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는 실패했나? 두 번째는 무슨 의미였을까?”
중학생 때까지 나는 전교권 성적과 반장을 놓치지 않는, 흔히 말하는 똑똑한 아이였다. 공부도 재미있었고, 스스로 해내는 힘도 있었다. 그런데 부모님은 나를 과학고에 보내고 싶어 하셨고, 그 기대에 따라 하루 종일 학원에 갇혀 수학과 과학만 붙잡게 되었다. 과학고는 결국 가지 못했지만, 비평준화 지역에서 가장 학구열이 높은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곳은 학생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한 하나의 공장 같았다. 강제로 이어지는 야간자율학습, 머리카락과 교복으로 대표되는 생활 규제, 듣고 싶지 않은 과목까지 억지로 들어야 하는 수업. 시험을 위한 시험이 이어질수록 자율성은 줄어들고, 창의성은 옥죄어졌다. 배움의 즐거움은 사라지고, 학교는 정답을 암기하며 버텨야 하는 공간이 되었다. 복잡한 문제를 스스로 구조화하고 탐구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학교의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결정적인 사건은 수능이었다. 고등학교 3년은 오직 수능날 단 하루를 위해 견디는 시간 같았다. 그 중압감 때문에 전날 밤 단 한숨도 자지 못했고, 결국 시험장에서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성적표를 마주했다. 나는 재수를 선택했다.
처음엔 “강남대성”, 서울대·의대를 가장 많이 보내는 학원에 다녔다. 효율을 극대화해 학생들을 공부만 하게 만드는, 또 다른 공장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탈출을 했다. 부모님이 좋다고 하던 학원, 세상이 다 좋다고 말하는 학원. 그러나 나에게는 고등학교와 다를 바 없는 곳이었다. 결국 부모님을 설득했고, 자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학원으로 옮겼다.
그때 비로소 나는 나답게 공부할 수 있었다.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공부 방법도 직접 개발했다. 듣고 싶지 않은 수업은 과감히 땡땡이치고, 자습실에서 내 공부를 했다. 집중이 되지 않을 때는 학원 밖으로 나가 뛰어놀기도 했다. 대신 컨디션이 좋을 때는 밥도 거르고 공부에 몰입했다. 나에게 맞는 공부법과 리듬을 찾아내자 성과가 따라왔다. 그리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정도(正道)”를 따를 때보다, 나만의 길을 개척할 때 나는 더 강해진다.
그때부터 나는 혼자 힘으로, 스스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하지만 두 번째 수능이 끝날 때까지도 나는 내가 장독립형이라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저 공부가 힘들고, 억압적인 환경이 답답하다는 느낌만 있었을 뿐이다. 재수를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 나는 장독립형이었구나.”
교육학에서 말하는 장의존형과 장독립형은 정보를 지각하고 처리하는 방식의 차이를 보여준다. 장의존형은 주변 맥락과 사회적 단서에 기대어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성향을 가진다. 반대로 장독립형은 복잡한 환경 속에서도 대상을 분리해내고, 스스로 구조화하는 데 강점을 지닌다. 문제는 이 두 성향 모두, 획일적인 교육 환경에서는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억압된 환경에서 장의존형은 더 의존적으로 변하고, 장독립형은 무기력하거나 반발적으로 변한다. 이는 자기결정이론에서 말하는 자율성·유능감·관계성이 충족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두 성향 모두 학습의 동기를 잃고 잠재력을 펼치지 못한다. 교육이 진정으로 성장으로 이어지려면, 학생들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성향에 맞는 경험을 보장해야 한다.
나는 고등학생 때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만약 알았다면, 엄마나 학교가 정해주는 방식이 아닌 내 방식으로 공부했을 것이다. 억지로 끌려가듯 하는 공부가 아니라, 스스로 구조화하고 탐구하는 공부를 했을 것이다. 그러면 분명 더 좋은 결과를 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뒤늦게라도 알게 된 것이 다행이다. 나에게 맞는 길은 결국 내가 찾아야 한다는 것. 그 깨달음은 지금도 내 삶을 지탱해주는 중요한 힘이다.
그 후 나는 내 철학을 세웠다. 스스로 길을 만들어야 한다. 세상이 억지로 끌어도, 나는 나의 방식으로 뚫고 나갔다. 그래서 늘 온 힘을 다해 살았다. 열심히 하는 것, 그것밖에 내가 잘하는 게 없었다.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더라도, 노력은 늘 다른 방식으로 보답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덕분에 많은 것을 이뤘고, 좋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힘주고 사는 삶은 결국 부러진다. 링 안의 세계(S 성향)를 벗어나, 링 밖의 세계(N 성향)를 만들며 살다보니, 지나치게 N 성향이 강해졌다. 게다가 나이가 들면서는 온 힘을 다해 달려드는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대학생이 열심히 달리면 패기로 보이지만, 직장인이 똑같이 달리면 불안해 보이고, 여유 없어 보인다.
그래서 나는 깨닫는다. 이제는 내 철학을 리노베이션(renovation) 해야 한다는 것을. 여전히 장독립형으로 살아가되, 힘을 빼고, 균형을 잡으며, 더 단단한 길을 새롭게 개척해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