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_어쩌다 덕업일치] 08 나도 편집디자이너
이제 퇴근인데, 지금 주고 내일 달라는 게 말이 돼요?
‘뚝딱’하면 만들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이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뱉은 말이지 않을까? 반복되는 상황에 지쳐서 우리끼리 되뇌던 말. 그래서 알려드린다.
선배들 책을 수정하며 돕는 게 익숙해질 때쯤이었다. 이제 나도 책 한 권을 맡아 단독으로 진행하라고 했다. 처음에는 작업 진행표에 내 이름이 올라간다는 사실이 기뻤다. 어쩐지 ‘제대로’ 일하는 기분이 들어서 말이다. 그때는 내 이름이 적히지 않길 바라는 날이 올 줄 몰랐으니까. 수정만 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책임감이 짓누를 줄 몰랐으니까.
“이제 교재에 적응은 되셨죠? 앞으로는 단독 진행이니까 전체적으로 한 번 설명해 드릴게요.”
“와-- 떨려요!”
“너무 긴장하지는 마시고요. (토닥토닥) 편집팀(편집디자이너)에서 가장 먼저 하는 작업은 출판사를 확인하고 회사 성향에 맞추어 디자인 시안을 잡는 거예요. 표지는 디자인 실장님이 작업하시고, 우리는 표지를 제외한 모든 걸 디자인해요. 본문이랑 그 앞뒤에 있는 부속물까지요.”
“부속물이요?”
“예를 들면, 머리말이나 서문, 집필진이나 저자 소개, 용어 정리, 부록, 연습문제 같은 거요. 보셨죠? 말 그대로 본문 앞뒤로 있는 내용 전부요.”
“아~ 네.”
“보시는 것처럼 책마다 크기가 다르잖아요? 이걸 판형이라고 부르는 건 아시죠?”
“네~”
“문학책 같은 단행본이랑 우리가 만드는 책은 판형이 조금 다른 것도 느끼셨나요? (책을 가리키며) 교재는 이 두 가지 판형을 가장 많이 사용해요. A4와 비슷한 국배판(210*275)이랑 공책 크기와 비슷한 46배판(188*257)인데요. 몇 mm 정도 변형하기도 합니다.”
“(끄덕끄덕)”
“크기를 파악했으면 이제 원고를 봐야겠죠? 책에서 몇 가지 색상이 사용되는지, 텍스트뿐인지 사진이나 그림도 들어가는지, 기타 디자인 요소는 많은지, 제목 체계는 몇 단계인지 등 전체적으로 파악해야 해요."
“그렇구나~”
“원고 파악을 마쳤으면 시안 디자인을 하는데요. 보통 2~3개 정도 작업해요. 번역서는 판형, 디자인, 요소 등 원서를 따르는 편이라 조금 쉬워요. 추가 시안만 원서와 다르게 작업하면 되니까요. 반면에 창작서는 원고 체계를 보고 창의적으로 디자인하는 거라 어렵게 느낄 수도 있어요.”
“말씀만 들어도 어려울 것 같아요…”
“하다 보면 재미있으실 거예요!^^ 창작서는 사진이나 그림에도 신경 써야 하지만요.”
“왜요?”
“저자들은 직접 촬영한 사진이 없으면 인터넷에서 검색하거나 다른 책에서 가져온 그림을 원고에 넣어두거든요. 그건 해상도가 낮아서 인쇄에 적합하지 않을뿐더러 저작권 문제로 사용이 불가능해요.”
“아-! 그럼 어떻게 해요?”
“보통은 새로 그려요. 그럼 그리는 시간도 필요하잖아요. 그러니 처음 시안 잡을 때 일러스트 작업이 필요한 컷도 파악해서 미리 외주 작업을 의뢰하죠.”
“와… 생각보다 챙겨야 할 게 많네요.”
“그렇죠. 책 한 권 마무리해보면 느낄 테지만 끝나도 끝난 게 아닌 기분이 들어요.”
