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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썬 Feb 21. 2021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데요?

[오늘도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_어쩌다 덕업일치]  03 꿈을 이루었다

“쌤!!! 수업 가야죠~~ 지금 뭐 하세요~~!!”
“아~~ 뭐야!! 쉬는 시간이잖아~ 너희 교무실에 왜 이렇게 자주 와!!!
교실 가서 기다려~! ...
잠깐, 지금 수업 아닌데?! 또 속을 뻔했어!”




‘심장아 나대지 마!!’

이렇게 떨리는 게 대체 얼마 만이냐!! 새 학년이 시작되는 3월 2일, 고등학교 인턴 교사로 출근했다. 드라마에서나 본 교사의 출근 장면 - 이를테면 학생들과 학교 앞을 걸으며 서로 ‘안녕하세요’ 인사 나누는 장면 - 이 펼쳐졌다. 정장을 입고 교문을 향하니 당연히 선생님이라고 생각했는지 여기저기서 인사한다. 오묘한 기분!



드디어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난다! 인턴 교사로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고 믿을 수 없었다. 오랫동안 꿈꿔온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니 진짜 꿈인가 싶었다.

“상상만 하던 일이 이루어졌다고!!!”

얼마나 말하고 다녔는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임용고시에 합격한 줄 알았을 거다. 이렇게 좋은데 한편으로는 걱정이었다.

“나... 근데 조금 무서워..."

"뭐가?"

"요즘 애들 무섭잖아... 하지 말라고 말했다가 학교 끝나고 끌려가는 건 아니겠지?”

"뭐래? ㅋㅋㅋㅋㅋㅋ"

"나 진지하거든?"

출근하는 학교는 특성화 고등학교였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실업계로 불리던 학교. 중학교 때 좀 논다는 친구들이 몰려 다녀서 교복만 보고도 피하게 됐던 학교였다. 때마침 교권 붕괴 이슈도 들리니 더 걱정되었다. 학교 다닐 때 했던 교육 실습은 한 달 뿐이니 좋은 모습만 보려 애쓴다. 하지만, 이제는 수업을 전담하니 내가 감당할 수는 있을지 앞이 캄캄했다.



놀고 가는 거예요?

날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교무실로 향했다. 먼저 도착한 영어·수학 인턴 교사와 인사를 나눴다. 셋 다 동갑이라는 걸 알고 나니 친구의 친구로 연결되어 있었다. 금방 친해질 것 같은 예감에 걱정을 조금 내려놓았다. 곧이어 담당 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선생님들께서 해주실 일입니다!^^”

우리에게 건넨 문서에는 1, 2학년의 국어·영어·수학 성적이 나열되어 있었다.

“사업의 정식 명칭은 ‘학력 향상 중점학교’에요~ 선생님들은 ‘학습 지원 인턴 교사’이시고요! 학력 향상이 필요한 아이들과 함께 수업하시는 거예요! 나누어 드린 자료 보시고 직접 대상자 선정하셔서 명단부터 알려주세요^^”

맙소사. 아이들도 직접 선정한다니. 성적표 맨 뒷장을 펼쳤다. 

'허허... 100점보다 0점 받는 게 더 어려운데... 대단하네. 같이 공부하자고 하면 과연 할까?’ 

논의 끝에 선정한 대상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점수는 어떻게 나온 점수인지, 국어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지, 국어 공부할 때 무엇이 어려운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무엇인지를 물으며 참여 의사를 파악했다.

"선생님이랑 국어 공부 한번 해볼래? 일주일에 2시간씩만 하면 돼!"

"좋아요!^^"

라는 깔끔한 대답을 기대했지만 이런 일은 거의 없었다.

"공부 안 해요."

"저 그럼 전교 꼴찌예요? 쪽팔려서 어떻게 해요!! 안 해요!!"

"X 선생님 수업 시간에만 뺴주세요!!"

"이것도 시험 봐요?"

"놀다 가는 거예요?"

"저 또 상담할래요! 또 불러주세요!"

"어디에서 해요? 먹을 거 줘요? 누구랑 해요?"

"저 영어도 하고 수학도 하는데 세 과목 다 하면 뭐 줘요?"

