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종림 Jul 23. 2019

미국 최남단에서 경험한 힐링 캠핑

키웨스트 Key West

어디든 남쪽의 끝은 최상의 아름다움이 농축되어 있는 것 같다. 한국의 최남단에 신비로운 섬 마라도가 있다면, 미국의 남쪽 끝에는 키웨스트가 있다. 키웨스트에 가기로 한 뒤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바다로 쭉 뻗은 해안 도로를 달리다 보면 수평선 위로 햇살이 부서져서 반짝반짝 빛나겠지. 눈부심을 못 참고 가늘게 실눈을 떠서 바라보면 멀리 쿠바가 넘실넘실 보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만난 키웨스트는 조금 달랐다. 파란 바다가 아닌 우락부락한 팔에 새겨진 퍼런 타투가, 뭉실뭉실한 구름 대신 희뿌연 담배연기가 강렬했다.   

    

플로리다 주 남서쪽에는 2000여 개의 섬들이 있다. 이 섬들을 플로리다 키스(Florida Keys)라 부른다. 그중 가장 끝에 자리한 섬이 키웨스트다. 플로리다 남쪽 끝에 있어 기후가 따뜻하고, 아름다운 리조트와 해변이 펼쳐져 있는 휴양지다. 헤밍웨이의 생가가 있으며, 쿠바를 닮은 이국적인 느낌으로 가득한 곳이다.      


테마파크가 몰려있는 플로리다의 올란도로 캠핑을 갔다가 이틀 정도 시간을 내서 키웨스트에 가보기로 했다. 키웨스트는 올란도에서도 6시간가량 더 내려가야 한다. 아침에 출발해서 한낮의 해가 머리 위에서 꺾일 때 키웨스트로 들어갔다. 육지부터 수많은 섬들을 연결한 오버시즈 하이웨이(Overseas Highway)를 타고 들어갔다. 총길이가 126마일(약 202km), 연결되어 있는 다리만도 42개에 이른다.      


“창밖을 봐봐. 바다 위에 떠 있는 것 같아.” 아이와 나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일제히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왼편으로는 대서양이, 오른편으로 걸프해가 보인다. 길 위를 달리는 느낌이 마치 바다 위를 달리는 것 같다. 키웨스트는 얼마나 이국적이고 아름다울지 기대하며 캠핑장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은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캐빈도 캠핑카도 안 빌리고 오직 텐트로만 버티기로 했다. 올란도에서 생각보다 쾌적하게 텐트 캠핑을 했기에 키웨스트에 오면서도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다.  

키웨스트 가는 길

     

키웨스트 캠핑장에 도착한 첫 느낌은 난민촌이 따로 없다는 것. 일단 텐트와 텐트 사이가 무척 비좁다. 텐트 근처에 차를 세워둘 자리가 마땅치 않을 정도다. 미국에서는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캠핑장에서도 구획을 나눠놓고 옆 텐트나 옆 캠핑카와 어느 정도 떨어진 위치에 자리를 정해준다. 하지만 이 곳에는 그런 게 없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텐트 사이트라고 줄을 쳐놓고 알아서 자기 자리를 잡으란 식이다.      

키웨스트 캠핑장

빽빽한 텐트 사이를 비집고 자리를 겨우 잡았다. 더위가 정수리부터 내리쬐는 날씨에 남편은 땀을 비 오듯 흘리며 텐트를 설치했다. 그동안 아이를 데리고 앉아서 캠핑장을 두리번거렸다. 사람들은 해먹을 치고 눕거나 캠핑의자를 꺼내 앉아 히피처럼 캠핑을 즐기고 있었다. 웃통을 벗고 수영장을 오가는 청년들도 보였다.


