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랭크코퍼레이션의 결단
2018년, 설립 3년 만에 매출 1,160억 원을 돌파하며 업계를 뒤흔든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마약베개'로 유명한 블랭크코퍼레이션입니다. 당시 이 회사의 가장 파격적인 점은 매출 규모가 아니라, 그 매출을 만들어낸 '의사결정의 주체'였습니다.
입사한 지 1년도 채 안 된 24살, 25살 주니어들이 매일 수천만 원의 광고비를 집행했습니다. 팀장이나 본부장의 결재는 없었습니다. 오직 데이터와 본인의 판단뿐이었습니다. 당시 업계에서는 "경험 없는 애들에게 돈을 맡기는 건 도박"이라며 우려 섞인 시선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압도적인 승리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위험한 도박'이 최고의 경영 전략이 될 수 있었을까요?
많은 경영자가 주니어 직원들을 보며 "요즘 애들은 주인의식이 없다"거나 "책임감이 부족하다"고 한탄합니다. 그래서 리더십 교육을 시키고, 정신 교육을 합니다. 하지만 블랭크의 남대광 대표는 다르게 접근했습니다. 책임감은 가르치는 가치(Value)가 아니라, 예산 집행권이라는 실탄을 손에 쥐여줄 때 발생하는 생존 본능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주니어가 리더로 성장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내 의사결정이 재무적 결과로 이어지는 피드백 루프'를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기획한 영상이 오늘 오후 매출 숫자로 꽂히는 야전 경영을 경험하는 순간, 직원은 단순 실무자에서 '경영자'로 강제 진화합니다.
숫자의 무게를 느껴본 사람만이 숫자를 책임지는 법을 배웁니다.
중소기업 현장에서 권한 위임을 주저하는 리더들에게는 세 가지 공통된 '착각'이 있습니다.
- 경험의 신화: "수십억 원을 쓰려면 최소 10년 차는 되어야 한다."
SNS 미디어 커머스에서 콘텐츠 수명은 72시간입니다. 3단계 결재를 거치는 일주일은 잠재 매출의 90%를 소각하는 행위입니다. 알고리즘은 20년 차 부장의 직관보다 어제 올린 주니어의 영상 클릭률(CTR)에 더 정직하게 반응합니다.
- 통제의 안전망: "촘촘한 결재 라인이 리스크를 줄여줄 것이다."
진짜 리스크는 주니어가 돈을 날리는 것이 아니라, 결정권 없는 주니어가 수동적 도구로 전락하여 조직 전체가 무거워지는 것입니다.
- 전문성의 함정: "PD는 영상만, MD는 상품만 해야 효율적이다."
기획부터 판매, CS까지 전 과정을 총괄하게 할 때 비로소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보는 경영자의 시야가 생깁니다.
수천만 원의 광고비를 매일 태울 수 없는 중소기업이라도, 블랭크의 '마이크로 의사결정권'은 충분히 이식할 수 있습니다.
1. 샌드박스 예산 배정
월 100만 원이라도 좋으니, 팀장 승인 없이 주니어 스스로 가설을 세워 집행하고 매출을 리포트하게 하십시오.
2. 미니 CEO 권한 부여
특정 프로젝트(신제품, 팝업 등)의 총괄을 주니어에게 맡기고, 타 부서 협조 요청 권한을 공식화하십시오.
3. 재무 데이터 투명성
매출, 원가, 이익률 데이터를 공개하십시오. 내가 쓴 10만 원이 회사 이익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야 합니다.
이 시스템이 작동하려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손절 한계선'입니다. 주니어에게 전권을 주되, 성과가 나지 않을 때는 가차 없이 해당 프로젝트를 해체하거나 예산을 회수하는 냉혹한 결과 책임제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또한, 심리적 안전망 없는 수치 압박은 핵심 인재를 번아웃 시킵니다. "실패해도 괜찮으니 데이터로 증명하라"는 문화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결론은 명확합니다. 주니어에게 일을 가르치려 하지 마십시오. 대신 실패해도 회사가 망하지 않을 수준의 직접 예산권을 부여하십시오. 사람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권한이 사람을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