선생님은 처음이었으니 긍정적으로만 생각했던 걸까? 내 예상은 100% 빗나갔다. 공부에 전혀 관심없는 아이들을 보니 머리가 아팠다.

"영어쌤! 수학쌤! 면담 잘 끝나셨어요?"

"국어쌤~ 면담이 쉽지 않네요ㅠㅠ 얘는 국어도 한다고 자랑하더라고요... 에휴"

"쌤들! 저랑 상담한 애들은 수업 시간에 빠진다고 엄청나게 신났던데요? 여기서도 공부할 건데 왜 신날까요?"

"ㅠㅠㅠ 우리 잘할 수 있겠죠?"



너무 순진했나요?

일주일에 2시간, 2~4명씩 한 조를 이루어 수업했다. 공부를 싫어하니 교과서와 친해지는 게 우선이었다. 이론보다는 지문을 낭독하며 줄거리를 습득하는 게 목표였다. 그런데 얘들아... 왜 읽지를 못하니? 지문을 소리 내어 읽는데 한 문장 읽는 것도 힘들었다. 한 글자씩 끊어 읽는 수준이었다. '하아...' 교과서로 진행한 수업은 보기 좋게 망했다.

"쌤들! 오늘 국어책 읽는 수업이었거든요? 근데 애들이 못 읽어요... 처음 글자 배우는 것처럼 힘들어해요.ㅠㅠ"

"어머머!! 선생님 저도 그랬어요!! 애들이 a, b, c, d 알파벳을 몰라요. ㅠㅠ"

"헉... 정말요?.ㅠㅠ"

"우리 아무래도 수업 계획을 다시 세워야겠어요!"

아이들은 기초 학력이 부족한 경우와 기초는 있으나 공부에 관심이 없는 경우로 나뉘었다. 이러나저러나 공통점은 글자와 담을 쌓았다는 것이다. 글과 친해질 수 있게 수업에 참여하도록 마음을 여는 게 우선이었다. 계획을 바꾸어 간식을 준비하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학교생활은 재미있는지, 요즘 관심사는 무엇인지, 꿈이나 목표는 있는지, 방과 후에는 무엇을 하는지 등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보니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대부분은 학교가 끝나면 아르바이트 하러 가기 바빴다. 가정환경이 어렵든, 용돈을 모으기 위해서든 일을 하고 있었다. 늦은 밤까지 일하니 늘 잠이 부족했고 그걸 수업 시간에 보충했다. 그러니 선생님들과 사이가 좋을 리 있나. 알게 모르게 골치 아픈 아이들이 정규 수업에서 빠지니 은근히 좋아하는 선생님도 있었다. 또 한 가지, 오토바이 면허증 취득을 노리는 학생이 많았다. 실제로 오토바이를 타고 등하교하는 학생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심지어 우리 자리에 놀러 와 책상 위에 놓인 미스트나 핸드크림, 가방 등을 보며 브랜드를 평가하고 추천하기도 했다. 문화충격이었다. 제대로 수업도 해보기 전에 기가 다 빨렸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선생님이 씩씩거리며 인턴 교사를 찾았다.

"선생님들! 이 녀석이 수업에 안 들어왔는데, 지난 시간에 선생님이랑 수업했는지 확인 좀 해주세요!"

"어머, 국어는 아니었어요!"

"영어도 아닌데요?"

"수학도요!"

"뭐야, 설마?!!"

수업 시간에 없는 녀석을 찾으니 다른 아이들이 '인턴 갔어요!'라고 했단다. 반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라고 부탁한 후 학교 밖으로 나간 것이다. 대참사였다.

"이 녀석들 이런 거짓말 자주 하니까 선생님들도 오냐오냐하지 마시고 조심하세요!!"

화가 단단히 난 선생님은 뼈가 담긴 말을 남긴 채 돌아갔다.

"애들이 공부를 싫어해서 그렇지, 우리한테 와서는 다 착하게 행동하잖아요. 조금 충격이네요."

"저도요. ㅜㅜ 믿었는데...  우리를 이용해서 거짓말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이 사건은 이후 다른 수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선생님, 저 확인증 좀 주세요. 확인증 안 가져오면 결석이래요!"