“저기 좀 봐봐. 냉장고에 에어컨까지 싸왔어.” 남편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캠핑카들이 모인 곳은 신세계였다. 캠핑카 주위에 집안 살림살이를 한 가득 펼쳐놓고 있다. 커다란 냉장고부터 에어컨, 그릴, 가스통 등 없는 게 없다. 아, 캠핑은 원래 저렇게 하는 거였나? 캠핑카 안에 다 있는 거 아니었어? 여타 캠핑장에서는 부유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관광버스만 한 캠핑카에 내려서 조용히 산책이나 하는 모습만 봐오던 터라 영 새로웠다.      

"이틀만 자고 갈 거니까 좀 참자." 남편은 내 눈치를 슬금슬금 봤다. 언제나 새로운 일을 벌이는 건 그의 몫. 천국 같던 올란도에서 굳이 키웨스트로 오자고 한 것도, 이 캠핑장을 예약한 것도 본인이기 때문에 그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으리라. 하지만 직접 와보기 전에는 상황을 알 수 없으니 어쩌랴. 지호는 의외로 그 캠핑장에 적응을 잘했다. 텐트 안팎에서 장난감을 주섬주섬 갖고 놀고, 좁은 텐트 사이를 졸졸졸 잘 쫓아다녔다.      

문제는 캠핑장 전역에 퍼져 있는 19금의 분위기다. 미국 어딜 가나 흡연에 그리 엄격한 편은 아니지만 이 곳 캠핑장은 유난히 흡연이 자유롭다. 여자든 남자든 노인이든 할 것 없이 줄담배를 물고 다닌다. 또 타투가 없는 이들은 출입이 불가능하기라도 한 듯, 몸에 저마다 붉고 푸른 그림이 하나씩 그려있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예외가 없다. 젊은 시절 호기롭게 장식한 타투가 세월에 주름질 때까지,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저녁이 되자 밤늦도록 캠프파이어를 하는 이들이 많았다. 노랫소리와 수다 소리가 들려왔다. 더 이상 공간이 없는 줄 알았는데, 해가 진 뒤에도 새로운 텐트가 계속해서 빈 자리를 채웠다. 우리 텐트 바로 옆자리에는 젊은 청년들이 비집고 들어 왔다. 태그도 떼지 않은 그들의 엉성한 새 텐트 안에서 희희덕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휴 정신없어. 이 사람들은 뭐가 그리 신나서 웃고 떠든대?” 시끄럽고 사람 붐비는 걸 질색해하는 남편은 투덜거렸다. 소리내어 놀고 싶어도 그럴 꺼리가 없는 우리 가족은 어느새 그들의 왕성한 에너지에 기가 눌린 듯하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기계음 없이도 불야성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저 신기하게 바라봤다.       


화장실과 샤워장을 오가며 잘 준비를 마쳤다. 신발을 벗어놓고 텐트의 출입구 지퍼를 열었다. 밖이야 어떻든 텐트 안으로 들어오면 내 집처럼 아늑하다. 바스락거리는 침낭 속에 쏙 피고들면 포근하고 쾌적하기까지... 아파트는 살수록 더 넓은 공간이 아쉬운데, 캠핑은 다른 것 같다. 늘 좁은 공간이지만, 만족하는 마음으로 그 안을 꽉 채우는 기회를 만난다.      


사람들의 소리가 잦아들고 아이도 잠들었다. 새벽 두시쯤 됐을까. 텐트 사이로 갑자기 밝은 빛이 번쩍 하더니 밖이 소란스러워진다. 뚝딱뚝딱 해머 소리도 들리고, 허스키한 여성의 목소리가 분주하게 무언가를 지시하고 있다. 어, 밖이 왜 이렇게 밝지? 밖으로 나가 보니 이 시간에 옆 자리에 누군가 들어와 또 텐트를 치고 있다. 우리 텐트처럼 폴대만 펴서 세우는 3~4인용의 간편한 텐트가 아니다. 8인용 이상 큰 텐트가 바닥에 놓여 있다. 백인 엄마는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들에게 해머질을 시켜가며 이제 막 작업을 시작하고 있다.      


