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고요수목원, 빛축제
11월부터 4월 초순까지, 동절기 정원의 모습은 꽤 황량하다. 풀과 나뭇잎들은 말라 비틀어졌거나 이미 관리되어 없어져 있고, 초록과 원색보다는 갈색과 무채색 위주의 풍경이 펼쳐져 있다. 보통 이런 때는 온실이 있는 식물원에 갔다면 온실에 들어가거나, 황량한 풍경 그 자체를 찍기 위해서 정원을 찾는다. 아니면 그냥 날도 추운데 쉬든가.
아침고요수목원은 겨울 기간에 등축제를 하는 것 같았다. 물론 밤에 봐야 의미가 있는 등축제인데다, 여기는 너무 멀리 떨어진 곳이라 대중교통으로는 답이 없어서 그동안 이런 풍경은 보지 못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야경을 잘 안 찍기도 하고...
마침 온실을 찍기 위해 아침고요수목원을 찾았다가, 청평역행 버스 막차가 8시인 것을 확인하고는 이날은 불이 켜지는 저녁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온실에서 한참 동안 사진을 찍다가, 손이 저려와서 잠시 쉴 겸 렌즈를 바꿔 끼고 정원을 천천히 돌았다.
침엽수 말고는 초록을 보기 힘든 계절인데, 낮에 등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보는 것도 나름 괜찮았다. 전깃줄이 거슬리긴 했지만.
빛나던 날의 아름다움이 모두 탈색되어, 화석처럼 남아 있는 수국들이 보였다. 채도만 빠졌을 뿐 형태는 만개할 때와 차이가 없었다.
가을의 흔적과 겨울의 모습, 봄의 조짐이 동시에 보이고,
목련은 거의 준비를 마쳤고, 벌써 피어난 봄꽃이 있었다.
슬슬 노을이 지고 있었다.
해가 적당히 저물기 시작하자, 정원 곳곳에 깔린 전등에 불이 들어왔다. 사람들이 무슨 공연처럼 일제히 작은 환호성을 지르는 것이 꽤 신선했다.
하지만 슬슬 몸은 추워졌고, 아직 해가 완전히 저물지 않아서 일단 온실에서 조금 쉬었다 가기로 했다.
해가 완전히 저물어 하늘이 적당히 검게 변하고, 손난로의 온기가 다시 살아났다 싶을 때 다시 밖으로 나왔다.
낮과는 딴판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정원의 낮고 높은 나무들은 낮의 색과는 다른 해석이 들어간 빛을 내고 있었다.
청계천에서나 볼 수 있는 각종 조형물이나 터널형 구조물부터, 나무에 여러 색의 전등이 입혀져 있었다. 꽤 괜찮은 광경이라 그런지, 여태껏 아침고요 수목원을 찾았던 때 중 이 날 가장 많은 사람을 봤다. 찍을 공간조차 안 나올 정도로 길에 사람이 많았다.
빛이 여러 색깔이라 화밸을 기껏 잡아 놓으면 틀어져버려서, 아예 화밸은 오토로 놓고 다녔다.
마침 보케 표현이 괜찮은 loxia 2/50을 들고 온 덕분에 이리저리 보케놀이도 해봤고,
불빛 덕에 낮과는 다른 모습을 담아보기도 했다.
비록 9시까지 볼 수 있었지만, 손난로의 온기가 식어가고, 입구에선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막차가 끊기기 전에 수목원을 나섰다.
겨울에 볼 것 찾기가 쉽지 않은 정원에서 색다른 모습을 담아보는 것도 꽤 괜찮은 것 같았다. 비록 시간은 오래 걸리고 날은 춥지만, 오랜만에 야경을 찍고 나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아침고요수목원 빛축제는 3월 27일까지 한다고 되어 있었다.
w_ A7R2, Loxia 2/50
LumaFonto Fotografio
빛,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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