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시작하며
미국을 떠나온 지 정확히 1년이 지났다. 미국에서 고양이 둘과 네 살배기 아이, 육아휴직을 낸 남편과 함께 2년간 살다가 작년 여름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언제까지고 지속될 것 같던 그 시간이 끝났다. 한국에 돌아와서 어느덧 익숙한 일상을 반복하고 있지만, 아직도 미국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심장이 두근두근 뛴다. 광활한 자연 속에서 분주하게 여행 다니던 그때가 그립고 그곳이 그립다.
우리는 남편의 회사 연수로 인해 미국으로 건너갔고, 기간이 정해진 삶을 살았다. 그동안에 가장 주력한 건 영어학습도 쇼핑도 아닌 여행이었다. 북에서 남으로, 동에서 서로 미국을 가로지르며 40여 개 주를 여행했다. 때로는 캠핑카로, 때로는 텐트만 들고 잘도 다녔다. 미국인도 가기 힘든 미국 안의 숨어 있는 진주 같은 곳을 구석구석 쏘다니며 자연의 위대함에 새삼 놀라고, 그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 보냈다.
어떻게 보면 미국에서의 삶 전체가 통째로 하나의 장기 여행과도 같았다. 미국인도 교민도 아닌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체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편하고 익숙한 한식당보다 동네 퍼브에 가서 사람 구경하기를 즐겼고, 아이에게 영어 한 마디 가르치기보다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을 보여주러 다녔다. 황무지가 끝도 없이 펼쳐진 무의미한 땅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했다.
그리고 고정된 틀에 맞춰 아등바등 사는 게 맞다고 생각했던 생각의 여러 가지 틀이 무참히 깨졌다. 아이의 프리스쿨에서 만난 학부모들, 교회에서 만난 교민들, 여행지에서 만난 새로운 인연들을 통해 조금은 다르게, 저마다의 행복을 찾아 사는 모습을 엿봤다. 지방에서 서울로, 강북에서 강남으로, 더 넓은 평수의 아파트를 향해 일제히 방향을 잡고 줄 서서 ‘집’과 ‘교육’에만 올인하는 한국에서의 일반적인 삶이 이제와 팍팍하게 여겨지는 이유다.
우리가 미국에서 ‘잘’ 살았다고 할 수만은 없다. 미국에 있는 동안 우리 가계는 플러스에서 마이너스로 한없이 기울었다. 아이가 너무 어려서 영어교육은 처음부터 기대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만의 여행을 자유로이 즐기고 새로운 세상을 체험하는 것밖에 할 게 없었다. 그런 경험들은 이제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자산으로 남았다.
2년이란 시간은 길고도 짧다. 처음엔 몰라서 헤매다 이제 좀 살만 하니 돌아와야 했다. 한국으로 돌아갈 날짜를 정한 뒤부터 미국에서의 모든 게 아쉬워졌다. 마지막 여행, 마지막 가을, 마지막 3월, 마지막 하루……. 그렇게 수많은 ‘마지막’들을 챙겨 보내고 안녕을 고했다. 인생도 이렇지 않을까? 멋모르고 살다가 알만할 때 떠난다.
이 브런치는 미국에서의 삶과 여행을 조금이나마 소개해보려고 열었다. 우리처럼 미국에서 살아갈 준비를 하는 이들, 미국으로 여행을 떠나려는 이들, 그저 자유롭고 싶은 이들, 인생이라는 큰 여정 위에서 방랑하는 이들에게 공감할 만한 무언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함께 수다 떨 수 있는 거리가 되기를 수줍게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