문제는 그들이 켜놓은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우리 텐트를 향해 정통으로 조명을 쏘아대고 있었던 것이다. 왜 이 늦은 시간에 텐트를 치고 있으며, 예의없이 헤드라이트를 켠단 말인가. 미국에서 캠핑을 많이 다녀봤지만 이렇게 매너 없는 사람은 처음 봤다. 나는 안 되는 영어로 쏘아붙였다.

“텐트 안에서 아이가 자고 있어요. 조용히 좀 해주세요.”

“미안하지만 텐트를 쳐야 해서 어쩔 수가 없어요.”

“지금 새벽 두 시가 넘었잖아요. 헤드라이트라도 당장 끄세요!”

이내 언성이 높아졌다. 남편은 행여나 싸움이 커질까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지켰다. 그녀는 한참 만에 툴툴거리며 자동차를 돌려 헤드라이트를 껐다. 텐트로 돌아와 뒤척이며 잠을 청했지만 불쾌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만난 그녀는 꽤 건장한 체격에 팔 가득 그려진 퍼런 타투를 과시하며 뿌연 담배연기를 뿜어대고 있다. 그런 이와 오밤중에 실랑이를 했다니 뒤늦게 오금이 저려왔다. 여기는 미국 아닌가. 혹시 그녀가 총이라도 꺼냈다면 어쩔 뻔했나. 주위에는 역시나 자유로운 영혼들의 천국이다. 옆 자리에 모녀는 해먹을 치고 모닝 담배를 입에 물고 한가로이 모닥불을 피우고 있다. 일찌감치 사람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키웨스트는 정말 이런 이들만 모인 곳일까.      


이 캠핑장에서 왠지 우리만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처럼 겉도는 느낌이 짙어졌다.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남들처럼 에어컨과 냉장고를 싸오지는 못했지만, 우리에겐 대형 밥솥이 있다. 코스코에서 30달러에 구입한 10인용 아로마 밥솥을 텅텅거리며 꺼내 공용 전기 코너에 놔두고 쌀을 안쳤다.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나고 구수한 밥 냄새가 났다. 지나가던 젊은 아가씨가 냄새가 참 좋다고 한 마디 거든다. 텐트 사이트라서 요리는 밖에서 할 수밖에 없다. 양파를 썰어넣고 삼겹살에 빨간 고추장과 꿀로 맛을 낸 제육볶음을 해 먹었다. 캐빈을 잡았더라면 에어컨 바람이라도 쐬었을텐데... 캠핑 와서 밥먹을 때면 행복도가 가장 올라가는 남편은 찌는 더위 속에서도 밥을 다 비웠다. 나 역시 캠핑이 고되지만 맛있는 음식 해 먹는 재미라도 있으니 이걸로 됐다. 한상 거하게 차려먹고는 캠핑장 안의 수영장으로 갔다.      

조촐한 캠핑의 점심

수영장에 오니 본격적으로 온몸이 캔버스 인양 화려한 타투를 새긴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한 남자는 신나는 음악을 틀고 느끼한 막춤을 췄다. 턱수염이 덥수룩한 또 다른 남자는 우쿨렐레를 들고 왔다. 자쿠지에 발을 담그고 연인에게 아름다운 선율의 노래를 들려줬다. 거친 외모와 달리 그의 노래는 우쿨렐레의 음색처럼 가늘고 수줍었다. 그의 연인이 기쁨의 볼 키스로 화답한 순간은 조금 아름다웠지만, 그가 자쿠지 주변에 버리고 간 담배꽁초가 금세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어딘지 로맨틱하면서도 기이한 풍경이 겹치는 와중에, 지호는 수영장에서 신나게 수영을 했다. 캠핑장에 가만히 있으면 땀이 줄줄줄 흐르는 더위를 떨쳐내기에 더없이 좋다. 내친김에 바다로 나갔다. 캠핑장 안에서 몇 걸음만 걸으면 바다로 이어진다. 설탕을 뿌려놓은 듯 햇살이 여기저기서 부딪혀 반사되는 아름다운 바다가 나타났다. 바닷가는 울창한 숲을 끼고 있다. 흡사 정글 같은 그곳에서 정체모를 생명체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엄마, 저게 뭐야?”

