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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썬 Nov 29. 2019

한글 가온길을 아시나요

아름다운 광화문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 어디냐 물으면 경복궁에서 광화문까지를 말한다. 왜 서울의 중심이었는지 느낄 수 있는 탁 트인 풍경이 좋아 20대 때는 속상한 일이 있으면 광화문 사거리나 청계천에 가서 넋 놓고 있기도 했다. 그 후 교보문고를 한 바퀴 돌면 마음이 맑아지는 그 기분이 좋았던 거지. 서촌과 북촌 그리고 한적한 궁궐의 정취를 즐기는 것도 한몫했고 말이다. 요즘엔 꽉 막힌 인위적인 소음과 사람들 때문에 지나다니기도 힘들어 피해 다니지만.



며칠 전, 친근하게 자주 오가던 이곳에 의미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세종국어문화원에서 하는 글쓰기 강좌인 ‘틔움’의 마지막 수업 시간에 ‘한글 가온길 탐방했다. 흔히 알고 있는 서촌의 통인시장 가는 길에 세종대왕의 생가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동안 왜 몰랐는지 안타까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한낮에도 너무 추운 날씨였기에 방문하지 못하고 가온길의 절반만 돌아보았다.





경복궁역 7번 출구에서 유명 브랜드 오피스텔 방향으로 들어가는 코스이다. 일명 '한글 숨바꼭질 18' 코스인데 한글로 여기저기 조형물 또는 장식물이 배치되어 있다. 하나둘 발견할 때마다 얼마나 재미있던지 의미 있는 길답게 창의적인 요소를 곳곳에 숨겨두어 새로웠다. 예를 들면, 단 하나의 가로등과 가로수에 한글 디자인이, 건물에 윤동주 님의 시가 적힌 현판이, 군데군데 한글로 디자인한 조형 요소들이다.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아야 보인다. 그래서 '숨바꼭질'인 듯!



'주시경 마당'의 단어 숨바꼭질



그 길목에는 '용비어천가'라는 오피스텔도 있는데 평소 이름이 독특해서 기억하고 있었다. 그 배경을 알고 보니 가난했던 주시경 선생이 기증받아 살던 집이 그곳이었단다. 그래서 의미 있는 이름으로 변경하게 된 것! 이 건물 앞에는 주시경 가로등과 주시경 마당이라는 공원이 있다.



주시경과 호머헐버트



원래 항해사가 꿈인 주시경 선생이 꿈을 내려놓고 독립신문과 한국어 문법을 만드는 데 공헌한 내용을 알 수 있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또한, 조선이라는 작은 나라에 위대한 글자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 3년간 한국어를 공부해서 최초의 한글 교과서인 '사민필지' 만든 호머 헐버트 선생의 이야기도 알 수 있었다. 미국으로 돌아가서까지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린 고마운 분이었다. 합정에서 늘 지나는 양화진에 모셔져있다고 한다.





그렇게 걷다 보면 '한글 학회' 건물이 나온다. 사실 조금 놀랐다. 역사책에서 많이 들은 이름인데 그 건물을 눈앞에서 보니 너무 무관심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역사의 산물을 보고 있다는 경건함까지 느낄 정도였다. 소식지까지 발간하는데 부끄러운 마음뿐이었다.





한글 숨바꼭질 중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은 한글 학회 건물에 있는 '나는 한글이다'이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모습인데 단면의 모습과 똑같이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조형한 것이라고 한다. 한글이 1차원적인 글자가 아니라는 성질을 반영한 것이라고 했는데 어려운 내용이라 온전히 담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건물 꼭대기에 있어서 잘 찾지 못하는 숨은 요소라고! 이 글자를 올려다보면서 몸에 전율이 흘렀지 뭐람.





단축 코스였지만 탐방을 통해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한글' 생각은 얼마나 해왔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사실 국문학을 공부하면서도 문법 과목이 가장 싫었고, 책 만드는 일을 하면서도 틀린 걸 바로잡는 쾌감은 있지만 맞춤법을 익히고 논하는 게 잘 맞지 않아 싫기만 했다. 그래서 '한글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글쓰기'라는 작은 목표를 세웠다. 조금이라도 바른말, 순화한 말을 사용하기 위해 노력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강사님께서는 일제 강점기에는 한국어 말살 정책으로 아팠던 우리말이 지금은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에 밀려 고통받고 있다고 우리말을 소중히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아가 개인은 역사의 산증인이니 지금 살아가는 모습을 글로 남겨 훗날의 역사로 빛내 달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단순히 내가 좋아서 쓰는 건데 결국은 나만 즐기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발전에도 이바지할 수 있는 굉장한 일이다.



글쓰기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다고, 해야 한다고 말해도 느끼지 못한다. 혹시나 글 쓰는 게 어렵고 왜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면 나의 역사라는 마음으로 가볍게 오늘을 기록해보는 건 어떨까? 그렇게 쓰다 보면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나아가 한글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자부심도 피어오른다.


세종대왕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광화문에서 기다릴게요!”


따뜻한 봄날, 다 돌아보지 못한 코스를 탐방하러 가야겠다!



http://barunmal.org/?page_id=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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