그래서 AF/MF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지금 카메라의 AF가 불만이라 오히려 MF가 더 편할 지경.
광범위 줌렌즈와 망원 고정 줌렌즈와 초광각 렌즈 등을 써보고 나서 EXIF를 뜯어 보니, 난 대부분 순간에서 24-80 이상 구간을 벗어나질 않더라. 그래서 결국 렌즈를 싹 다 정리하고 표준 화각대 위주로 들이고 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표준 화각대 정도면 거의 대부분의 상황을 담아낼 수 있더라. 결국 들고 나가는 건 어쨌든 표준화각이었다. 망원은 무겁고, 광각은 범용적이질 못해서. 가끔 더 못물러나거나 더 못들어가서 담지 못하는 안타까운 순간이 있긴 하지만 그렇게 절박하진 않아서 다행이다.
지금 나는 이런 장비를 쓴다.
나오자마자 산 비운의 바디. 중고값이 폭락해서 손가락을 빨게 만든 녀석.
다만 현존 바디 중 꽤 높은 수준인 2400만 화소에서 풀프레임 판형은 정말 매력적이다. D810이나 A7R에 비하면야 떨어지지만, 적어도 그 이하급 카메라에 비해서는 절대 화질에서 뒤떨어지지 않는다. 틸트 되는 액정은 더 이상 나를 바닥에 엎드리지 않게 했고,
다만, AF 방식이 어찌 되는지 느린 건 둘째 치고 바로 앞의 조그만 물체를 잡을 때 정말 약하다. 자연물이 어디 도망가지 않으니 느린 AF는 참아낼 수 있는데, 바로 앞의 조그만 물체를 못 잡는 문제는 정말 사람 성질나게 한다. D1H보다도 못한 AF라니... 열 받아서 수동렌즈 쓴다.
그리고 나는 세컨바디를 쓰지 않는다.
렌즈 여러 개를 끼우고 쓰기엔 들고 다니기 무거워서, 한 카메라에 집중하다 보니 다른 카메라에 거의 신경을 못쓰게 된다. 여태껏 투바디 체제로 가서 1년 이상 안 팔고 버틴 적이 필카+디카 조합 시절 딱 한 번뿐이다. 그나마도 필카는 거의 처박혀 있었고.
중고가가 더 떨어져서 강제 투바디 쓰기 전에 바꿀 예정이다.
ㅋ
이 렌즈는 처음에는 이전 50mm 렌즈를 썼던 경험에 비추어 올라운더로 사용하다가, 최근 35를 들이면서 색기담당 단일 포인트의 매력을 극대화시키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원래 아웃포커스 심한 사진은 별로 취향도 아니었고 신경 쓰지 않았지만, 풀프레임 시대부터 신경 쓰게 된 배경 흐림을 이 렌즈를 쓰면서 더 생각하게 되었다.
피사계심도 내 화상은 매우 날카롭지만,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약간 가벼운 정도의 무게감을 갖는다. 그리고 심도 밖은 화려하게 뭉개버린다. 35mm보단 배경 압축률도 좋고. 그렇다고 풍경이 나쁘냐 하면 단렌즈 자존심이 있지...
수동렌즈라지만 초점링은 매우 부드럽고, 초점 확대 시 보이는 화상이 AF렌즈들 초점 조정할 때보다 훨씬 뚜렷하게 보인다. 이 렌즈를 쓴 이후로 카메라가 지원하는 MF 보조기능 따위 전혀 쓰지 않는다.
다만 55보단 낫지만 여전히 최소초점거리는 짧은 편이라 그게 좀 아쉽다. 수차는 의외로 55 수준의 수차를 보임. 그리고 록시아 렌즈가 MTF차트로 볼 때는 실망스러운데, 실제 결과물로 볼 때 의외로 괜찮다.
예전에는 35mm 화각에 대해 다소 의문점이 많이 들었었다. 그런데 이 몇 번 렌즈를 빌려다 필드테스트를 해보고 뭔가 심상치 않아서 질러보니 이건 정말... 놀라움 그 자체다. 왜 그렇게 사람들이 35mm 렌즈를 찬양하는지 이제서야 알 것 같다.
50mm 이상 렌즈처럼 주제에 집중하고 배경을 날리고자 마음 먹으면 충분히 배경이 날아가고, 내가 모든 것에 집중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한쪽 끝부터 반대쪽 끝까지 나뭇잎 한 장의 디테일도 놓치지 않으면서 장면을 잡아낼 수 있다.
수동렌즈라는 점에서는 같은 loxia 2/50과 비슷한 특성을 보인다. 비교적 최근에 산 탓에 렌즈에 적응한다고 맨날 들고 나가지만, 이렇게 들고나가다 50이 먼 느낌이 들까 봐 걱정될 정도로 애착을 갖고 사용하고 있다. 거의 이 정도면 예능 앵벌이 55와 50에 이은 메인 자리를 꿰찼다고 느껴질 정도.
역시나 최소초점거리는 짧은데 더 짧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수차가 의외로 좀 많이 발생한다.
비록 APS-C 판형 카메라였지만 50mm대 화각을 한 6년 동안 붙박이로 달고 다니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50mm 화각은 만능이라는 믿음이 있다. 이 렌즈 역시 그러한 믿음에서 샀다.
이 렌즈는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엄청난 화질을 뽑아 주는 렌즈다. 화질이 필요한 순간이라면 주저 없이 이 렌즈를 들고 나간다. loxia 2/50을 들인 이후로는 2470과 함께 벤치 신세고 화각대가 겹치는 렌즈는 원래대로라면 정리했겠지만, 이 렌즈의 엄청난 화질 때문에 감히 팔지를 못하겠다. 그리고 지금 유일한 AF 단렌즈라는 점도 쉽사리 이 렌즈를 포기 못하게 한다.
성능은 이미 여러 포럼에서 검증해 줬으니 무슨 말이 필요할까. 답이 없을 때 가면 되는 렌즈다.
최소초점거리가 50mm대 렌즈 치고는 화병날 수준으로 멀고, +5mm에서 오는 애매함이 약간 발목을 잡는 때가 더러 있다. 수차는 현행 렌즈임에도 ZM 렌즈 현대화 개수버전인 록시아 수준으로 많은 편.
개인적으로 2470렌즈는 내겐 맞지 않는 느낌이 든다. 벌써 이 화각대 내에 단렌즈를 무려 세 개나 가지고 있고, 내가 표준 줌렌즈를 3달 이상 가지고 있어본 적이 없다.
이 렌즈는 화질면에서는 명성에 미치지 못한다. 다만 의외로 타사의 현행 표준 줌렌즈에서는 볼 수 없는 묵직한 느낌이 있다. 사물을 다소 무겁게 담아주는 편이고, 그런 면에서 만족하고 있다. 게다가 지금 내 카메라 마운트에서 이 정도 성능의 이 화각대 줌렌즈 자체가 없다.
광각보다 망원에서 화질이 떨어지고, 24mm대 단렌즈가 없는 탓에 이 렌즈는 거의 광각 또는 여행 담당이다. 화질도 사실 명성이나 기대에 미치지 못할 뿐 결코 나쁘진 않다. 물론 단렌즈를 세 개나 쓰다 보니 아쉽기는 하지만.
쓰다 보니 렌즈가 다 자이스네 나 허세왕인 듯 ㅡ,.ㅡ
원래 이제는 광각 단렌즈와 마크로렌즈를 들일랬는데, 아마 마크로렌즈만 추가하지 않을까. 마크로렌즈만 있다면 거시세계와 미시세계를 모두 평정(...)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허세를 부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