“앗, 이구아나가 있어.”

한두 마리가 아니라 집단으로 서식하고 있다. 지호는 덤불 속에서 보호색으로 몸을 숨긴 이구아나를 찾으며 생태학습을 제대로 했다.      

캠핑장의 해변과 이구아나(오른쪽)

캠핑장을 벗어나 마을로 나갔다. 거리에는 햇살이 따스하게 살아있다. 야자수 사이로 파스텔 톤 목조 주택들이 화사하게 빛났다. 이국적인 가게들이 많다. 지호와 가게에 들어가서 키웨스트의 독특한 기념품들을 구경했다. 키 라임파이를 파는 가게를 지나 남미풍의 기념품 가게들을 지났다. 거리에는 신기하게도 커다란 닭들이 벼슬을 세우고 유유자적하게 걷고 있다. 아이는 신나게 닭을 쫓아다녔다.


키웨스트의 최남단 포인트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최남단을 상징하는 기념물이 바닷가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다. 헤밍웨이의 눈을 빌어 바라본 바다는 끝없는 망망대해다. 하늘과 맞닿는 수평선이 에메랄드빛으로 물들어 있다. 쿠바까지의 거리가 불과 90마일(약 144km). 이곳이 미국의 끝이라니 실감이 안 난다.  

키웨스트에 있는 미국 최남단 포인트

키웨스트는 헤밍웨이와 인연이 깊다. 그의 대표작 ‘노인과 바다’는 키웨스트와 쿠바를 오가며 낚시한 경험에서 나온 작품이다. 키웨스트에 그의 생가가 남아있는데, 그곳에 고양이들이 살고 있다고 해서 관심이 갔다. 헤밍웨이가 키우던 고양이는 신기하게도 육손이다. 늦은 오후 문닫힌 헤밍웨이 생가를 대문 사이로 빼꼼 들여다봤다. 울창한 정원 속에 집이 폭 파묻혀 있다. 웨딩 촬영을 하는 커플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내 프레임 안에 들어왔다.       

헤밍웨이의 생가

헤밍웨이가 즐겨 찾던 바인 슬리피조는 관광객들로 바글바글 했다. 넓은 홀은 사람들로 꽉 찼고, 높은 천장에는 형형색색의 국기들이 매달려 있다. 벽에는 노인과 바다에 등장할 법한 커다란 청새치 모형이 걸려있다. 마침 입구 쪽에 자리가 나서 테이블에 앉았다. 우리 테이블을 담당하는 나이든 여성 웨이트리스에게 생맥주부터 주문했다. 다양한 맥주 브랜드가 적혀있는 개성적인 탭들이 일렬로 죽 늘어서 있다.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모습만 봐도 설렐 것이다.

헤밍웨이가 단골로 찾았다는 슬리피조

잠시 후 차가운 서리를 머금은 플라스틱 컵에 담긴 맥주가 나왔다.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로컬 맥주다. 서서히 올라오는 더위를 가라앉히기에 충분할 만큼 시원했다. 넓은 홀 끝에서 드럼과 기타 소리가 들리며 라이브 공연이 시작됨을 알렸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속 주인공처럼 흥겹게 음악을 들으며 맥주잔을 부딪혔다. 관광지의 분위기를 한껏 느껴본 뒤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도떼기 시장 같은 캠핑장에서 두 번째 밤을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를 데리고 캠핑장에 있는 조그만 놀이터에 나가보았다. 비슷한 또래의 금발머리 여자 아이가 보인다. “Do you want to play with me(나랑 같이 놀래)?” 지호가 다가가서 유일하게 외우는 영어 문장을 써먹었다. 둘은 금세 함께 어울렸다.      


