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지금까지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왜 그랬어요?
출판사 편집부에는 꼼꼼하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 모여있는 듯하다. 그러나 아무리 꼼꼼해도 사람인지라 완벽할 수는 없다. 책을 만들다 보면 종종 사고가 난다. 흔한 오탈자는 차치하고 수정사항을 놓치거나 저작권 문제의 내용 사고, 1도/2도/4도 컬러*에 따른 작업 사고, 사이즈 착오로 인한 재단 사고 그리고 예상이 불가능한 다양한 제작 사고가 그 예이다.
*몇 개의 색을 사용하는지에 따른 분류. 1도는 흑, 2도는 흑색+한 가지 색, 4도는 흔히 컬러라고 부르는 것으로 CMYK(청, 황, 적, 흑) 네 가지 색으로 분판된다.
6년 동안 백 권이 넘는 책을 만들었다. 모두 까다롭고 민감한 전공 서적이다. 국배판 변형(212*275) 사이즈에 2단 편집 그리고 페이지마다 표와 세밀한 일러스트, 사진이 많아 작업이 쉽지 않았다. 이 과정 중 나는 두 번의 사고를 냈는데, 두 번째로 낸 사고는 절대 잊을 수 없다.
디자인 시안도 새로 잡아 표지, 본문, 100컷이 넘는 일러스트까지 모두 다시 작업할 정도로 회사가 발칵 뒤집힌 사고였다. 사실 결과물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진행 과정 중 영업자가 저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문제가 있었고, 영업자는 편집자인 내게도 저자의 말을 종종 전하지 않았다. 책이 나왔는데 저자는 본인이 말한 내용이 반영되지 않아 무시당했다고 사장님에게 크게 화를 냈다. 분명 저자의 최종 확인 후 OK 진행을 한다. 이때 수정사항을 반영할 수 없으면 일정 문제로 불가능하다고 양해를 구해야 하는데 영업자는 말없이 진행한 것 같았다.
600페이지가 넘는 2단 교과서를 3개월 만에 끝내야 한다며 말도 안 되는 일정으로 들이민 책이었다. 신학기에 출간해야 판매량이 많으니 한 달 동안 야근하며 힘들게 작업했기에 신경을 많이 쓴 책이다. 하지만, 사장님은 내게 '지금까지 잘했으면서 이 책은 왜 그렇게 했냐고, 같이하는 직원이 부족하면 더 챙겨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이번 디자인은 왜 또 이렇고!' 등 모든 것에 불만을 표시했다. 책을 만들면서 처음으로 혼이 났고, 회사에서는 대박 사고의 편집자가 되었다. 수치스럽고 억울했다. 지금까지 쌓은 신뢰와 인정이 한방에 무너지는 느낌에 자존심이 상해서 담당 영업자가 무척이나 미웠다. 결국 그는 퇴사했고 내가 그 책을 짊어졌다.
『수치심 권하는 사회』(브레네 브라운 지음·서현정 옮김, 가나출판사)를 읽고 떠오른 일화이다. 이 책은 수치심을 정의하고 우리가 수치심을 느끼는 환경과 이유 그리고 수치심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이야기한다. 앞서 본 사례에서 나도 극한 수치심을 느꼈다. 그런데 내가 느낀 감정은 수치심이 맞을까?
우리가 수치심과 자주 혼동하는 비슷한 감정이 있다. 바로 당혹감, 죄책감, 굴욕감이다.
당혹감: 창피하고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드는 감정, 순간적이고 정상적인 경우가 많음
죄책감: 수치심과 가장 자주 혼동됨. 죄책감과 수치심 둘 다 자기평가에 대한 감정인데 수치심은 존재의 문제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중심이고(나는 나쁘다), 죄책감은 행동의 문제로 내 믿음에 반하는 행동을 취할 때 드는 감정(나는 나쁜 짓을 했다)
굴욕감: 어떤 행동에 부당함을 느끼면 굴욕감을, 당연하게 여기면 수치심을 느낌
그렇다면 수치심은 어떤 감정일까?
수치심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거부당하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몹시 고통스러운 경험 또는 그 느낌이다. 여성들은 모순되고 경쟁적인 사회 공동체의 기대 속에서 수치심을 느낄 때가 많다. 수치심은 두려움, 비난 그리고 단절감을 유발한다.
p.57
나는 왜 수치심을 느꼈을까? 가장 큰 이유는 같이 일하는 직원도 챙기지 않았다는 비난이었다. 나머지는 사장님이 내게 한 말에서 답이 보인다. 지금까지 나는 잘하는 사람이었다. '이번에는 왜 그랬냐'는 말에서 내게 기대하는 바가 있음을 알 수 있고,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것도 보인다. 지금까지의 존재감이 싹 사라진 채 굉장히 무능한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과정보다 100점이라는 결과를 요구받고, 특정 시기에 취직과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어야 하며, 여자라면 40kg 대의 체중을 유지하고 자연분만과 모유 수유를 해야 한다는 등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수많은 기대를 받고 그에 부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들의 기대를 모아 보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사람의 모습이다. 이렇게 완벽한 사람이 될 수 없을 때 우리는 수치심을 느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매우 싫었다. 이를 완벽주의의 역설이라고 한다.
