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레터 <바다로 간 고래>
심리학에는 ‘가능한 자기 possible self’라는 개념이 있어요.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내가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는 가능성의 나. 그 ‘가능한 자기’는 때로는 내가 직접 떠올리는 환상이나 바람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의 말 한마디, 아주 사소한 장면에서 문득 내 안에 일어나는 변화의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그림책 《바다로 간 고래》 속 고래 ‘웬즈데이’는 그저 유리 어항 속에 살며 바다라는 세계를 알고는 있지만 가닿을 수 없는 꿈처럼 여겨요. 그 바다로 향할 용기를 불어넣어 준 건, 다름 아닌 소녀 파이퍼의 말이었습니다.
“진짜 너의 집은 여기가 아니야. 진짜 너의 집은 바다야.”
두번째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의미 있는 타자(significant other)'는 우리의 정체성과 방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을 뜻해요. 그들은 때로 교사, 친구, 가족일 수 있지만,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진심 어린 믿음을 심어주는 존재. 그 소녀의 말은 웬즈데이에게 '내가 될 수 있는 나'를 상기시켜 주었고, 그건 단지 격려가 아니라 심리적 전이의 시작점.
바다로 나아가겠다는 결심,
실패해도 한 번 더 뛰어오르는 추진력,
그리고 결국 자기를 회복하는 도전.
이건 곧 회복탄력성(resilience)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단지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보다 더 나답게 성장하는 것.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삶에서 일어나는 충격이나 전환을 더 단단한 자기 이해와 선택의 기반으로 삼을 수 있겠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의 마음 안에는 한때 웬즈데이처럼 머물러 있던 시절이 있고, 파이퍼처럼 새 바람을 불어넣어 준 존재가 있었으며, 언젠가 나를 바다로 이끈 용기의 순간이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우리는 어디쯤 와 있을까요. 나는 나의 바다를 향해 가고 있을까요. 혹은 아직 어항 안을 두리번거리며 망설이고 있을까요. 그림책 한 권이 저의 내면을 다시 들여다보게 하고, 이미 지나간 줄 알았던 감정에 숨을 불어넣어 주는 것 같아요. 이 책 통해 저는 다시 한 번 “있는 힘껏 뛰어오르는 연습”을 시작해봅니다. 누구의 방식이 아닌, 진짜 나다운 속도와 방향으로.
그러니 혹시 당신 곁에도 새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면, 그 바람을 잠시 멈춰 서서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어쩌면, 당신만의 바다를 향한 시작일지도 모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