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라면 이렇게 할텐데
5인 규모의 마케팅 대행사를 컨설팅하던 때에 일입니다. 주요 고객은 개인 병원 원장님들이었고, 자사 유튜브를 개설하여 브랜딩 강화에 힘쓰던 중이었습니다.
대표님께서는 저에게 이런 부탁을 하셨습니다.
"구성원들이 고객 관점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관련해서 교육을 좀 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우리의 유튜브 타겟은 개인 병원 원장님들인데 직원들이 기획해오는 거 보면 전혀 고객 관점이 아니에요. 상경계열 전공이 아니어서 그런지 이런쪽으로 약한 거 같네요."
그때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 대표님. 고객 관점으로 사고하는 법 교육 진행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돌이켜보면 참 부끄럽습니다. 저는 문제를 다시 정의하지 않았습니다. 대표님이 말씀하신 문제를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나쁜 진단에 동조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해결책을 쌓았습니다.
교육을 했습니다. '고객 관점 사고'라는 주제로 1시간 가량 진행했죠. 우리는 공급자 관점이 아닌 고객 관점으로 사고해야 한다고요. 구성원들은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교육은 원활하게 진행되었죠.
하지만 현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만약 지금 같은 상황을 마는다면, 저는 다르게 행동할 것입니다.
우선 의심부터 할 것입니다. '정말 고객 관점 사고 교육으로 해결될까?' 대표님의 진단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제 모릿속에 가상의 멘토를 초대하여 물을 것입니다. '왜 고객 관점 사고가 약할까? 진짜 문제가 뭘까?'
리처드 루멜트(Richard Rumelt). '전략의 적은 전략이다'의 저자입니다. 저는 그와 대화합니다.
'루멜트 교수님, 이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끼?'
'진단이 잘못됐네. 고객 관점으로 사고하지 못한다는 건 증상이지 원인이 아니야. 왜 그럴까를 파고들어야지. 전공 때문이라고? 말도 안 돼. 경영학 전공자라고 다 고객 관점으로 생각하나? 아니지. 문제를 다시 정의해봐.'
'그럼 진짜 문제는 뭘까요?'
"구성원들이 고객을 모르는거야. 고객의 삶, 고민, 언어를 몰라. 이건 사고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의 부재야. 데이터가 없는데 어떻게 고객 관점으로 생각해? 상상으로만 하라고? 그건 공상이지 기획이 아니야.'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육 말고 데이터를 줘. 고객이 누군지, 무엇을 고민하는지, 어떤 언어를 쓰는지. 이걸 정리해서 줘. 그럼 구성원들은 상상이 아니라 사실에 기반해서 기획할 수 있어.'
가상 대화가 끝났습니다. 저는 문제를 다시 정의했습니다.
지금이라면 대표님께 이렇게 말씀드릴 것입니다.
"네, 대표님. 구성원들이 고객 관점으로 사고하는 역량이 부족한 게 고민이시군요. 구성원들의 고객 관점 사고 역량을 강화시키겠습니다. 다만, 대표님, 이런 방식은 어덯실까요?"
"우선, 구성원들이 고객 관점으로 사고하는 게 부족한 이유는 전공 때문은 아닐겁니다. 연차고 오래 되지 않았고, 다른 회사도 거의 다 비슷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구성원들이 고객들의 삼, 고민, 언어를 모르기 때문인 거 같습니다.
이건 사고방식이 원인이라기 보다는 고객에 대한 지식과 맥락의 부재라고 봅니다. 현재는 사고방식의 교육을 진행해도 결국 구성원들은 고객을 상상하는 것에서 그칠 거예요. 그것보다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은 어떨까요?
제가 고객의 정보를 정리할 수 있게 대표님과 인터뷰를 1시간 이내로 진행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우리 회사의 고객 정보 가이드북으로 정리해서 배포하시죠."
"기획력이 약하면 아무리 편집 기술이 좋아도 결과물이 좋지 않을 거예요. 우리가 우선 기획력 강화에 에너지를 집중시켜 봅시다."