“네-? 허허허…”
“대략 원고 파악이 끝나고 시안 작업도 하잖아요? 그럼 차장님과 디자인 실장님께 디자인을 컨펌받고 수정해요. OK가 떨어지면 수정본을 출판사에 보내는 거예요. 출판사는 저자와 협의 후 최종 시안을 우리에게 알려주고요. ‘몇 번 시안이 최종입니다. 작업해주세요.’하고 진행을 요청해요. 그 후에는 시안대로 편집해서 교정 보고 수정하며 최종본을 만들어내는 거죠. 지금까지 수정하셨던 것처럼요!”
“아… 멀고 먼 길이네요.”
“그렇죠. 편집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고, 저자와 타이밍이 잘 맞아야 하기도 하고요.”
“타이밍이요?”
“우리가 이 책 한 권만 진행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저자도 기한을 맞추지 못하는 일이 많아요. 그럼 서로 일정이 틀어지죠. 하지만, 출간일이 미뤄지는 일은 거의 없어요. 야근과 철야로 일정을 맞추면 자연스레 꼼꼼히 볼 시간이 줄어드는 거죠. 더욱이 우리는 교재를 만들고, 저자는 교수잖아요. 저자는 방학이 그나마 한가한 편이고, 어차피 새 학기를 대비하는 책이니 방학마다 책이 몰릴 수밖에 없어요.”
“갑자기 막막한데요?... 그럼 동시에 몇 권 정도 진행하세요?”
“그래도 열 권은 되는 것 같아요.”
“네? 진짜요?... (또르르)....”
“이런, 너무 빨리 말씀드렸나... 묵직한 책만 있는 건 아니에요...”
“하아... 그럼 이렇게 최종본을 만들면 끝인가요?”
“아직 아니죠~ 최종 PDF를 출력실에 보내서 최적화된 PDF를 받아 최종 교정을 봐요. 이 데이터로 출력해도 문제가 없는지 보는 거죠. 그런데 우리 회사는 내부에 출력실이 있으니 조금 더 편하죠.”
“최종 PDF에서는 실제로 오류가 많이 나와요?”
“깔끔하게 끝나는 책도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 사진이나 그림이 많고, 색상도 많이 쓰여서 오류는 종종 나와요. 보여야 할 부분이 보이지 않거나, 안 보여야 할 부분이 보이는 경우도 많고요. 평소 작업할 때 못 봤던 오류도 많아요. 편집이 잘못된 걸 그때 발견하는 경우도 있고요.”
“와- 책 한 권 끝내는 게 이렇게 힘든 거였어요?”
“사람인지라 몇 번을 봐도 틀린 건 나오더라고요. 오류 해결 후 진짜 최종 PDF가 나오면 필름으로 출력하고 그걸 종이에 인쇄해요! (요즘엔 필름 출력하지 않음)”
“아~~ 가끔 폴더에서 ‘최종, 진짜최종, 진짜진짜최종’ 이런 파일 많이 봤어요!”
“아... 부끄럽네요. 곧 만들게 되실 걸요?^^;”
“크크크”
“끝난 것 같지만 아직 더 있어요. 인쇄는 잘 되었는지 인쇄소에 가서 감리를 보는데요. 우리 회사는 제작부에서 하고요. 임시로 엮은 가제본을 우리가 확인해요. 이상 없으면 그대로 진행합니다. 그럼 그걸 재단해서 책으로 묶는 거죠. 그 후 우리 손에 받아보기까지 다른 과정도 있지만, 우리가 그것까지 하지는 않으니까 이 정도만 말씀드리면 되겠네요.”
“와…”
“더 궁금하신 거 있으세요?”
“출판학교에서 글로 들은 거랑 직접 하며 배우는 건 다른 것 같아요. 지금은 해보기 전이니까요. 일하면서 여쭤볼게요! 질문이 많아질 예정입니다!”
“네~ 그럼 일단 맡은 책 원고부터 파악하고 시안 작업 시작하면 될 것 같은데요?”
“알겠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설명을 듣기 전에 들떠 있던 기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게 좋아할 일인가 싶으면서 덜컥 겁이 났다. 잘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