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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썬 Jan 05. 2020

세상 하나뿐인 매실의 효능

태어나서 처음으로 교회에 갔다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아침저녁으로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려주셨다. CD 케이스를 살펴보다가 아침, 점심, 저녁, 자기 전으로 분류되어 있는 걸 보고 시간에 맞춰 혼자 CD를 듣곤 했다. 음악은 익숙한데 1번 CD, 9번 CD로 외워서 곡명은 모른 채로 늘 틀어두었다.


고등학생 때는 뉴에이지가 유행했다. 피아노를 잘 치는 친구가 있어서 유키구라모토를 시작으로 이루마, 양방언, 김광민 등으로 이어져 대학생 때까지 즐겨 들었다. 그중 이루마 1집은 귀가 닳도록 들으며 사랑에 빠졌다. 또 좋아하는 친구가 알려준 알라딘 OST 'A Whole New World'도 그 친구가 좋아하니 나도 들어야 한다는 마음이 담긴 곡이라 2019년에 영화 알라딘을 보며 고등학생 때 추억이 많이 떠올랐다.


스물여섯 눈이 내리던 겨울날 대화역에서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케이윌의 '그립고 그립고 그립다'가 흘러나왔는데, 당시 2년 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어린 사촌동생이 생각나 길거리에서 하염없이 울었더랬다. 그 후 케이윌이라는 가수의 매력에 빠져 늦바람 난 언니 포스로 그가 노래하는 곳으로 따라다녔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지만, 음악으로 감정을 치유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는 그 사건 이후 케이윌과 그의 노래를 통해 경험했다.


이렇게 내게 영향을 준 음악과 음악가가 몇 명 있긴 하지만, 이 사람만큼 내 자아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칠 사람이 또 나올까 싶다.  





초등학교 때 HOT와 젝스키스가 등장했다. 잼잼이 아빠 문희준의 책받침을 들고 다니며 HOT 팬임을 알렸다. 중학생 때는 신화와 GOD가 등장하면서 우리 반에는 서로 자기 오빠가 최고라며 아이돌 그룹 팬의 대결 구도가 형성되었다. 나도 어딘가에 소속되어야 할 것만 같은 그때, 친구들에게 폭탄선언을 했다.


나 사실 조성모 팬이야!

친구들은 칼군무를 뽐내는 아이돌을 좋아하는데 나 혼자 늘어지는 발라드가 좋다고 말하면 소외될 것 같았다. 더욱이 발라드 황태자로 불리는 조성모였지만 본명보다 조매실로 유명했기에 "야! 너 조매실 좋아한다며?!"라고 남자애들이 놀릴 게 뻔했다. 하지만, 용기를 낸 결과는 생각보다 좋았다. 조성모 팬은 나뿐이라 친구들은 내게 조성모가 나온 잡지나 스티커 등을 가져다주었다. 노래방에 가서도 신나는 댄스곡이 아닌 슬픈 발라드를 당당하게 부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조성모 팬이라고 소문이 났는지 친구를 통해 다른 반 조성모 팬을 소개받았다. 그 친구는 나를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다음 주에 일산에 조성모 온다는데 같이 갈래?"


맙소사, 조성모가 일산에 온다니... 일산에 백화점이 처음 생겼는데(1999, 롯데) 오픈 행사의 초대가수라는 것이다. 콘서트도 아닌데.... 음반 판매량 1위를 기록하는 연예인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친구 덕에 생전 처음으로 종례를 빼먹고 택시까지 이용해 정발산역으로 향했다.


꺅!!!!!!!!!!!!!!!!!!! 내 눈앞에 순박한 듯 조각 같은 비주얼로 영롱한 미성을 뽐내며 그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시간은 또 왜 이리 빨리 가는지 공연이 끝나자마자 그가 나가는 길목으로 달려가 카메라를 들고 '성모 오빠!!!'를 외쳤다. 그때 내 옆에 있던 경호원이 키가 큰 본인이 조성모를 찍어주겠다고 카메라를 가져갔다. 보통 경호원은 오지 말라고 험한 말을 뱉는 경우도 많은데 먼저 베풀어주니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비록 인화한 사진에는 그의 소맷귀만 잔뜩 찍혀 있었지만 말이다.






우연히 'For your soul(슬픈 영혼식)'이라는 노래를 듣고 무언가에 홀린 듯 그에게 빠져들었다. 그도 그의 노래도 그냥 좋았다. 다음날 하굣길 동네 음반 매장에 들러 조성모 2집 테이프를 사고 브로마이드를 받아 벽에 붙였다. 나보다 여덟 살 어린 동생을 옆에 앉혀 놓고 매일 저녁 따라 불렀다. 일곱 살짜리가 슬픈 노래를 부르며 조성모를 외치니 엄마가 인제 그만 들으라고 할 정도였다.


조성모 없이 못 살던 때의 내 모습을 잘 아는 친구에게 메시지가 왔다.

"선미야! 우리 교회 행사에 올해는 조성모가 온대!!!!!!! 같이 갈래?"


팬은 나인데 친구가 더 설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예전만큼 연예인에 대한 열정도 없고 교회까지 가는 게 귀찮았다. 무엇보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불교 신자인 나는 교회에 가서 기도하는 게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성당은 몇 번 가봤는데 이상하게 교회는 가기 싫어 여태까지 안 가본 것이다. 하지만, 만삭인 친구까지 합류해 1시간 전에 도착해서 기다렸다는 사실. 조성모를 보기 위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교회에 갔다.


고등학교 친구 셋이 학창 시절에 좋아하던 연예인을 본다고 뱃속의 2세까지 함께 하니 기분이 묘했다. 더욱이 그가 부른 가시나무의 가사를 음미하니 그동안 힘들었던 시간이 스쳤고 그의 감정까지 오롯이 전해져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마치 학교 다닐 때 짝사랑했던 교회 오빠가 너희 잘 컸다고 하면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노래해주는 것 같았다.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기쁨도 슬픔도 아닌 치유의 눈물이.




사실 대학생이 되면 조성모 콘서트부터 갈 거라고 다짐했지만, 내가 처음 간 콘서트는 케이윌이었다. 인디밴드부터 이승환, 싸이까지 다 갔으면서 그렇게 좋아했던 가수의 콘서트에 가보지 못한 아쉬움을 친구가 이렇게라도 풀어준 셈이다. 조성모를 통해 노래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는 것, 음악은 들리는 것이 아닌 듣는다는 것을 배웠다. 리메이크 앨범을 듣고 옛날 노래의 감성이 좋아 원곡을 찾아 들으며 비교하는 법도 알았다. 그리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는 가장 큰 사실을 경험했다.


어릴 때는 가수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노래를 들었다면 지금은 인생을 돌아보며 노랫말에 공감하는 일이 많아졌다. 부모님이 생각나 울컥하는 노래, 이별의 그리움이 남는 노래, 사랑하는 사람과 듣고 싶은 노래 등 애정하는 몇 곡이 있다. 그래도 내가 지금까지 가장 많이 듣고 부른 'To Heaven'과 조성모 리메이크 버전 '세월이 가면' 그리고 대한민국의 마지막 밀리언 셀러라는 가수 조성모는 내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아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어릴 때는 듣기 싫었던 '매실'이 이젠 귀여워 제목으로 정했는데 가수분도 이제는 추억으로 생각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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