누구나 수치심 회복탄력성을 기를 수 있다. 수치심 회복탄력성이란 우리가 수치심을 느낄 때 그 감정을 인식하고, 수치심을 일으킨 경험을 통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수치심 회복탄력성의 요소이자 방법으로 공감, 용기, 연민이 있다.
공감은 상대의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자신의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나 능력을 의미한다. 수치심의 가장 강력한 치유 방법이며, 수치심 회복탄력성의 중요한 요소이다. 꼭 수치심이 아니더라도 일상 대화에서 공감하는 태도와 그렇지 않은 태도를 보일 때 다음 대화로 진행되느냐 진행되지 못하느냐의 차이도 느껴 봤을 것이다. 공감을 잘하려면 다음을 고려해야 한다.
타인의 관점으로 세상을 본다.
비판하지 않는 태도를 갖는다.
타인의 감정을 이해한다.
타인의 감정을 이해한다는 사실을 표현한다.
모든 사람이 모든 일을 경험하지 못한다. 그래서 공감이 어렵다. 하지만, 공감이 상대방의 모든 감정을 수용하고 그에 동의하는 것만은 아니다. '너는 지금 이러해서 저런 기분이 드는 거구나.'라는 식으로 상대가 현재 느끼고 있는 감정을 살펴서 다시 이야기만 해주어도 공감이다. 그 말 한마디가 상대방에게 내 기분을 알아준다는 따뜻함으로 다가갈 것이다.
용기와 연민은 공감을 가능하게 한다. 용기는 진심을 꺼내어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말하며, 연민은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거나, 아직 이야기를 나눌 준비가 되지 않아 두려움에 빠진 상대 옆에 함께 있어 주는 것을 의미한다.
내 수치심을 타인에게 말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좋지 않은 감정을 불러내는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기도 쉽지 않다. 용기 내 이야기할 때 곁에서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위로가 되고 힘이 날 것이다. 용기와 연민이 있을 때 진심 어린 공감을 할 수 있다.
1. 수치심 촉발제 파악하기
2. 비판적 인식 실천하기
3. 손 내밀기
4. 수치심 말하기
이 책은 뭔가 읽은 듯하면서도 기억에 남는 게 별로 없어 이상했다. 이럴 때는 보통 책의 내용을 탓하게 된다. 그것도 일리 있지만 책에 나온 사례가 너무 흔해서 그럴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즉 우리에게 수많은 기대를 하는데 미디어에서조차 그걸 당연한 듯 공표하니 우리도 이미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당연하지 않아도 말이다. 그럼 틀린 감정을 만들어 자신을 스스로 괴롭힐 수도 있다. 그래서 먼저 인식의 개선부터 해야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길로 접어들 수 있을 것이다.
사고가 났던 책은 당장 교재로 사용할 책이고, 내용에는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일단 판매했다. 대신 양질의 개정판으로 최대한 빨리 출간하기로 해서 각 팀의 최고들이 모여 어벤저스 팀이 꾸려졌다. 본문 시안은 보통 2~3개를 만드는데 이때는 몇 개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고, 색상 조합, 서체 하나 신경이 안 쓰이는 게 없었다. 일러스트 담당자가 바뀌니 담당자의 그림이 돋보이는 잔잔하면서도 묵직한 디자인도 필요했으며 종이도 평소에 사용하던 걸 사용할지 그림을 더 빛내주는 종이를 사용할지 책을 처음 만드는 자세로 임했다. 다시 작업하는 게 짜증이 날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 재미있었다. 그리고 매출을 깎아 먹고 역대급 사건을 만든 내게 사람들이 손가락질할 것 같고 일을 그르친 내 자신이 부끄러웠지만, 직원들은 이미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영업자가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가 안 좋았는지 오히려 내게 괜히 함께 고생한다며 위로해주었다. 실수 한 번 했다고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릇된 경험에서 옳음을 배우는 것도 사실이다. 인생의 고비를 넘긴 사람들을 만나면 어딘가 더 성숙하고 잔잔한 파동에는 동요하지 않는 모습을 많이 봤다. 그 시간을 잘 견디지 못한다면 실수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에서는 단숨에 패배자가 된다. 수치심을 넘어 우울해지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도 볼 수 있다. 실수와 실패 없는 성장은 없다. 초조하고 힘든 게 당연하지만 내가 어렵게 낸 용기를 연민으로 함께하며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극복할 수 있다. 덧붙여, 저자는 이룰 수 없는 목표를 버리는 것만으로도 수치심에 대한 민감성이 줄어들 거라고 조언한다.
우리 모두가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고 수치심을 이겨내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유대감을 나눌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p.19
덧, 브런치에 수치심이라는 태그가 잡히지 않는다.
사진_ unsplas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