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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썬 Jan 11. 2020

그라운드 좀 누벼본 여자

3회 초 진행 중

체육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과목일 정도로 나는 운동과 거리가 멀다. 학창 시절 가장 잘한 운동은 체력장 때 종종 하던 오래달리기! 다른 운동은 다 못해도 오래달리기는 늘 상위권을 유지해서 그나마 즐거웠다. 그래도 대학생 때는 검도를, 사회 초년생 때는 요가를, 30대가 되어 근력운동과 수영을 배우긴 했지만 몇 개월의 반짝 운동이었다. 


운동에 소질이 없다 보니 내 이상형은 언제나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고등학생 때 알라딘 OST를 알려주었다는 좋아했던 친구도 사실 축구를 잘해 쉬는 시간마다 운동장에서 뛰는 모습에 관심이 갔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나는 이상형을 찾으러 밖으로 나갔다.






1회


우리 아빠는 지금도 축구 경기는 꼭 챙겨 보신다. 내가 어릴 때 국가대표팀이 월드컵에서 5:0으로 대패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장면도 스치듯 기억에 남는다. 또래 여자 친구들보다 축구선수를 많이 알았던 나는 운이 좋게도 고등학교 2학년 때 2002년 월드컵을 경험했다. 고3이 아닌 게 어디냐며 즐길 수는 있었지만 거리 응원을 나가보지 못한 게 지금까지 후회되는 일 중 하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일산에 고양 종합운동장이 생기면서 우리 동네에도 이제 축구팀이 생기냐며 기뻐했다. 오픈 기념으로 홍명보 자선경기를 일산에서 한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일??!! 홍명보 선수가 온다면 월드컵 영웅들이 대거 참가한다는 이야기라 추운 겨울날 친구들과 덜덜 떨며 축구장에 앉아 있었다. 겨울 축구장이 얼마나 추운지 가본 사람은 알 것이다. 더욱이 자선 경기라 골에 큰 의미가 없어서 지루했지만, 어린 마음에 경기를 마친 선수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처음 간 축구장, 김남일/고종수 선수 외에도 2002년 월드컵 멤버 총출동!


이후에 좋아하는 축구선수가 생겨서 K리그도 관람하러 갔는데 확실히 프로팀은 응원이 거대했다! 문득 나도 저 무리에 속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으나 K리그 경기는 A매치만큼 재미있지는 않아서 관심으로 그쳤다.


울산 현대 오장은 선수를 좋아했던 때, FC 서울과의 경기. @상암




2회


축구장에 함께 다녔던 친구가 농구장에 가보자고 제안했다. 친오빠의 영향으로 농구 경기를 봤는데 재미있다면서 진짜 잘하는 선수가 있다고 알려줬다. 텔레비전으로 경기를 보니 축구보다 훨씬 움직임도 많고 점수도 많아 관람하는 재미가 있었다. 투덜거리면서 멀고 먼 잠실 학생체육관으로 향했다. 


처음 간 농구장


우리가 반했던 선수는 대구 오리온스(동양)의 포인트가드 김승현이었다. 키도 작은데 어쩜 저렇게 잘하냐며 그를 따라다니다 보니 대구 오리온스라는 팀이 좋아졌다. 그때부터 오리온스 앓이를 시작하며 줄곧 농구장을 다녔다. 당시에는 얄미워서 싫어했던 서장훈, 이상민, 문경은, 김병철 등 농구대잔치 시절의 스타를 볼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더욱이 축구장보다 거리가 훨씬 가까워 코앞에서 역동감 넘치는 경기를 지켜보니 신이 났고 우리 팀 이기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 스트레스가 싹 풀리는 느낌이 얼마나 좋은지 끊을 수 없었다. 


몇 시즌이 지나니 막냇동생도 많이 커서 동생들을 데려갔다. 첫째인 나는 부모님께서 많이 데리고 다니셨지만, 동생들은 나보다 누리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 재미있는 곳은 최대한 많이 데리고 다녔다. 동생들과는 저녁마다 텔레비전으로 경기를 보면서 응원하는 재미가 컸다. 조성모에 이어 오리온스에 매달리는 우리와 채널을 변경하려는 엄마는 늘 전쟁을 해야 했다. 여동생은 플래카드를 만들었고, 남동생은 외국인 선수를 스케치북에 그려 흔들었는데 그걸 본 선수가 꼬맹이의 모습이 귀여웠는지 불러서 사인도 해줬다.


