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Create Yourself 할 수 있을까?"
나는 양 발목에 각각 하나씩 타투를 가지고 있다.
처음 독일에 왔을 때 가장 놀랐던 것 중 하나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대부분이 한두 개쯤 타투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낯설고 부정적인 시선이 많은 반면, 독일에서의 타투는 그저 액세서리 같았다. 모범생도 종아리에 화려한 꽃을 새기고, 양복 입은 직장인도 소매를 걷으면 팔에 한두 개쯤 타투가 있었다. 심지어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조차 목덜미에 작은 문신을 하나씩 품고 있었다. 특히 내게 강렬했던 건 운영체제(OS) 수업을 가르치던 교수님이었다. 그의 양 팔은 타투로 가득했다. 한국에서라면 천재 교수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모습이었지만, 그는 누구보다 명석했고 자유로웠다. 나는 그때 처음 타투에 호기심을 품게 되었다. 독일을 떠나기 며칠 전, 결국 나는 타투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시술하는 타투가 불법이지만, 독일에서는 합법적이고 관리된 문화였다. 불법을 싫어하는 내 성향상, 지금이 아니면 타투를 새길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내 철학은 단순하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원하는 것을 해낼 수 있고, 혹여 실패하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보답을 받는다. 링 안에서 이길 수 없다면, 링 밖에서 새로운 규칙으로 이긴다.”
대학교 1학년 때 한화에서 주최한 방산 관련 대외활동을 지원했을 때도 그랬다. 아무런 경력 없는 신입생이 붙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나는 온라인 지원서 모든 항목에 “별도 서류 제출”이라고만 쓰고, 대신 자필로 내가 왜 이 활동을 하고 싶은지 몇 장에 걸쳐 빼곡히 적어 냈다. 신입생의 패기와 도발이 통했고, 나는 합격했다. 그 경험은 내 철학을 더 확고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발목에 작은 글자를 새겼다. “Create Yourself.” 이 짧은 두 단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첫째, 철학. 번아웃으로 지쳐 있던 그때의 나에게 던지고 싶었던 말이다. “Don’t wait for others to create you. Create yourself.”
둘째, 이름. 내 본명(찬영)의 이니셜이 CY다. 세상에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내 욕심도 함께 담았다.
“Create”는 라틴어 creare에서 왔다. 원래는 ‘낳다, 자라게 하다’라는 뜻이었고, 지금은 ‘새롭게 존재하게 하다, 창조하다, 결과를 일으키다’로 발전했다. 그 어원처럼, 나는 먼저 나를 자라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다양한 경험을 했다. 언젠가 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 꿈의 연장선에 지금 이렇게 책을 쓰고 있다. 그리고 “창조하다, 결과를 만들어내다.”라는 뜻도 늘 내 기준이 되었다. 졸업 요건만 간신히 채우는 대신, 나는 연구실에서 밤새 실험하며 첫 논문을 썼고, 국제 학회에서 영어로 발표했다. 학부 졸업 때 최우수 논문상을 받은 순간은, 나는 내 세계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라는 확신을 준 시간이었다.
대학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업 과제 발표가 끝난 뒤 교수님이 전체 메일로 내 이름을 언급하셨다. “찬영이는 과제 진행의 불편함을 핑계 삼지 않았고, 최소한만 하지도 않았다. 연구의 재미는 주도권을 잡을 때 생긴다. 다들 그 재미를 한 번쯤은 느끼고 졸업하길 바란다.”
그 말은 내 철학과 정확히 맞닿아 있었다. 나는 연구의 주도권을 쥐며 퀄컴 (미국 본사) 같은 회사, 버클리 같은 학교에서 내 연구를 발표했다. 학부 때와 마찬가지로 석사 졸업식에서도 최우수 논문상을 받았다. 학사와 석사를 모두 논문으로 1등을 하고 졸업했다는 사실은, 지금도 내 삶을 지탱해주는 큰 자부심이다.
석사 졸업 후, 전문연구요원으로 차량용 반도체 회사에서 일했다. 하지만 제품 설계와 양산 중심의 그곳에서는 내 방식대로 일할 수 없었다. 아무리 효율적인 설계 방법론을 제안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자동화를 밀어붙이는 내 주장은 번번이 묵살되었다. 그 경험은 내게 뼈아팠지만, 동시에 큰 가르침이 되었다. 전문연을 마치고, 삼성과 하이닉스 중 어디로 갈지 고민할 때, 그 경험이 내 선택을 결정지었다. 보상과 성과가 확실한 하이닉스 대신, 내가 연구하고, 방법론을 만들고, 새로운 일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삼성전자를 택한 것이다.
내 발목에 새겨진 “Create Yourself”는 여전히 내게 큰 힘을 준다. 남들이 정의한 길을 따라가는 대신, 스스로 길을 만들고, 그걸로 성과를 내는 것. 지치고 흔들릴 때마다, 나는 이 작은 문구를 떠올리며 다시 일어난다. 다만 이제는 고민이 조금 달라졌다. 너무 먼 미래만 바라보기보다, 지금 여기에서 성과를 쌓아가야 한다는 것. 회사라는 현실은 언제든 바뀌고, 경영진의 선택 하나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달라질 수 있다. 먼 꿈만 좇다 보면, 현실과 괴리 속에서 또다시 무너질 수 있다는 걸 나는 잘 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여기에서, 나는 어떻게 Create Yourself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