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턴트의 학습법

서애 류성룡에게 배우는 생존의 무기

by 경영 컨설턴트 Tim

제가 속한 2BU(Business Unit)에서는 한 달에 한 번, 특별한 의식을 치릅니다. 바로 '월피미(월간 피드백 미팅)'입니다. BU장님과 마주 앉아 지난 한 달의 성과를 복기하고, 나의 성장 통증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다음 달의 목표를 조준하는 시간입니다.


오늘 월피미 때, 저는 BU장님께 꽤 절박한 고민을 토로했습니다. "센터장님, 저는 공부하는 게 너무 재밌습니다. 전략도 알아야 하고, 마케팅도 파야 하고, AI 툴도 익혀야 하고...그런데 공부할 게 너무 많아서 뭐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압도되는 기분입니다."


그때 BU장님은 복잡한 제 머릿속을 단 한 문장으로 정리해 주셨습니다. "Tim, 기본적으로 기준은 바로 '고객'이에요."


나의 지적 성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고객이 겪고 있는 아픔을 해결하는 공부가 먼저라는 것. 그 말씀은 망치처럼 제 머리를 때렸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역사 속 한 인물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전란의 한복판, 류성룡은 무엇을 공부했는가

1592년 임진왜란. 조선은 불타고 있었고, 백성은 굶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조선의 엘리트였던 사대부들은 평생 '성리학'을 공부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공부란 우주의 원리(이기론)를 논하고 도덕적 명분을 쌓는 고상한 행위였습니다. 전쟁터 한복판에서도 그들은 습관처럼 경전을 읊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당시 전시 재상이었던 서애 류성룡은 달랐습니다. 그는 평생 읽어온 공자와 맹자의 책을 잠시 덮었습니다. 대신 그가 손에 든 것은 흙먼지 묻은 기술 서적들이었습니다.

- 왜군의 조총에 맞서기 위해 '화약(염초) 제조법'을 연구했습니다.

- 무너진 성을 빨리 복구하기 위해 '축성술'을 팠습니다.

- 굶주린 군사들을 위해 '군량미 보존법'을 익혔습니다.

당시 양반들에게 이런 기술은 '천한 것들이나 하는 잡기'였습니다. 하지만 류성룡에게 이것은 천한 기술이 아니라, 내 고객(백성)을 살릴 유일한 '생존 지식'이었습니다.


지적 유희(Just-in-Case) vs 문제 해결(Just-in-Time)

우리는 흔히 'Just-in-Case(만약을 대비한) 학습'의 함정에 빠집니다. "언젠가 쓸모 있겠지", "요즘 이게 트렌드라니까"라며 지식을 다람쥐 도토리 모으듯 쌓아둡니다. 물론 나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이 과해지면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머리만 비대한 '평론가'가 됩니다. 이것은 학습이 아니라 '지적 유희'입니다.


반면, 류성룡의 방식은 철저한 'Just-in-Time(적시) 학습'이었습니다. "지금 눈앞의 적을 막아야 한다(문제). 무엇이 필요한가? 화약이다(도구). 그럼 오늘 밤은 화약을 공부한다(학습)."


BU장님의 조언도 바로 이 맥락이었습니다. 컨설턴트가 클라이언트의 '매출 하락'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면서 거시경제학을 논하는 것은, 전란 중에 화약 대신 성리학을 논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페인 포인트가 커리큘럼을 결정한다

저는 제 노션(Notion)의 독서 리스트를 뒤엎었습니다. '읽고 싶은 책' 목록을 지우고, '고객이 묻는 질문'을 적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공부의 범위는 좁아졌지만, 깊이는 훨씬 깊어졌습니다. 내 지식이 누군가의 고통을 즉시 해결해 줄 수 있다는 효능감. 그것이 학습을 지속하게 하는 진짜 엔진이었습니다.


지식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은 분들에게, 류성룡과 저의 BU장님이 주신 나침반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고개를 들어 '고객'을 보십시오. 고객이 비명을 지르는 그 지점, 그 페인 포인트가 바로 오늘 펼쳐야 할 교과서입니다.


지식은 머릿속에 쌓아두는 장식품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살리고, 돕고, 일으켜 세우는 날카로운 '무기'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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