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손목에 까르띠에 프랑세즈를 올리는 날

한국에서 사랑받지 못한 다이애나비의 시계

by 루미 lumie



한 여인의 손목에서 시작된 시계가 있다.


카메라에 쫓기면서도 단 한 번도 감정을 흘리지 않던,

그녀는 자신의 시선처럼 단정한 시계를 찼다.


까르띠에 탱크 프랑세즈.


그 시계는 왕실의 보석함에도

다이아 하나 없이 존재했다.


뾰족하지도, 반짝이지도 않지만

묵직하고 납작한 그 구조는

오히려 한 사람의 태도를 증명하듯 남았다.


그렇게 다이애나는 프랑세즈를 남겼고,

이후 메건의 손목을 지나,

지금도 서구의 여성 정치인들과

리더들의 손목 위에 놓여 있다.


단정히. 아무 감정도 없이.



까르띠에 프랑세즈는 어떤 시계일까


프랑세즈는 1996년,

까르띠에 탱크 시리즈의 한 가지로 탄생했다.


사각 프레임, 일체형 브레이슬릿, 그리고 메탈 텍스처.

팔찌가 아닌 시계 그 자체의 실루엣.


스틸과 골드, 혹은 다이아 셋팅 옵션이 있지만

정작 아름다운 건 아무것도 얹지 않은 기본형이다.


손목 위에 얹어지는 구조.


링크는 평평하고, 실루엣은 단단하다.


여성용 시계인데 ‘견고하다’는 인상을 남기는

드문 시계다.



그럼에도 왜 한국에서는 조용할까?


한국은 ‘감기는 시계’를 좋아한다.


얇고 가볍고, 팔찌처럼 감정에 기대는 시계들.

팬더, 탱크루이, 베누아처럼.


반면, 프랑세즈는 감기지 않는다.

단단히 놓인다.


광택도 은은하고, 반짝임은 거의 없다.

이 시계는 감정을 대신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이 시계를 선택한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보단 정리한 이들이었다.



나는 아직 팬더를 좋아한다


나는 팬더를 좋아한다.

작고, 반짝이며, 감긴다.


손목에 감정이 있다는 건

아직 내가 조금은 유약하다는 뜻일지도.



언젠가 내가 더 단단해지고,

더 이상 감정으로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프랑세즈를 손목에 올릴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그 시계는 ‘닿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시간에 다다른 자리에

놓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묵직한 절제와의 거리는,

오늘의 나에겐 아직은 조금 먼 이야기다.




#감정과태도 #시계는언어다

#까르띠에팬더vs프랑세즈







keyword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