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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이 끝난 자리에서 부드러움이 시작됐다

결혼, 그 이후의 나

by 루미 lumie


결혼을 앞두고,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완벽한 나’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드레스의 라인, 얼굴의 윤곽, 표정의 온도까지.


성당에 어울리는 클래식 드레스,

그리고 공간에 어울리는 은방울 꽃 부케.


드레스에 햇살이 닿는 각도와 온도도 생각하며,

그리고 부모님의 기대도 생각하며,

이 순간이 나의 최선이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때의 나는 여백이 두려웠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안 될 것 같았고,

조금이라도 모호하면 불안했다.


늘 긴장한 아름다움을 두르고 있었다.


어찌 보면 그동안 나는 좋은 학교, 인정받는 직업,

그동안 세상에서 ‘내가 잘 하면 좋아’라고

이야기 되는 것들을

성취하기 위해 달려왔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완벽하고 싶었던 시간들이 지나가고 나서야 깨달았다.


진짜 부드러움은

모든 걸 갖추었을 때가 아니라,

조금 비워졌을 때 시작된다는 걸.


지금의 나는 흐르는 셔츠를 입고,

귀에서 살짝살짝 흔들리는 귀걸이를 고른다.


주말에 남편이 출근한 날은,

일상에서의 가끔은 혼자의 여백도 즐긴다.


딱 떨어지는 선보다,

조금은 흘러내리는 라인이 더 편해졌다.


예전에는 “무표정이면 말 걸기가 왠지 어려워요”라는 말을 자주 들었고,

지금은 “이야기 나눠보면 되게 따뜻하시네요”란 말을 더 많이 듣는다.


그 변화가 참 고맙다.

예전의 나는 감정을 단정한 틀 속에 가두었지만,

지금은 그 여백 속에서 웃고 있다.


결혼이라는 시간은,

분명 내가 가장 단정하게 다듬어진 시기였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훨씬 ‘나다운’ 사람이다.


완벽은 나를 만들어주었지만,

여백은 나를 다정하게 만들어주었다.





#결혼이야기

#ENTJ의완벽주의를넘어

#성장의시간

#브라이덜기억

#나를닮은일상

#여백의미학

#감정의변화

#시대의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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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