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대 헤르미온느의 쓰러짐

"열심히 하는거 밖에 잘하는게 없어서요."

by 박루민

두 번째 수능이 끝나고, 첫 학기가 시작될 때까지 나는 놀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이 자유를 만끽하며 여행을 다니고, 늦잠을 자고, 입시 스트레스에서 해방된 기분을 즐길 때, 나는 홀로 노트북 앞에 앉아 프로그래밍을 붙잡았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네이버에 취직한 친구가 있었다. 그는 개발자로 일하며, 또래를 위한 개발자 커뮤니티까지 운영하고 있었다. 그 열정과 성취는 내게 큰 자극이 되었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나도 뭔가 만들고 싶다. 그렇게 나는 남들보다 한 발 앞서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미 달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성균관대학교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에 입학했다. 수능을 잘 보긴 했지만, 그때는 그 사실을 몰랐다. 첫 번째 수능에서 크게 실패했던 기억이 너무 생생했고, 또 마침 제도가 바뀌어 예측이 어려웠기 때문에, 대학 지원은 철저히 안전하게 했다. 국어와 영어가 A/B형으로 나뉘고, 과탐이 2과목으로 줄어드는 변화 속에서 배치표는 엉망이었고, 나의 자신감도 엉망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생각보다 낮은 대학에 들어왔다. 나보다 점수가 낮았던 친구들이 연고대에 쉽게 합격하는 것을 보면서 억울함과 배 아픔이 밀려왔다. 대학 문은 닫고 들어가야 하는데, 나는 활짝 열고 들어와버렸구나. 하지만 오래 슬퍼할 틈은 없었다.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여기서 최고가 되자. 그것만이 내가 살아남는 길이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내 혹사 스토리가 시작되었다.


나는 1학년 때부터 무모하게도 4학년 컴퓨터공학 전공 수업을 신청했다. 강의 첫날, 교실은 졸업을 앞둔 4학년들로 가득했고, 맨 앞자리에 앉아 있는 1학년 나를 바라보던 교수님의 눈빛은 불안과 의아함으로 흔들렸다. 하지만 나는 전혀 겁이 없었다. 망하면 망하는 거지, 오히려 재밌겠다. 4학년들을 다 뿌셔주마! 그렇게 시작한 수업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취업이 코앞에 닥친 4학년들의 절실함을 이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꽤 높은 학점을 받았다. 수업이 끝난 뒤, 교수님은 내게 연구실로 오라고 권유했지만, 나는 다른 길을 택하게 된다.


1학년 때 반장이 되면서, 교수님들과도 가까워졌다. 열심히 사는 내 모습을 본 한 교수님이 연구 제안을 하셨다. 반도체를 연구하던 분이었는데,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스탠퍼드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모교에 자리를 잡은 분이었다. 그 교수님은 내게 “성대에서 학부연구생을 하면, 스탠퍼드에 있는 내 연구실로 대학원을 보내주겠다”라고 유혹하셨다. 나는 그 꼬심에 넘어갔고, 그렇게 반도체 연구의 길에 발을 들였다.


그때부터 내 대학 생활은 달라졌다. 사실상 1학년 입학과 동시에 대학원생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랩실에 상주하며 과제를 하고, 실험을 하고, 논문을 읽었다. 주중에는 연구실, 주말에는 공모전과 해커톤. 삼성, 한화, 3M 같은 기업 대외활동에도 참여했고, 각종 대회에서 상을 타기도 했다. 2학년 때는 주 1회 삼성전자 인턴을 했는데,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수업을 몰아 듣고, 금요일마다 회사로 출근하는 독특한 일정이었다. 수업을 대충 들은 것도 아니었다. 학점은 여전히 높았고, 덕분에 추가학점을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학부 내내 반장과 학생회를 맡았고, 장기 봉사활동도 두 차례 했다. 나는 모든 걸 동시에 해내는 학생, 뭐든 다 하는 학생이었다.


잠은 사치였다. 하루 세 잔 이상의 커피가 기본이 되었고, 내 몸은 조금씩 무너져 갔다. 그리고 결국, 그날이 왔다. 2학년 기말고사, 전자기학 시험이었다. 마지막 시험이라 전날 밤을 꼬박 새우며 공부했고, 준비는 충분했다. 망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시험지를 받아드는 순간,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세상이 뿌옇게 흐려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리고 눈물이 터졌다. 나는 결국 백지를 내고 시험장을 나왔다. 인생 첫 번째 번아웃이었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멈춰 서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 길을 그대로 가서는 안 된다. 나는 내 철학을 바꿔야 한다. 고민 끝에, 휴학을 결심했다. 그리고 교환학생을 준비하기로 했다.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영어에 콤플렉스가 있었다. 영어는 좋아했지만, 시험공부는 질색이었다. 불규칙동사를 처음 접했을 때, 세상에 왜 규칙이 아닌 게 필요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흥미를 잃었고, 수능에서도 영어가 발목을 잡았다. 대신 나는 물리를 선택했다. 그것도 아무도 고르지 않는 조합, 물리Ⅰ과 물리Ⅱ. 머릿속으로 뚝딱 맞아떨어지는 해답의 명쾌함, 그것이 나의 성향에 꼭 맞았다. (아마 영어를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나는 서울대에 갔을지도 모른다.)


열심히 살다가 결국 쓰러진 그 시점에, 나는 결심했다. 영어병과 싸우자. 이번에는 도망이 아니라 정면승부였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숨어드는 대신, 나를 괴롭히던 가장 큰 벽을 향해 스스로 걸어가기로 했다. 교환학생이라는 이름의 여정은 내게 전쟁터처럼 느껴졌지만, 동시에 자유의 문처럼도 보였다.


그리하여 나는 독일로 향했다. 번아웃의 잔해 위에서, 다시 한 번 나를 세우기 위해. 혹사의 끝에서 찾은 숨구멍, 그곳에서 나는 낯선 언어와 문화와 맞서며, 결국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되었다. 쓰러져야만 볼 수 있었던 길, 그 길 위에서 비로소 나는 새로운 전환을 맞이했다.




아래는 내 대학 시절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다. 고등학교를 찾아가 멘토링을 하고, 전공을 설명하며, 학생들의 고민을 들어주던 활동 중 일부다. 하고 싶은 것도 잘하는 법도 몰라 방황하던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대학에 와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해내는 즐거움을 알게 된 뒤, 후배들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철학을 전하는 장면이다. (귀여움 주의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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