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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썬 Feb 05. 2021

일단 저지르기로 했다

[오늘도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_어쩌다 덕업일치]  프롤로그

“원래 안 그랬는데 올해 유독 그러네요~”
"그 말을 믿으라고요?"


왜 항상 올해부터냐고! 가는 회사마다 그랬다.
"여기는 늘 이렇게 바빠요?”
라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다.
"바빠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바쁜 시즌이라 그렇다고 여겼다. 조금만 지나면 한가해진다고 하니 그때가 오기만 기다렸다. 칼퇴 후 무엇을 할지 계획까지 세우고 말이다. 그런데 돌아오는 건 다시 바쁜 시즌이 아닌가!! 

터덜ㅡ 터덜ㅡ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현관문을 열고 인사도 거른 채 쏟아낸다.
“엄마! 나는 왜 이렇게 일복이 많은 거야?!”
“그러게, 너는 뭐 그렇게 다니는 회사마다 일이 많냐?"
"그렇지? 엄마가 봐도 나는 늘 일이 많지?"
"너 퇴근하고 집에 와서도 일하잖아~~ 그거 회사도 알아?”
“알겠지~~ 이게 다 소띠라서 그래!”
“얘는? 소띠라고 다 일 많이 하니?”
그러게요. 소띠라고 일을 많이 하는 건 아니겠지만, 내가 일을 많이 해온 건 엄마도 인정하는 것 같은데?

2020년, 코로나 19가 유행하면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었다. 그 덕에 책 판매량이 증가했다고 한다. 전자책 제작 의뢰도 예전보다 많아진 게 사실이다.
"하루아침에 직업을 잃는 사람도 많은 시국에 바쁘다는 게 감사한 일이지!! 정말 복 받았다!! 감사하게 생각하자!"
사람은 참 간사하다고, 이 마음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체력이 달리니 철야는 못 하겠고, 칼퇴하기는 찝찝하고.... 자연스레 집에 가는 시간이 늦어졌다. 출퇴근 왕복 4시간에 야근까지 하면 녹초가 되지 않을 수 없는 현실.
“하아-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따지고 보면 부귀영화도 아니다. 부자가 되고 싶었으면 출판계에는 발도 들이지 말았어야 했다.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면 광화문 대형서점을 찾았다. 진열된 책을 구경하기만 해도 설렜다. 관심 있는 책을 읽거나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사서 모았다. 책이 그저 좋았을 뿐, 직접 만들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도 없었다. 퇴근 후 쓰러지듯 눕는다. ‘왜 이 길로 빠져서 고생이냐….’는 생각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어쩌다 발을 들인 길에서는 날마다 불평만 쏟아냈다.

재택근무 중 들을 거리를 찾다가 <덕업일치>라는 오디오 클립을 발견했다. 덕질하던 대상을 직업으로 연결한 사람들이 출현해 자신의 덕후력을 인증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들을수록 그들이 부러웠다. '아, 나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한두 달쯤 지났을까?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어 다시 재택근무를 하던 어느 날이었다. 어김없이 이 클립을 듣는데 문득 집에서 전자책을 만들고 있는 그 순간이 행복했다. 찌릿찌릿! 소름이 돋았다. 유레카 유레카!!!

"이 일 말고 A를 하고 싶어. B도 하고 싶고!"
처음 책을 만들었을 때 이상과 다른 현실에 숨이 막혔다. 그때부터는 하고 싶은 일을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다. 놀라운 건 그렇게 꿈으로만 상상했던 장면이 지금 이 순간, 현실의 모습과 같았다. 하나씩 모은 진주알로 목걸이를 만든 내가 이제야 보였다. 싫증이 나서 쉽게 포기하는데 지금까지 놓지 않은 건 즐겼던 거다. 이룬 게 하나도 없다고 자책만 했던 나를 보듬고 싶었다. 꿈을 이룬 줄도 모르고 다른 사람만 부러워 하던 나.


최선을 다했던 순간을 남기고 싶어서 최선을 다해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매일 밤 11시부터 꾸벅꾸벅 졸면서 글을 저장했다. 해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 일단 저지르기로 했다. 이렇게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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