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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썬 Mar 22. 2021

이게 아닌데!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오늘도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_어쩌다 덕업일치] 05 첫 회사는 기획실

넓은 통유리 창으로 햇살이 내리쬐는 사무실.
파티션 너머로 분주한 직원들이 보인다.
“루미썬 씨,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ㅇ^”
‘으악 눈부셔!'
활짝 웃으며 맞이해주는 대표님에게 후광이 보인다.
‘이제 여기에서 좋아하는 일 마음껏 하는 거야?’




# 너무 갔어!  현실로 돌아와!


망원동 어느 사거리, 지도를 보고 목적지에 다다르니 5층짜리, 회색 건물이 눈앞에 있었다.

‘이상하다. 나 잘못 온 거 같은데?’

드라마에서 본 출판사 건물은 전원주택처럼 아리따웠다. 혹은 세련된 도시 스타일이거나! 멋있는 건물 내부에는 도서관처럼 생긴 서가에 읽고 싶은 책이 가득 꽂혀 있었다. 탁 트인 통유리 창으로 내리쬐는 햇살 아래에서 원고를 보는 편집자가 나였으면 했다. 함께 일하는 대표님도 늘 훤칠한 외모를 자랑했지.

'하아-'

드라마를 끊어야 하나. 들어가기도 전에 기운이 빠졌다. 1층에는 건물과 어울리지 않는 산뜻한 카페가 있었다. 환경보호를 콘셉트로 하여 녹색으로 포근하게 꾸민 카페였다.

‘그래, 외관만 보고 실망하기엔 이르지. 건물이 허름해도 내부는 아닐 수 있잖아.’

회사는 4층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면접자 루미썬입니다.”





# 어서 와, 우리 회사는 처음이지?


2011년 11월, 출판학교 동기 2명과 함께 입사했다.

“이 자리 사용하실 거니까 잠깐 앉아 계세요.”

“감사합니다!”

출입문을 열자마자 통과하는 길 한 가운데에 내 자리가 있었다. 공간이 좁아 다닥다닥 붙어 있는 책상은 무척 답답해 보였다. 내 뒤로 사람들이 지나다니니 신경 쓰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움직일 공간도 그리 여유롭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다가 옆자리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하핫 ^^;”

어색하게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있으나 마나 한 파티션은 일하다가 담소를  나누기 좋아 보였다.


출근한 직원들과 모여 인사를 나눴다. 20여 명이나 되는 생각보다 큰 규모에 놀랐다. 회사는 교정팀, 편집팀, 디자인팀, 제작팀으로 나뉘었다. 작은 출판사는 편집 과정의 모든 인력을 내부에 구성하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외주 작업자와 소통한다. 지금 돌아보면 이 회사는 기획실 중에서도 큰 편이었다. 실제로 이를 증명하는 일이 이직할 때마다 생겼다.

나는 편집디자이너로 편집팀 소속이었다. 우리 팀은 같은 출판 학교 출신 선배들이 대부분이었다. 즉, 내년이면 졸업생 중 누군가가 후배로 올 수 있다는 뜻이다. 선배도 있고,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도 있으니 공감대가 많아 적응하기는 쉬워 보였다.


‘이게 무슨 소리지?’

분위기에 조금 익숙해지니 이상한 기계 소리가 들렸다.

“출력실에서 나는 소리예요.”

“와아, 여기에서 출력도 해요?”

“가서 봅시다.”

내가 생각한 출력실은 연구원에서 일할 때 자주 썼던 대형 복사기가 여러 대 놓인 풍경이었다. 학교 앞 제본 집을 연상한 거지.

“헉!!”

출력실 문을 열자마자 말 소리를 잡아먹는 커다란 기계 소리가 들렸다. 복사기 따위가 아니라 거대한 출력기가 포효하고 있었다.

“이걸로 필름을 출력해요. 최종 PDF가 완성되면 그걸 필름으로 뽑는 거예요.”

“와… 그렇구나… 이렇게 큰 기계가 여기에 있을 줄 몰랐어요!”

‘아니, 대체 이렇게 큰 걸 어떻게 4층까지 옮긴 거지?’

엉뚱한 생각이 들 정도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출력실 직원과도 인사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왔다. 인사만 했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 누가 제일 꼼꼼해?


"인사도 했으니까 이제 일 좀 해 봐야지? 오늘 온 세 명 중에 누가 제일 꼼꼼해요?"

"루미썬이요~~~!!!"

"그럼 루미썬은 나랑 같이 일해요-."

'헉!!'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차장님이었다.

'뭐야, 뭐야!! 나 첫날부터 차장님이랑 일해야 하잖아!!!'

나라고 지목한 동기들을 힘껏 째려보았다. 차츰 여유를 찾아가던 마음은 다시 졸여왔다.

차장님은 내게 교정지 더미를 건넸다.

"이거 교정지에 쓰여 있는 대로 수정하면 돼요. 교정부호는 알죠?"

"아~ 네네."

"꼼꼼히 해주세요!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보고~ 많이는 말고~ "

'네에...?'

선배님 방해할까 봐 질문하기 가장 곤란한 신입 아닌가! 그런데 질문도 많이 하지 말라니... 땀이 삐질삐질 났다. 분명 장난이었지만, 입사 첫날인데 어떻게 장난으로 받아들일까?

일 자체가 어려운 건 아니었다. 인디자인으로 편집한 파일을 열고 종이 교정지에 체크된 내용을 수정하는 거니까. 교정지를 훑어봤다. 고칠 게 얼마나 많은지 여기도 저기도 빨간색투성이였다. 그런데 잠깐! 이 책 생긴 게 왜 이래? 동그란 구슬이 피라미드처럼 쌓여 있는 그림 하며….

CH3(CH2)4……

‘뭐야!!!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이런 책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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