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사람이고 싶다는 욕망

6장.

by 경영 컨설턴트 Tim

나는 사람 안에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주 특별한 도덕심이라기보다, 누구에게나 조금씩 있는 바람에 가깝다. 타인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람이고 싶고, 누군가의 마음을 알아볼 줄 아는 사람이고 싶고, 가능하다면 상처보다 위로에 더 가까운 사람으로 남고 싶다. 그리고 그 바람은 사랑 안에서 훨씬 또렷해진다. 사랑은 내가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가장 선명하게 비추는 바리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다정함은 유난히 아름다운 덕목처럼 느껴진다. 다정한 사람이라는 말에는 이상하게 오래 머물고 싶은 온기가 있다. 차갑지 않은 사람, 쉽게 판단하지 않는 사람, 한 번 더 이해해보려는 사람. 누군가를 향해 마음을 열 줄 알고, 관계 안에서 함부로 거칠어지지 않는 사람. 우리는 그런 사람을 좋아하고, 동시에 그런 사람이고 싶어 한다. 어쩌면 사랑을 한다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먼저,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과 만나게 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 욕망이 생각보다 쉽게 사랑의 본질과 섞인다는 데 있다. 처음에는 분명 상대를 향한 마음에서 출발했더라도, 어느 순간부터는 다정한 사람으로 남고 싶은 나 자신의 욕망이 관계의 중심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나는 매정한 사람이 아니어야 하고, 쉽게 등을 돌리는 사람이 아니어야 하고, 힘들다고 해서 차갑게 굳어버리는 사람이 아니어야 한다고 믿게 된다. 그러면 사랑은 타인을 향한 마음인 동시에, 내가 지키고 싶은 자기 이미지가 된다.


그 순간부터 다정함은 더 이상 단순한 태도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증명하는 방식이 된다. 나는 끝까지 마음을 놓지 않는 사람,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람, 상처받아도 너무 거칠어지지 않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믿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 믿음은 생각보다 강하다. 때로는 시렞 감정보다 강하고, 실제 관계보다 강하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보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지가 더 앞서기 시작하면, 다정함은 서서히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이 된다.


나는 이 지점이 사랑을 아주 미묘하게 어렵게 맏는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다정한 사람이고 싶다는 욕망은 너무 쉽게 옳아 보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도 아름답고, 스스로 느끼기에도 떳떳하다. 그래서 사람은 이 욕망을 잘 의심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좋은 마음을 지키고 있는 겄분이라고, 다정함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겄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때로는 바로 그 다정함이 상대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다정하고 시은데, 상대는 지금 다른 종류의 진실을 원할 수도 있다. 나는 끝까지 부드럽고 싶은데, 상ㅇ대는 오히려 솔직한 거리두기나 분명한 경계를 더 필요로 할 수도 있다. 그럴 때 다정함은 사랑의 표현이 아니라, 내가 포기하고 싶지 않은 나 자신의 방식이 된다.


생각해보면 다정함은 언제나 선한 것만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다정함이 사랑과 같지는 않다. 다정할 수는 있지만 상대를 제대로 보지 못할 수도 있고, 부드럽게 말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는 상대를 내 기대 안에 가두고 있을 수도 있다. 반대로 어떤 순간에는 조금 서툴고 단호해 보여도, 오히려 그 편이 더 상대를 존중하는 방식일 수도 있다. 그러니 다정함은 사랑의 한 얼굴일 수는 있어도, 사랑 전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꾸만 다정한 사람이고 싶어 한다. 아마 다정함이 관계를 지키는 방식인 동시에, 자기 자신을 견디게 하는 방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차가운 사람이 아니라고, 완전히 닫힌 사람이 안리ㅏ고, 삶이 나를 거칠게 만들어도 끝내 인간적인 마음을 잃지는 않아싸독 믿고 싶다. 그런 믿음은 대로 우리를 지탱해준다. 특히 삶이 버겁고 마음이 메말라갈수록, 사람은 더더욱 자기 안에 남아 있는 다정함의 흔적을 붙들고 싶어 한다. 그것은 단지 타인을 위한 마음이 아니라, 나 자신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는 증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다정한 사람이고 싶다는 욕망도 조심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 욕망이 아름답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아름다워서 쉽게 경계 밖으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상대를 위해 다정한 것인지, 아니면 다정한 사람으로 남고 싶은 나 자신을 위해 그러는 것인지 묻지 않으면, 다정함은 쉽게 자기애와 뒤섞인다. 그리고 그때 사랑은 타인을 향한 일처럼 보이면서도, 실은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기 위한 방식이 된다.


나는 사랑 안에서 다정함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은 다정함 없이는 쉽게 자기중심으로 기울어진다. 다만 다정함이 사랑을 대신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랑의 중심은 결국 상대여야 한다. 그 사람의 실제 모습, 그 사람의 리듬, 그 사람이 지금 감당하고 있는 마음이 먼저여야 한다. 내가 다정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일보다, 내가 지금 이 사람을 제대로 만나고 있는가를 묻는 일이 더 먼져야아 한다. 다정함은 그 질문 뒤에 따라오는 태도여야지, 그 질문을 가리는 자기 이미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어쩌면 성숙한 사랑은 다정함을 포기하지 않되, 다정한 사람이라는 자아상에 취하지 않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부드럽고 싶지만, 그 부드러움이 상대를 위한 것인지 늘 물어볼 줄 아는 사람. 나는 끝가지 마음을 닫고 싶지 않지만, 그마음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살펴볼 줄 아는 사람. 그런 조심스러움이 있을 때 다정함은 비로소 자기 만족이 아니라 만남의 태도가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다정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정함을 통해 상대를 더 정확히 만나는 일일 것이다. 나는 아마 여전히 다정한 사람이고 싶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마음이 단지 나를 지키기 위한 욕망으로만 남지 않기를 바란다. 다정함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표지가 아니라, 내 바깥의 한 사람을 함부로 지나치지 않게 하는 방향이기를 바란다. 사랑이란 어쩌면 그렇게, 아름다운 자아상을 붙드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에게 더 정확히 다가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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