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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썬 Mar 29. 2021

어쩌다, 대학 교재 편집디자이너

[오늘도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_어쩌다 덕업일치] 06 내가 생각했던 책은

'대체 편집을 어떻게 한 거야!'


교정사항을 수정한다고 했을 때 기본적인 띄어쓰기나 오탈자일 거로 생각한 게 잘못이었다. 글자 모양이나 크기가 다른 건 애교였다. 아예 원서나 원고와 다르게 편집한 부분은 다시 바꿔 넣었다. 스타일이 같아야 하는데 제각각인 경우도 있었다. 그림 수정이 있으면 일러스트를 할 줄 알아야 했고, 사진 수정이 필요하면 포토샵을 사용해야 했다. 인디자인에서 수정해도 적용이 안 되어 애를 먹을 땐 숨어 있는 자동화 기능을 찾아 해제했다. 단순히 꼼꼼하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프로그램을 잘 다룬다고 되는 것도 아니었다. 확실히 기본적인 맞춤법이나 글의 체계를 알면 수월했다. 

'이런 걸 생각한 게 아닌데... 내가 좋아하는 문학책은 글자만 있잖아! 이건 왜 이렇게 할 게 많은 거야!'

A4 크기만 한 이 책은 베개로 사용해도 좋을 두께를 자랑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내용도 아닐뿐더러 2단으로 빽빽이 들어찬 텍스트를 보면 가슴이 답답했다. 페이지마다 나오는 분자 구조 그림과 복잡한 화학식은 두통을 불렀다. 이런 책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던가. 아마도 수능 날이었겠지.

'앞으로 이런 책만 만들어야 한다고?'

한숨이 나왔다. 



Photo by Terry Vlisidis on Unsplash



“저... 대리님! ^^;”

“네?”

“(속삭이며)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말씀하세요^^"

"저기... 혹시...  앞으로 만드는 책이 다 이렇게 생겼나요? (ㅜ_ㅜ)”

“아아~ 책이 좀 복잡하죠?”

“네에... 마... 많이요! 저는 대학 교재라고 해서 제가 공부했던 책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와서 보니.... 이런 책이...”

“이렇게 복잡한 책도 있고요, 더 쉽고 간단한 책도 있고요. (속삭이며) 사실 이것보다 더 묵직한 책도 있는걸요!"

"네에??? 정말요???"

"화학, 공학, 의학, 수험서 등 우리가 만들 책 종류가 다양하니까 하나씩 해 보면서 더 재미있는 걸 찾아보세요! 지금 하시는 책은 이 분야 대표 교과서라서 격년마다 개정하는 중요한 책이에요. 그래서 더 꼼꼼히 해달라고 하셨을 거예요. 모든 책이 다 이렇다고 생각하지는 마시고요!”

“후우... 그래야겠죠...? 감사합니다!”



이 회사에서 주로 대학 교재를 만든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다. 면접 때도 들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교육학과 출신이란 말이지. 전공 교재는 주로 텍스트였고, 적당한 표와 그림 정도였다. 페이지마다 이렇게 복잡한 그림이 등장하는 경우도 없었다. 결국은 다른 전공을 생각하지 못한 내 잘못이지. 

‘그래~ 지금 고민하면 뭐 하냐, 일단 해 보자.’

'이런 책 만들려고 1년 동안 배운 거 아니잖아! 아니라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거야!'

'아니, 그래도 해보지도 않고 못 한다는 게 말이 돼?'

'조금 해보다 진짜 아니면 어떡할래? 시간 아까워!'

'지금 당장 나간다고 내가 다니고 싶은 회사에 취업하는 거 아니잖아. 1년만 참고 이직하지 뭐.'


입사 첫날부터 시작된 이 고민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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