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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썬 Feb 06. 2021

꿈을 포기했다

[오늘도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_어쩌다 덕업일치] 01

[오늘도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_어쩌다 덕업일치] 

"그때 너를 그냥 두는 게 아니었어. 노량진으로 몇 달 보내야 했는데... 관운도 있다고 했고."

"엄마!! 내가 지금 몇 살인데 아직도 그 이야기야! 나 노량진 보내도 안 했다고! 아쉬워하지 마!! 그만해!"


10년도 더 지난 이야기를 아직도 꺼내는 엄마. 그 말에 부아가 치미는 나. 엄마도 얼마나 한이 됐으면 아직까지 담아둔 걸까. 아니면 대리만족을 원하신 걸까?



초등학생 때부터 한 번도 바뀌지 않은 꿈, 교사. 매년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면서 ‘저런 선생님은 되지 말아야지. 이런 선생님이 되고 싶다.’ 생각하며 꿈을 키웠다. 싫어하던 과목을 좋아하게 만든 윤리 선생님에게 빠져 고민 없이 교육학과에 입학했다. 사범대 커트라인에 못 미쳐 지방으로 간 것만 빼면 무난하게 치른 입시였다.


중고등학교 때는 공부 하는 게 너무 싫었는데 대학에서는 달랐다. 전공과목인 교육학은 매력이 넘쳤다. 그리스 신화를 배우고 오페라를 감상하는 교양 수업은 신세계였다. 공부가 즐거워 장학금을 노렸다. 졸업과 동시에 임용고시에 합격하겠다고 휴학도 하지 않았다. 방학에는 도서관에 가거나 친구들과 노량진에서 특강을 듣기도 했다. 우리 과 교수님들은 우리가 임용고시 합격 유망주라며 큰 기대를 걸었다. 학교에서도 이러는데 부모님은 오죽했을까. 우리 딸 선생님이라고 말할 날만 기다리셨겠지. 하지만, 4학년 겨울 방학에 치른 첫 시험에서 떨어졌고 재수를 선택했다. 인생에서 마지막 시험이라 여기고 공부에만 매진했다.





시험을 며칠 앞둔 어느 , 집에서 혼자 공부를 하던 중이었다. 전화가 왔다.   울린 벨소리가 괜히 기분 나빴다. 드라마에서 복선을 암시할 때 클로즈업되는 전화벨처럼 찝찝한 기분.

"여보세요?"

전화기 너머로 엄마가 울고 있었다. 아끼던 사촌 동생의 부고였다. 믿을  없어 사촌 동생 이름을  번이나 되물었다. '대체 ?!!' 너무 기가 막혀 한동안 움직이지못했다. 이제 중학생이 되었는데 체육시간에 운동장을 돌다 갑자기 쓰러졌단다. 사인은 원인 미상. 슬픔을 감당하기만도 벅찼던  사건이  인생을 바꾸었다.


장례식장에 찾아온 교사들의 태도에 분노가 치밀었다. 소리를 지르고 책임소재와 보상금만 운운하는  인간들이 교사라는  믿기지 않았다. 그동안 꿈꿔온 교사는 없었다. 발인할  학교도 들르지 말라던 말은 두고두고 괘씸했다. 오랜만에 모인 친척들은  근황을 물었다. 교사가 꿈이라고, 임용고시 공부 중이라고 말하는  수치스러워 자리를 피했다.



애석하게도 장례를 치른 다음 날이 시험이었다. 1년을 기다린 그날, 부모님은 새벽같이 일어나 시험장에 데려다주셨다. 이미 시험을 포기했지만 선생님  거라는 딸만 바라본 부모님께는 차마 말할  없었다. 최선을 다해 문제를 풀었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올리 없었다. 불합격 소식을 전했다. 임용고시를 포기하겠다는 폭탄선언과 함께.


“하아-"

“허허- 참..."

땅이 꺼져라 나오는 한숨. 세상을  잃은  같은 표정. 부모님 얼굴을  낯이 없었다. 하지만,  마음까지 헤아릴 여유는 없었다. 아니, 그것밖에  되는 그릇이었을지도. 하나밖에 없던  꿈이 사라졌는데, 직진만 하던 길이 갑자기 없어졌는데 무엇이 보였을까? 이제 엇을 해야 할까? 상실감이 너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워킹맘인 엄마를 대신해 나를 돌봐주시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이런 마음이었다. 의지하던 무언가가 사라진 느낌. 스물넷에 당연히 교사가   알았는데...



그렇게 6개월이 흘렀다.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방황했다는 것밖에는. 부모님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묵묵히 지켜봐 주셨다. 빨리 뭐라도 하라는 재촉   없이 기다셨다. 그때 부모님 마음만 강요했다면 나는 엇나갔을  뻔하다. 미성숙한 멘탈로 깨달을 시간도 성장할 기회도 놓쳤을 테다. 다행인   존재가 사라지는  같은 절망 뒤에 꿈을 가지고 나아가면 행복하다는 확신이 생겼다. 소중한 발견이었다.



렇게 지내던 어느 , 내게도 귀인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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