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외로움은 이상한 감정이다. 누군가를 원하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누군가를 받아들일 힘은 잃게 만든다. 사람은 외로울 때 관계를 갈망한다. 내 마음을 알아봐 주는 사람, 내 곁에 머물러 주는 사람, 내가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 주는 사람을 바란다. 그런데 정작 그런 순간의 마음은 타인을 있는 그대로 만나기보다, 나의 빈자리를 채워줄 존재를 찾는 쪽으로 기울기 쉽다. 외로움은 타인을 향하는 감정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누구보다 강하게 자기 자신을 향한 감정이기도 하다.
아마 그래서 외로움은 사람을 더 예민하게 만든다. 평소에는 흘려보낼 수 있던 말에도 쉽게 서운해지고, 잠깐의 거리에도 금세 불안해진다. 상대가 나를 충분히 생각하고 있는지, 내 마음을 알아주고 있는지, 내가 밀려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꾸 확인하고 싶어진다. 그때 외로움은 단순한 쓸쓸함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끊임없이 증거를 찾게 만드는 마음이 된다.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 버려지지 않았다는 증거, 내가 그 사람에게 여전히 중요한 존재라는 증거 말이다.
문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외로움이 깊어질수록 사람은 타인을 만나기보다, 타인을 통해 자기 불안을 잠재우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상대가 어떤 마음인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지금 무엇을 감당하고 있는지보다 “나를 얼마나 생각하는가”가 더 중요해진다. 그러면 관계는 점점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겉으로는 누군가를 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상대를 향하고 있기보다 자기 결핍의 메아리 속에 머물게 된다.
그래서 외로움은 타인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타인을 밀어낸다. 누군가가 필요하지만, 정작 그 사람이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나를 위로해 주기를 바라지만, 그 사람에게도 자신의 리듬과 한계가 있다는 사실은 잊기 쉽다. 곁에 있어 주기를 원하지만, 내 방식이 아닌 방식으로 곁에 있을 때는 그 마음을 잘 알아보지 못한다. 결국 외로움은 타인을 부르면서도, 내 기대와 다른 방식으로 다가오는 타인은 자꾸만 밀어내게 만든다. 원하는 것은 사람인데, 받아들이고 싶은 것은 사람 자체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식의 반응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사랑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외로움이 사람의 시야를 좁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인지도 모른다. 외로운 마음은 자꾸만 자기 안으로 굽는다. 그래서 상대를 한 사람으로 보기보다, 내 외로움을 덜어주는 존재로 바라보게 된다. 물론 그 마음은 비난받아야 할 무엇이라기보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연약함에 가깝다. 다만 그 연약함을 알아차리지 못할 때, 사람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를 자기 필요의 자리 안에 가두게 된다.
나는 외로움이 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외로운 사람은 사랑을 원하지만, 동시에 사랑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가 있다. 누군가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내 기대를 완전히 채워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까지 함께 받아들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로움이 짙을수록 우리는 타인의 실제보다, 타인이 해주기를 바라는 역할에 더 집착하게 된다. 그때 사랑은 만남이 아니라 요구에 가까워지고, 관계는 위로가 아니라 시험처럼 변해간다.
그렇다고 해서 외로움을 부정하거나 억누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고, 때로는 그 외로움 때문에 누군가를 찾는다.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정말 사람을 만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내 안의 빈자리를 견디기 어려워 누군가를 붙잡고 싶은 것인지 스스로에게 조용히 물어보는 일이다. 이 질문은 외로움을 몰아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외로움이 관계 전체를 삼키지 않도록 하기 위한 질문에 가깝다.
어쩌면 사랑은 외로움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외로움을 가진 채로도, 그 외로움만을 중심에 두지 않는 연습 속에서 시작되는 것일 수 있다. 누군가를 원하되, 그 사람이 내 빈자리를 메우는 도구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 기대가 생기더라도, 그 기대가 상대의 실제 모습을 가려버리지 않도록 살피는 것. 외로움 때문에 타인을 찾을 수는 있지만, 끝내 그 사람을 외로움의 해답으로만 소비하지 않는 것. 사랑은 아마 그 조심스러움 속에서 조금씩 자기 모양을 갖추는 것 같다.
외로움은 사람을 자기 안으로 가두지만, 동시에 사람을 타인에게로 이끌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그 방향이 어디에서 멈추느냐일 것이다. 타인을 불러내 나의 빈자리를 채우는 데서 멈출 것인가, 아니면 그를 통해 내 바깥의 한 사람을 실제로 만나게 될 것인가. 나는 사랑이 그 갈림길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마음은 사랑의 시작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랑은 아마 그다음에서야 비로소 시작된다.
내 외로움이 아닌, 그 사람 자체를 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