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미국에서 새 터전이 되어준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에 처음 도착한 날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해 여름 노스캐롤라이나의 하늘은 눈부시게 파랗고 우주만큼 넓었다. 커다란 미니밴을 타고 조용한 마을에 내렸다. 화씨 92도라는 알 수 없는 기온 속에 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어린 딸은 피곤해서 몸을 기댔고, 냥이들은 케이지 안에서 바둥거렸다.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 몇 장에만 의지해 계약한 낡은 싱글 홈 앞에 다다랐다. 열쇠를 하나 받았다. 조그만 열쇠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앞으로 그 집에서 살아갈 2년의 삶을 책임져줄 열쇠다. 여느 택배박스를 열 때보다 설레면서도 긴장됐다. 손끝의 떨림을 가라앉히며 열쇠를 돌렸다. 딸깍. 나무로 만든 가벼운 현관문이 열렸다. 미지근한 냉기가 나오는 에어컨이 우리를 맞이했다. 아, 여기가 우리 집이구나. 그렇게, 미국에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눈 떠보니 미국에 다다른 그 시점에서 일 년 전으로 거슬러 가본다. 여느 날처럼 아이가 잠든 밤에 남편이 퇴근해 집으로 왔다. 그는 늦은 저녁을 먹으며 말했다. 해외 연수를 지원할까 싶어. 미국에서 한번 살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지호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곧바로 되기는 힘들 테고 1~2년은 시도해봐야 될 거야. 그러고 나서 석 달 뒤, 남편에게서 카톡이 왔다. 여보, 우리 미국에 갈 수 있게 됐어.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른 기회가 찾아왔다. 우리가 정말 미국에 간다고? 어떻게 살지? 지호는? 고양이는?... 수많은 물음표 이전에, 나에게 미국은 한 번도 살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드는 무미건조한 나라였다. 10년 전 방문한 뉴욕은 매력적이었지만, 살고 싶을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월등한 영어 실력과 미국에 대한 지식도 없이 짧은 여행 경험만으로 미국에서 살아볼 마음을 먹기에는 상상력이 힘에 부쳤다.
미국에 갈 준비를 하며 머리와 몸이 따로 놀았다. 마음은 여전히 끌림 없는 미지의 세계를 두려워하고 있었지만, 미국에 갈 항공권부터 끊었다. 두 달 전에 겨우 집을 구했고, 한 달 전에 미국으로 보낼 짐들을 박스에 담아 배편으로 보냈다. 동물병원을 오가며 고양이의 검역 서류를 준비하고 환전을 했다. 한국에서 살던 집을 정리하던 날, 밤을 꼬박 새워서 세간살이를 정리한 끝에 집을 나섰다. 출국하는 공항에서 커다란 이민가방 다섯 개, 트렁크 두 개, 고양이 케이지 두 개,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줄을 섰다. 이제 진짜 가는 거야?
그리고 총 14시간 비행과 3시간 대기 끝에 도착한 미국 땅에서 7월의 쨍한 햇빛에 정신을 못 차렸다. 같은 지구인데 왜 이렇게 다른 걸까? 햇볕은 뜨겁고 거리는 초록으로 빛났다. 노스캐롤라이나는 미국의 남동부에 있는 주다. 캘리포니아나 뉴욕과 같이 대도시가 모여 있는 주에 비해 집세가 저렴한 편이고, 뉴욕이나 시카고, 캐나다로 동부 여행을 다니기에 편하다. 동부에 있지만 겨울이 견딜 만하다. 듀크대, UNC(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와 같이 유명한 대학들이 있고 연구단지가 있다. 주도(州都)인 랄리의 다운타운이나 샬럿에 가면 제법 도시 느낌이 나지만, 너른 시골 마을이 대부분이라 한적하고 평화롭다.