결국 내 도장이 찍힌 '인턴 수업 확인증'을 만들었다. 인턴 수업의 부작용을 보니 속이 까맣게 탔다. 확인증만 노리는 녀석들도 있어서 숨겨서 보관해야 했다.



다시 한번 말해 줘!

그래도 아이들과 친해지려고 꾸준히 노력한 덕인지 조금씩 대화가 가능해졌다. 물어보지 않아도 먼저 고민을 털어놓으며 조언을 구하는 아이들도 생겼다. 여덟 살이라는 나이 차이와 인턴이라는 신분이 애매한 게 이득이었다. 선생님도 누나도 아닌, 그렇다고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사이였으니까. 가족이나 담임 선생님에게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나누기에 제격이었다. 그 덕에 우리도 아이들과 편하게 말했다. 함께 수업하는 아이들에게만큼은 금연 전도사가 되었고, 공부하라는 강요보다는 목표나 꿈을 가지도록 자극했다. 김려령 작가의 『완득이』와 휘성의 『그래도 나는 ING』를 발췌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학생들이 최대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평소처럼 소리 내어 책을 읽던 어느 날이었다. 한 녀석이 마지막 문장까지 다 읽더니 대뜸

"선생님!! 이거 진짜 웃겨요!!ㅋㅋㅋ"

라고 말했다. 

'헉....!!!!'

잠깐 놀다 간다는 생각으로 참여하는 아이들이다. 시키는 것만 겨우 하는, 절대 그 이상은 하지 않던 아이들. 그런데 먼저 반응을 보였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너무 놀라 심장이 쿵쿵쿵 뛰었다.

"그렇지? 재밌지? 너희는 어때?"

"선생님도 이거 읽어 봤어요?"

"그럼! 당연히 읽었지~ 너희랑 읽고 싶어서 준비한 건데?"

다른 그룹 아이들도 반응을 보였다.

"선생님은 이다음에 어떻게 될 것 같아요?"

하며 지문을 이해하고 질문하기 시작했다.

신이시여! 제 마음이 드디어 전달되었나요? 감격의 순간이었다. 점점 수업에 집중하고 흥미를 붙이는 아이들을 보니 힘이 났다. 그 이후로 쉬는 시간마다 교무실을 찾아오는 아이들도 늘어났다. 인턴 교사 구역은 늘 1, 2학년이 섞여 바글바글했다.

"교무실이 너희 집 안방이야?!!! 그만 좀 와!!!"

다른 선생님들이 호통을 쳐도 그때뿐이었다.

이럴 때마다 아이들을 자극했다.

"너희 시험에서 높은 점수도 받아보고 싶지 않아?"

"네, 않아요."

"아 왜~ 맨날 뒤에서만 놀았는데 앞쪽으로도 슬슬 가봐야지! 너네 한 번 시작하면 잘하잖아! 지금처럼!"

"성적 오르면 뭐 주는데요?"

역시 그냥 넘어가는 아이들이 아니었다.

"아마 성적 오르면 너희 기분이 엄청 좋을걸? 성적표 집에 가져가서 보여드린 적 있어?"

"아니요ㅋㅋㅋ"

"맨날 숨겼지? 이제 부모님께 당당히 보여드릴 수 있지! 그리고 선생님들도 너를 다르게 보실걸? 수업 시간에 잠만 자고 노는 줄만 알았는데 네가 점수 딱! 올라봐! 이 녀석 공부 열심히 한다고 하시겠지!"

"..."

"근데 무엇보다 점수 한 번 오르면 너무 신나서 더 올리고 싶을걸?^-^"


시험 기간이 가까워져 다시 교과서 수업을 진행했다. 교과서를 펴 본 적도 없을 텐데 빌려서라도 가져 오는 녀석들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유독 더 친해진 학생들은 방과 후에도 학교에 남을 테니 보충수업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런 게 엄마 마음인 건지 너무 기특해서 다 해주고만 싶었다. 실제로 일부 학생들은 성적이 올랐다. 학교에서도 성적 향상자에게 문화 활동을 지원해주어 방과 후에 함께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다. 진심을 알아주고 유대감이 형성되니 이제는 인턴쌤들 걱정까지 해주더라고? 그래서였는지 열심히 공부해서 평균 40점이나 향상된 덕분에 우리의 계약은 2학기까지 연장되었다. 많이 부족한데도 잘 따르며 약속도 잘 지켜주니 고마웠다.