일산에서 잠실까지 혼자 가도 멀다고 느끼는데 초등학생 어린이를 데려가니 졸려할까 봐 많이 걱정했던 게 기억난다. 그래서 삼 남매가 다 같이 경기장을 찾을 때는 밤에 경기가 끝나니까 아빠가 종종 데리러 오셨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빠!!! 오늘 누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했는데 결국 이겼다?!!!" 라고 이야기하며 삼 남매가 시끌벅적했던 장면이 떠오른다. 손에는 빨간 풍선을 쥐고 말이다.

 


일산에 고양체육관이 생기면서 대구 오리온스는 고양 오리온스가 되었다. 거리가 가까워지니 농구장을 더 자주 찾을 것 같았지만 본격적인 직장생활을 하고 나도 이사하면서 농구장과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더욱이 좋아했던 선수들은 은퇴하거나 팀의 코치가 되어 세대 변화를 이룬 농구계에 흥미가 떨어지기도 했다. 스트레스 해소 방법을 하나 잃었다.




3회


끝날 줄 알았던 내 그라운드 점령기는 직장 동료 언니들 덕에 새 출발을 한다. 야구장으로!!!! 두산베어스 팬이었던 언니가 친한 동료 여럿을 이끌고 야구장에 입문시켰다. 고등학생 때, 축구장을 가는 우리에게 야구의 재미를 알려준 친구가 홍성흔 선수를 좋아했는데 그가 두산베어스에 있으니 정말 반가웠다. 


야구장은 내게 신세계였다. 일단 치맥이나 치콜과 경기의 조화가 상당히 좋았다. 주로 선선하고 더울 때 찾는 야구장이니 관람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두 번째는 응원이 가능했다. 신나게 응원하면 마음에 있던 온갖 짐을 다 내려놓고 오는 기분이었다. 다음날 목은 아팠지만 마음은 정말 행복 그 자체! 경기는 지더라도 내가 열심히 응원하면 아쉬울 게 없었다. 전광판에 나오는 티켓 번호로 이벤트에 당첨이라도 되면 야구장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또 늘었다. 야근과 철야로 지친 내가 유일하게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었다.


처음간 야구장 시작은 외야석 / 처음으로 유니폼을 사게 한 이종욱 선수


이번에도 동생들을 데려가 야구장의 맛을 보여줬다. 역시 나보다 흥이 더 오른 동생들. 특히 여동생은 시즌권까지 끊어 야구장에 바친다. 나는 또 엄마께 내 잘못이라며 사과했다. 하핫. 하지만, 매일 새벽 한 시가 되어서야 겨우 퇴근하는 힘든 환경이었으니 야구장에서 힐링한다는 것을 잘 아니까 나는 말리지 않았다. 


처음 입문했을 땐 자주 갔는데 너무 멀어서 주로 텔레비전으로 보다가 이제는 시즌 처음에 한 번, 마지막에 플레이오프나 한국시리즈에 한 번 가는 편이다. 특히 예매의 신을 만나야 하는 플레이오프나 한국시리즈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으니 격년으로 직관하면서 그해의 안 좋았던 기운을 싹 날리고 왔다. 좋아하는 팀을 응원해봤다면 충분히 공감할 만한 희열을 느낀다. 올해도 우승했으니 내년에도 가즈아~!







글을 쓰는데, 기분이 좋았다. 오랜만에 스무살 때 모아둔 티켓북에서 추억을 꺼내기도 했고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찾아다녔는지 놀라고 감탄했다. 내가 스포츠 경기를 봐오면서 놀란 나보다 스포츠에 관심 없고, 경기의 룰을 모르는 남자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아빠의 영향으로 남자들은 아는 알았던 고정관념이 깨지면서 하나 바람이 생긴 것이 있다면, 미래의 내 남편은 야구장 가는 것을 꺼리지 않았으면 한다. 아빠랑 엄마랑 아기랑 유니폼 맞춰 입고 와서 응원하는 모습이 어찌나 예쁘던지! 1년에 번은 부담 없잖아유?! 같이 갑시다!!!!!



*소제목을 축구 경기의 전/후반과 농구 경기의 4쿼터로 정하니 너무 짧아서 야구 경기의 회로 선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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