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으나 양심 없는 사회

conscious vs. conscience

by 루인

얼마 전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님의 강연 영상을 보며 한 단어가 떠올랐다. 바로 conscience(양심)이다.


‘자신의 행위를 비판하고 반성하는 내면의 도덕의식’이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는, 학창 시절 나를 곧잘 헷갈리게 했던 conscious(의식이 있는, 의도적으로 하는)와 늘 짝을 이루었다. 철자도 비슷하고 발음도 헷갈려, 영어 지문 속에서 두 단어를 볼 때면 늘 긴장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이 두 단어가 헷갈렸던 이유는 단순히 철자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예전에도 없지 않았지만 요즘 우리 사회에는 ‘의식(consciousness)’은 있지만 ‘양심(conscience)’은 부재한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익에는 민감하게 의식적(conscious)으로 반응하면서도, 그 선택이 옳은가를 묻는 양심(conscience)의 목소리에는 귀를 닫아버린 사람들 말이다. 그런 시대 속에서 최근 내가 경험한 몇 가지 장면들을 나누어 보고자 한다.




2026학년도 대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교실의 공기는 잔뜩 가라앉아 있다. 문제지를 넘기는 소리만 간간이 들리고, 담임교사들은 조용히 출석을 확인한 뒤 교실을 빠져나온다. 공부에 몰두하는 학생들의 뒷모습을 보면 대견하면서도 안쓰럽다.

하지만 이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공부하겠다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그들은 학교에서는 공부가 되지 않는다며, 외부 스터디카페나 독서실을 이용하려 한다. 그러나 제도상 재학생의 무단 조퇴나 결석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때 부모님들이 그들의 든든한 조력자로 등장한다. ‘자녀의 학습권’을 이유로 학교에 각종 서류를 제출한다.


가장 흔한 방법은 병원 진료기록이다. 감기, 비염, 복통 등 가벼운 질환으로 매번 진료 확인서를 제출해 질병 결석으로 처리받는다. 물론 실제로 아픈 경우도 있다. 하지만 거의 한 달 내내 ‘감기 진료’를 이유로 서류를 제출하는 학생을 보면 말문이 막힌다.


매일 병원에 가는 게 번거롭거나 비용이 부담되는 이들은 ‘요양 소견서’를 제출한다. “몇 주간 안정이 필요하다”는 의사 소견을 이유로 등교를 중단한다. 단순 근육통이나 안과 질환으로 몇 주씩 결석하는 사례도 있다.


또 다른 유형은 ‘현장체험학습’이다. 가족 여행이 목적인 경우 체험학습 신청서를 제출하고, 체험 보고서와 사진을 첨부해야 한다. 그런데 학생이 아닌 부모님이 대신 내용을 거짓으로 작성하고, 심지어 합성한 사진을 첨부하는 경우도 있다.




이 모든 행위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의식’하고 있지만, 그것이 옳은 일인가를 묻는 ‘양심’은 작동하지 않는다. 그리고 학교는 이들의 항의를 두려워해 침묵하고 그들의 요구를 수용한다. 결국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 지금의 공교육은 ‘의식은 있으나 양심은 없는(conscious but not conscientious)’ 체제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공교육이 무너졌다”는 말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 그 말이 유독 실감 난다. 학교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안에서 양심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간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지식이 아니라 conscience — 내면의 기준이다.


의식만 남은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이제는 모두가 자각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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