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사랑은 타인을 향한 감정이라고 생각하지만, 때때로 사람은 그 감정 속에서 자기 자신에게 더 깊이 매혹되기도 한다. 누군가를 아끼고, 이해하려 애쓰고, 다정함을 잃지 않으려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 스스로도 귀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사랑을 하고 있다는 사실보다, 사랑하는 나 자신의 마음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그 마음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대하는 자기 자신을 좋아하게 되는 일은 어쩌면 자연스럽다. 사랑은 사람 안의 좋은 부분을 드러내기도 하고, 평ㅇ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다정함과 인내심, 따뜻함을 꺼내 놓기도 한다. 그러니 사랑하는 나 자신이 낯설고도 반갑게 느껴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 감탄이 조용히 방향을 바꾸기 시작할 때다.
처음에는 분명 상대를 향해 있떤 마음이, 어느 순간부터는 나 자신의 진심과 깊이를 확인하는 쪽으로 기울 수 있다. 나는 얼마나 진실한 사람인가, 얼마나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람인가, 얼마나 끝까지 다정하려는 사람인가. 그렇게 되면 사랑은 타인을 만나는 일이라기보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는 일이 되어버린다. 상대는 내 마음을 향하게 한 계기이지만, 정작 가장 오래 바라보는 것은 내가 된다.
어쩌면 사람은 사랑을 통해 탙인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도 함께 발견하는지 모른다. 한 사람을 아끼는 동안,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이고 싶은지를 더 선명하게 보게 된다. 쉽게 등을 돌리지 않는 사람, 상대를 품을 줄 아는 사람, 힘든 순가에도 다정함을 잃지 않는 사람. 그런 자아상은 아주 매력적이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위험하다. 사랑이 타인을 향한 마음인 동시에 내가 믿고 싶은 나 자신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을 떄, 사람은 종종 상대보다 자기 서사에 더 오래 머물게 된다.
이때 사랑은 미묘하게 달라진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내가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장면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 내가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얼마나 상처를 감수하고 있는지, 얼마나 진심을 다하고 있는지가 관계의 중심으로 떠오른다. 그러면 사랑은 더 이상 순수하게 상대를 향한 일이 아니다. 상대는 어느새 내가 얼마나 깊은 사람인지 보여주는 무대가 되고, 관계는 내가 믿고 싶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사람은 대개 이런 변화를 뚜렷하게 자각하지 못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진심이고, 실제로도 진심일 수 있다. 다만 그 진심이 향하는 방향이 조금씩 달라질 뿐이다.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은 너라는 사람이라기보다 너를 사랑하는 나 자신의 모습일 수 있다. 너를 향해 있는 듯 보이는 마음이, 실은 내 안에서 완성되고 싶은 어떤 자아상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나 자신에게 취하는 순간은 대게 아주 조용하게 찾아온ㄷ. 그것은 대단히 이기적인 마음의 형태로 오지 않는다. 오히려 더 다정하고, 더 진지하고, 더 진심 어린 얼굴을 하고 다가온다. 나는 이 관계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나는 끝까지 마음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나느 사랑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 사람이라고 믿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때때로 실제 관계보다 더 큰 힘을 가져온다. 상대가 무엇을 느끼는지보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지가 더 중요해지는 것이다.
나는 사랑이 바로 이지점에서 어렵다고 느낀다. 좋은 마음과 자기 도취는 생각보다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진심과 자기 서사는 종종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 그래서 사람은 스스로를 속이기 쉽다. 상대를 위해서라고 믿지만, 사실은 그런 사랑을 하는 나 자신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붙들고 있는 경우도 있다. 관계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관계를 통해 내가 믿고 싶은 나를 지키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랑하는 나 자신을 경계해야 한다는 말만 하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자기 자신이 보인다는 사실이 아니라, 상대가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사랑 속에서 내가 성장할 수도 있고,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된 듯 느껴질 수도 있다. 그것 자체는 자연스럽고 때로는 소중한 경험이기도 하다. 다만 그 모든 변화가 가능하려면 먼저 상대가 중심에 있어야 한다. 내가 무엇을 느끼는가보다, 내가 실제로 누구를 만나고 있는가가 먼저여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 사람을 사랑하는 나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사랑을 부정하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사랑을 더 정확히 바라보기 위한 질문에 가깝다. 사랑은 늘 순수한 형태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타인을 향한 마음과 자기 자신을 향한 마음이 섞여 있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그 섞임을 모른 척하지 않는 일이다. 그래야만 우리는 비로소, 사랑이 누구를 중심에 두고 있는지 다시 살펴볼 수 있다.
어쩌면 성숙한 사랑은 자기 자신이 전혀 보이지 않는 사랑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너무 선명해지는 순간을 알아차릴 줄 아는 사랑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나 자신에게 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더 조심스럽게 상대를 바라보게 된다. 내가 지금 붙들고 있는 것이 나의 진심인지, 나의 서사인지 묻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질문이, 사랑을 다시 나에게서 상대에게로 옮겨놓는 첫걸음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