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신호등 건너편에는 두 개의 문방구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기 전 꼭 아이들과 함께 들리는 곳이었다.
그곳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있었다. 스틱과 버튼으로 조작되는 오락기. 1등을 뽑으면 당시 유행하던 게임기를 주던 종이 뽑기. 장난감과 소꿉놀이 세트. 갖가지 학용품과 출처가 불분명한 몇 백 원 단위의 불량 식품들이 6평 남짓의 작은 문방구 안을 빼곡히 그리고 오색찬란하게 채우고 있었다.
문방구는 두 군데였지만 아이들은 유독 한 문방구를 편애했다. 단순히 떡볶이의 유무라기보다는 옆 문방구 아주머니의 표정이 유독 불퉁했기 때문이다. 물건을 구경할라치면 훔쳐갈까 빤히 쳐다보길 일쑤였다. 아이들은 그곳을 피해 그 옆 문방구로 피신하듯 달려가곤 했다.
맛있는 떡볶이와 함께 인기 있는 것은 물건을 오래오래 넋 놓고 볼 수 있게 해 주었던 관대한 주인 할머니였다. 그녀의 곁엔 매번 작고 동그란 머리통 여럿이 왁자지껄 모여있었다. 좁은 상자에 잔뜩 모인 수평아리처럼 연신 삐약거리던 아이들의 모습이 기억난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오락기 옆에서 뭐가 어떻게 돼가는지도 모른 채 흥분도 했다가 순번 전쟁을 벌이는 아이들에게 질려 멀찍이 물러서곤 했다. 진열대 상단에 놓인 꽤 값나가는 물건에 눈독을 들이며 당시 내 용돈으로 살 수 있던 불량 식품들을 주머니에 쓸어 담았다.
아이들이 동시에 몰려들 때도 주인 할머니는 여유로운 태도로 우리를 맞이했다. 떡볶이를 종이컵에 담아주고, 물건의 위치와 여분을 정확히 알려주고, 쏟아지는 여러 질문에 대답도 하며 1인 다역을 기꺼이 소화해 냈다.
아이들의 호들갑을 미소로 응대하고 짜증스러운 일에도 목소리를 높이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러면서 떡볶이는 얼마나 정량으로 떠주었던지, 개수 하나 틀리는 법 없이 골고루 담긴 종이컵 떡볶이는 그 문방구의 최대 히트 상품이었다. 우리는 넘치지도 적지도 않은 떡볶이 양이 괜스레 아쉬워 두세 번 더 사 먹고는 했다. 떡볶이를 오물거리며 오락기와 씨름하는 아이들을 구경하고 새로 나온 문구를 건드려보기도 하며 시간을 때웠다. 마치 좁은 상자 속 수평아리처럼 옹기종기 모여있던 아이들이 하나 둘 사라진 그즈음이 내가 바로 오락기를 차지할 수 있는 타이밍이었다. 아이들이 많을 땐 나서기 머뭇거려지다 한적해진 틈을 타 여유롭게 독차지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시골집에 들어가는 버스는 한숨 잤다 일어난 대도 감감무소식일 테니 마지막 순번을 기다리는 일 따위 내게 일도 아니었다.
몇 없는 오락기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돌림판이 멈추면 나온 숫자만큼 메달을 받을 수 있는 오락기였다. 주로 꽝과 하나 혹은 두 개 정도가 걸리는 게 다였다. 하지만 그날은 스무 개. 장장 스무 개의 메달을 땄다. 두 손바닥을 메달이 나오는 출구에 가져다 대고 용솟음치는 숨을 씨근덕거렸다. 메달은 문방구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용돈이 부족해 사지 못했던 물건을 살 수 있는 기회였다. 구경하던 아이들의 부러움 가득한 눈길은 덤이었다. 별로 이겨본 적 없는 짧은 생에 소소한 승점을 얻어낸 순간, 나는 벅차오르는 가슴을 안고 얼른 주인 할머니에게 달려갔다. 내 손바닥에 가득 담긴 메달을 가져간 그녀는 내가 원하는 물건을 선뜻 내주었다.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문방구 할머니는 얼마나 부자일까?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들락날락하고, 또 이렇게 많은 잡동사니도 가지고 있고, 떡볶이도 그렇게 많이 파는 할머니가 절대 가난할 리 없다고!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부자인 할머니가 계속 여기 이 자리에 있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할머니의 문방구는 사라졌다.
여느 때처럼 하교 후 떡볶이를 먹으러 갔던 날이었다. 문방구 앞이 휑했다. 오락기도 떡볶이 철판도 모두 없어져 있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갈 곳 잃은 아이들은 옆 문방구로 모여들었다. 할머니의 부재로 호황을 맞은 옆 문방구는 그러나 얼마 못 가 다시 한적해졌다. 이제 아이들은 문방구에 들르는 대신 곧장 학원이나 집으로 향했고 운동장이나 골목 어귀에 모여 시시한 잡담을 나누다 헤어지곤 했다.
할머니의 문방구가 다시 문을 연 건 그로부터 몇 주 후였다. 그러나 할머니가 아닌 초면의 남자가 거기 있었다. 그마저도 얼마 못 가 문이 닫혔다.
몇 백 원짜리 장사로는 많은 수익을 낼 수 없다는 걸 '어른'이란 카테고리에 진입하며 자연스레 깨달았다. 문방구 할머니는 부자도 아니었고 어떤 부귀영화도 누리지 않은, 그저 부지런하고 친절한 문방구 주인이었을 뿐이었다. 문방구가 아이들로 북적였지만 할머니는 많은 돈을 벌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자신이 건강한 날 동안은 문방구를 열며 떡볶이를 만들었다. 아이들이 주절주절 쏟아내는 귀 따가운 질문에도 성실히 답해주며 뚱딴지같은 말들에 같이 웃어주었었다. 그런 사려 깊은 행동 덕에 아이들은 마음 편히 문방구를 들락거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곳이 북적였던 이유는 아이들과 오락기, 떡볶이 때문이 아니라 바로 할머니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때로는 사람이 곧 그 장소인 경우가 있다. 거기 그 사람이 있어 우리는 모여들고 웃고 떠들며 마음껏 북적였다.
예전 문방구 자리엔 근사한 새 건물이 지어졌다. 신식의 간판도 달렸고 도로도 정비했다. 모르고 갔다 치면 그곳에 예전 그곳이었는지 전혀 모를 만큼 변해있었다.
낯설어진 거리에서 오래전 풍경을 그린다.
몸이 닿지 않은 곳 없이 맞붙어야 설 수 있었던 좁은 문방구. 진열대 곳곳 줄줄이 매달린 잡동사니와 허름한 박스에 겹겹이 쌓여있던 불량식품들. 언제 들여온 지조차 모를 만큼 헐어있는 장난감 상자 더미와 그 옆에서 떡볶이를 만들던 할머니의 모습이 생생하다.
나는 할머니의 문방구에 가고 싶어질 때마다 내 안을 뒤적여 태엽을 감는다. 힘껏 감고 풀어낸 작은 무대 위에서 그 부분만이 오르골처럼 돌아간다. 색, 소리, 냄새, 맛 그 모든 형태가 그날처럼 북적거린다. 소란스러운 가운데 메달 오락기 앞을 지나는 내가 있다. 들뜬 얼굴로 두 손 가득 메달을 움켜쥐고 문방구 할머니에게 달려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