유튜브 콘텐츠 제작은 여러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기획, 촬영, 편집, 썸네일, 배포.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요? 기획입니다. 기획이 잘못되면 아무리 촬영을 잘하고 편집을 잘해도 소용없습니다. 고객이 원하지 않는 콘텐츠니까요.
자원을 집중시켜야 합니다. 모든 걸 다 하려고 하지 마세요. 편집 기술 교육, 촬영 기술 교육, 기획 교육. 다 하면 다 안 됩니다. 하나에 집중하세요. 지금은 기획입니다. 기획력이 올라가면 나머지는 따라옵니다.
"대표님, 가이드북 배포 후 2주 안에 우리의 고객에게 '제가 정말 원하던 거예요!'라는 피드백을 1회 이상 받아보는 것으로 검증해보시죠!"
명확한 목표입니다. 2주, 피드백 1회.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측정 가능합니다. 가설 검증 사이클입니다.
가설: "고객 정보 가이드북을 제공하면 구성원들의 기획력이 올라간다."
검증 방법: "2주 안에 고객 피드백 1회"
성공 기준: "제가 정말 원하던 거예요!"
빠른 사이클로 돌립니다. 3개월 후에 확인하지 않습니다. 2주 후에 확인합니다. 안 되면 바로 수정합니다. 가설이 틀렸으면 다른 가설을 세웁니다. 빠르게 실패하고, 빠르게 배웁니다.
과거의 나를 돌아봅니다. 그때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최선이 항상 옳은 건 아닙니다. 저는 나쁜 전략에 동조했습니다. 문제를 다시 정의하지 않았습니다. 대표님의 진단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지금이라면 다르게 할 것 입니다. 세 가지를 배웠습니다.
1. 진단을 다시 하라
대표님이 말씀하시는 문제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마세요. "정말 그게 문제일까?" 의심하세요. 루멜트를 머릿속에 초대하세요. 그와 대화하세요. "왜 그럴까?", "진짜 원인은 뭘까?" 파고드세요.
"고객 관점으로 생각하지 못한다"는 증상입니다. 원인은 "고객에 대한 지식과 맥락의 부재"입니다. 진단이 바뀌면 전략이 바뀝니다. 교육(X) → 데이터 제공(O).
2. 자원을 집중시켜라
모든 걸 다 하려고 하지 마세요. 하나에 집중하세요. 기획, 촬영, 편집. 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기획입니다. 거기에 에너지를 쏟으세요. 나머지는 나중입니다.
3. 빠르게 검증하라
추상적인 목표는 검증할 수 없습니다. "고객 관점 사고 역량 강화"는 측정할 수 없습니다. 대신 "2주 안에 고객 피드백 1회"는 측정할 수 있습니다. 명확한 검증 기준을 세우세요. 빠른 사이클로 돌리세요. 3개월 (X) → 2주 (O).
좋은 컨설턴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대표님. 정말 그게 문제일까요? 함께 다시 생각해봅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물어보세요.
- "우리는 진짜 문제를 정의했는가?" 증상이 아니라 원인을 찾았는가?
- "우리는 자원을 집중시키고 있는가?" 모든 걸 다 하려다 아무것도 못 하고 있지 않은가?
- "우리는 빠르게 검증하고 있는가?" 명확한 기준으로 2주 안에 확인하고 있는가?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틀렸습니다. 나쁜 진단에 동조했고, 추상적인 해결책을 제시했고, 검증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현장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면 이렇게 할 텐데. 문제를 다시 정의하고, 자원을 집중시키고, 빠르게 검증할 텐데. 루멜트를 머릿속에 초대해서 대화할 텐데. "왜 그럴까?", "진짜 원인은 뭘까?" 파고들 텐데.
과거는 바꿀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배울 수 있습니다. 과거의 실수는 현재의 깨달음이 됩니다. 그 깨달음으로 오늘을 다르게 살 수 있습니다.
진단을 다시 하고, 자원을 집중시키고, 빠르게 검증하세요. 과거의 최선을 돌아보며, 지금이라면 이렇게 할 텐데. 기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