미국 어딜 가든 자연이 가까이 있는데 노스캐롤라이나도 마찬가지다. 곳곳에 크고 작은 공원과 캠핑장이 있다. 서부처럼 대규모 국립공원이 있는 건 아니지만, 대서양 바다를 끼고 있어서 나들이 갈 곳이 많다. 노스캐롤라이나는 라이트 형제가 처음 비행기를 날린 국립 보존지역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우터뱅크스, 윌밍턴에는 사람들이 게 낚시를 하러 자주 간다. 4시간가량 더 가면 머틀 비치로 유명한 사우스 캐롤라이나에 갈 수 있다. 아이들 데리고 물놀이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남편은 UNC에서 연수를 받기로 했다. 집은 대학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캐리라는 동네를 택했다. 캐리에서도 울창한 나무들이 줄지어 있는 오래된 단지에 살았다. 나무로 지어진 전형적인 미국의 소박한 집들이 모여 있는 조용한 동네다. 옆집에는 쌍둥이 초등학생 자매를 기르는 백인 가족이 살았다. 그 집 아저씨는 왠지 깍쟁이처럼 보였지만 차를 타고 나가는 길이라도 눈을 마주칠 때면 꼭 손을 들어서 인사를 해줬다. 맞은편 집에 사는 일본인 아주머니는 알록달록한 꽃들로 가득한 정원을 부지런히 가꾸곤 했다.
우리가 살던 집은 40대 초반의 중국계 미국인 프로그래머가 세를 준 집이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구하기 위해 직접 미국 부동산 사이트를 뒤져서 어렵게 잡았다. 지은 지 20여 년이 된 낡은 2층 집이다. 거실에는 벽난로가 있고 높은 천장에 커다란 팬이 돌아갔다. 앞뒤에 조그만 뜰이 있고 언제든 바깥으로 통하는 유리문으로 경치가 보였다. 곳곳에 먼지가 쌓여있고, 방충망은 낡고 벌레가 많았으며, 창문도 삐걱거렸지만, 그 모든 단점을 덮을 만큼 위치와 환경이 좋았다.
집 앞 테라스에 크레이그리스트를 통해 중고로 구입한 흔들의자를 놨다. 흔들의자에 흔들흔들 앉아 있으면 미국의 일상이 풍경처럼 지나갔다. 턱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우체국 아저씨는 문이 없는 작은 트럭을 타고 다니며 집집마다 우편함에 우편물을 넣어줬다. 동네 사람들은 큰 개를 이끌고 산책을 다녔다. 해질녘에는 반딧불이가 반짝였고 밤이 되면 하늘에 별빛이 은은했다. 봄에는 옆집 마당에 분홍색 꽃나무가 피었고 가을에는 마을 어귀의 나무들이 붉게 변했다. 겨울에는 눈이 무릎까지 쌓여서 사흘 내내 집에만 갇혀있는 경우도 몇 번 있었다. 그렇게 사계절을 두 번 보냈다.
그러는 동안 숱하게 여행을 다녔다. 여행을 다니느라 한 달에 2~3주밖에 집에 머물지 못했지만, 그 날들은 매우 소중하고 강렬했다. 남편은 아이를 프리스쿨에 데리고 다녔고, 나는 ESL 수업을 들으며 주말마다 한인교회에 나갔다. 가끔씩 아이를 데리고 랄리나 더램의 박물관과 도서관에 가면 키즈카페 부럽지 않았다. 모리스빌의 쌀국수집, 캐리의 본드 파크와 브루어리, 에이펙스의 중고서점과 피자집은 우리가 좋아하는 장소였다. 식구들이 어딘가 나갈 데가 생기고, 익숙한 거리가 만들어지면서 어느새 노스캐롤라이나라는 지역에 스며들어갔다.
자동차가 아닌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올 때면, 새벽에 노스캐롤라이나 RDU 공항에 떨어지곤 했다. 공항에서 우버를 타고 마을로 들어오는 길에 늘 눈이 산뜻해졌다. 서부여행 내내 시야를 덮었던 황톳빛이 사라지고 하얀 집과 초록 잔디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어딜 다녀봐도 노스캐롤라이나만 한 데가 없는 것 같아.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남편은 말했다.
내 집이 제일 편하지. 아이 옷을 갈아입히고 냥이들에게 캔이라도 먹이고 난 뒤, 청소기를 돌리고 짐을 한참 푼 뒤에야 침대에 눕는다. 이미 해가 훤하게 떠오른 아침이다. 초록이 쏟아지는 창을 블라인드로 가려도 이름 모를 새소리가 넘어와 귓속을 파고든다. 아이를 따라 뒤늦게 잠을 청한다. 그 순간 느껴지는 낮은 텐션. 여행을 끝마쳤는데 아직도 여행하고 있는 듯한 이 느낌은 뭘까. 편안하면서도 낯선 무언가가 나쁘지 않았다. 일상이지만 괜히 새롭고 설레던 그 느낌이 가끔 그립다.
자, 본격적인 여행 이야기는 다음 회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