너무 행복해요! 그게 문제지만

인턴 교사들과는 대화가 잘 통해 퇴근 후에도 종종 모였다. 방학 때는 1학기에 함께 한 아이들까지 다 같이 만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금방 2학기가 되었고, 한 학기를 경험해서 그런지 2학기 업무는 더 수월했다. 매일 보이던 녀석이 안 오면 무슨 일이 생긴 건지 걱정할 여유도 생겼다. 아이들을 대하는 방법도 터득하여 예전만큼 상처받지 않았다. 그 무엇보다 매일 보람을 느껴 행복했다. 주말을 아쉬워하며 출근하기만을 기다리는 것 자체가 좋았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너무 행복하기만 했다. 사실 인턴 교사에 지원할 때 결심했다. 합격 여부와 관계 없이 마지막으로 1년만 임용고시 공부에 몰입하기로 했다. 스물여섯, 공부하기에 아직 늦지 않은 나이였다. 인턴 교사에 합격하면 수업을 직접 하니 상당히 도움될 것 같았다. 다른 기간제 교사들도 일하면서 공부하니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변화를 느끼며 안주했다. 마치 내가 정교사인 것마냥 그 생활에 만족해 공부를 놓았다. 미래를 잊은 채, 즐기기만 했다.

 

감사하게도 학교에서는 내년에도 인턴 교사를 해달라고 제안했다. 정든 2학년 아이들이 3학년이라는 중요한 시기를 잘 보낼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꿈같은 시간이 끝난 후 마주할 현실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 결국 제안을 거절했다. 겨울 방학이 시작되면서 인턴 교사 생활도 끝이 났다. 1년 동안 함께한 아이들에게 마음을 담은 편지를 썼다. 작은 선물과 함께 전달하니 아이들도 아쉬워했다. 역시나 뭉클한 마지막이었다.


장난이 심해 배경화면에 메시지를 담았다. [컴퓨터 건드리지 마!!]



"3학년 싫어요. 선생님들이 더 많이 혼내고요. 쌤들이랑 수업했을 때가 진짜 재밌었는데...!"

"저 졸업했어요! 사람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학년 때 선생님 안 만났으면 졸업도 못했을 걸요?"

"선생님 결혼식에 제가 시범단 데리고 가서 공연해드릴게요! 빨리 결혼하세요!"

스승의 날마다 전화 주는 아이들이 정말 고마웠다. 내가 언제 또 이런 말을 들어볼까 생각하며 그저 감사했다. 내 결혼이 늦어져서일까, 지금은 연락이 끊겨 공연해달라는 말도 못 한다. 하지만 이렇게나 많은 추억을 남겨줬는데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내 인생 26페이지는 행복한 시간만 기록되어 있다. 처음으로 꿈을 이룬 장면은 반짝반짝 빛이 났고 아름다운 꽃을 한 아름 피웠다. 하지만, 꽃이 진 후의 모습은 그리 예쁘지 않았다. 떨어지고 밟혀 짓이겨진 채로 시커먼 흔적만 남았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앞으로 내 모습은 어떨까?' 꿈을 포기했던 그때처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고민했다. '교사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아이들과 소통하고 싶어서였잖아. 그런데... 그건 꼭 말이 아니라 메시지로 전달해도 되는데... 완득이처럼 글로 표현할 수도 있고...'

이런 생각을 할 때쯤 구인공고를 보다가 우연히 발견한 한 문장.


출판인 양성 과정 [국비 지원 무료]


'나 지금 흔들렸니? 책? 나 책 좋아하는데? 그럼... 아이들을 위한 책을 만들어 볼까?'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찾아 온 운명인 걸까? 떨리는 마음으로 원서를 접수했다. 그렇게 또 다른 도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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