아이가 노는 동안 주위를 보니 한쪽 잔디밭에 플라스틱 의자들이 정렬 중이다. 오늘 저녁 공연을 한다고 들었다. 옆에 있던 백인 아저씨가 남편에게 인사를 건넸다. 민머리의 우락부락한 아저씨가 지호와 함께 노는 핑크 공주님의 아빠라니 의외다.


“당신들은 뭘 끊고 왔어요?”

그가 말을 걸었다.

“끊다니 뭘요?”

“여기에서 일 년에 한 번씩 마약과 알코올을 끊은 이들이 모여 캠핑하며 페스티벌을 열어요. 지금이 그때죠. 오늘 저녁때 공연을 하기 위해 준비 중이에요.”

“정말요? 우리는 그냥 캠핑 온 건데…….”      


옆에서 흰 연기 폴폴 날리며 전자담배를 피우던 아이 엄마가 꺽꺽꺽 웃었다. 알고 보니 이 캠핑장은 1년에 한 번씩 알코올과 마약을 끊은 이들이 모여 힐링 캠핑을 하는 곳이다. 지금이 그 기간이고 토요일인 오늘 대망의 공연이 열린다. 우리처럼 일반인이 오는 일은 드물다고 한다. 하필이면 이 시기에 우리가 키웨스트에 온 것이다.      


이들은 알코올과 마약을 끊은 대신 담배 중독이 된 건 분명하다. 캠핑장 안에는 어딜 가든 담배꽁초가 밟혔다. 그 옆에는 술 대신 고 카페인이 함유된 에너지 드링크 캔들이 나뒹굴었다. 어쨌거나 아이를 데리고 오기엔 최악의 조건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이 없는 건 아니었다. 지호보다 조금 커 보이는 초등학생 또래의 아이들도 꽤 많았다. 미국의 부모들은 자녀에게 자연스레 자신의 치유 과정을 보여주고 응원을 받는 걸까. 그런 모습을 보며 자란 경험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궁금해졌다.      


키웨스트 캠핑장이 이렇게 붐비고 흥에 넘쳤던 비밀을 알게 되니 어느덧 캠핑장을 떠날 시간이다. 아쉽게도(?) 알코올과 마약 치유 캠핑의 하이라이트인 공연이 열리기 전에 올란도로 출발해야만 했다. 햇빛이 흰 눈처럼 쏟아지는 해안도로를 지나 다시 평화로운 올란도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한쪽에는 캠핑카가 줄지어 있지만, 역시나 고요하다. 기타 소리도 밤늦게까지 떠드는 소리도 없다. 텐트마다 알록달록한 옷가지가 걸려 있는 빨랫줄도 보이지 않는다. 왠지 사람 소리가 그립고 허전한 느낌마저 들었다.      


키웨스트를 떠난 뒤 다른 곳으로 수없이 캠핑을 다녔지만 그곳처럼 활기차고 북적북적한 캠핑장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언제 또 그렇게 요란하고 시끌벅적하게 캠핑을 할 수 있을까. 사람들에 부대끼고 사람 냄새 물씬 나던 캠핑도 지나고 나니 다 재미있던 기억으로 채색된다.      


Down this street you will find a blue so deep it will float you(이 거리를 내려가면 너를 붕 떠오르게 만들 깊고 진한 파랑을 만날 것이다). 키웨스트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며 길바닥에서 봤던 글귀가 떠오른다. 자연과 음악을 사랑하고 자유와 열정이 넘치는 이들이 모이는 곳. 우리가 머물던 키웨스트는 짙은 블루로 남아 히피들과의 추억을 떠오르게 만든다.

다시 돌아온 올란도 캠핑장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화려함과 황량함 사이 과감한 베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