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글을 쓰고 말을 할 때면
가끔은 너무 깊은 마음을 꺼내 놓는 건 아닐까
돌아보기도 하지만,
그조차도 결국은 저를 이루는 정체성이기에
이제는 조금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지만요.
12월이 오면 저는 자동으로 외할머니를 떠올립니다.
10년 전 여름, 친정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고
그해 12월의 겨울, 외할머니까지 곁을 떠나셨어요.
한 해에 가장 사랑했던 두 분을
한꺼번에 잃는다는 건
말로 다 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이었어요.
그래서 그림책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는데》는
저에게 아주 개인적인 책입니다.
그림책 속 아기 여우처럼
저 역시 그해 돌아가신 두 분께
'미처 하지 못한 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할머니가 너무 지쳐 보여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요. 아무 말도요.
그림책 속 아기 여우는
침대에 누워 계신 할머니를 바라보며
고개를 푹 숙입니다.
저에게 있어
할머니의 죽음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건
할머니의 빠르게 늙어가는 모습이었기에
그림책 속 여우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침대에 누워 있는 할머니는 우리 할머니 같지 않았어요.
너무 작고, 너무 연약해 보였거든요.
하지만 방 안 가득 따스한 할머니 냄새는 여전했어요
병실에 누워 계신 외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근육이 빠져나가 힘이 없던 무릎,
골다공증으로 인해 걷기 힘들어하셨던 모습.
흐트러짐 없이 까맣던 머리는 새하얀 백발이 되었고
늘어가는 깊고 짙은 주름은
죽음이 할머니 곁을 배회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지요.
오늘 아침, 할머니에게 편지를 썼어요.
할머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할머니 집에 다녀온 엄마가 말했어요.
할머니가 멀리 떠났다고요.
이제 다시 돌아올 수 없다고요.
돌아가시기 전 사제인 동생에게
할머니는 병자 성사를 받으셨습니다.
눈물로 범벅이 되셨던 할머니와 동생의 얼굴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사제이기 이전에 손자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
견뎌낸 몇 번의 태풍을,
맑고 푸르렀던 할머니의 지나간 시절에 감사함을,
거대한 태풍과 같은 삶에서 잘 살아남았음에 감사함을
이야기 하셨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흘러가는 강물을 붙잡을 수는 없어요.
흘러가는 시간처럼 그저 지나가는 것이니까요.
10년 전 그 해, 뜨거웠던 여름과 추웠던 겨울은
저에게 너무 갑작스러웠고, 너무 아팠고,
그 해 잊지 못할 장면들이 저에겐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상실의 한복판에 있을 때는
슬픔 속에서 허우적 거리지만
그 모든 계절을 통과해보니
슬픔이 저를 완전히 집어삼키지는 못하는
단단한 지지 체계가 있었다는 것을 말이죠.
어쩌면 정서 안정성(Emotional Stability)의 힘이란,
그럴 때 발휘가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슬픔을 피하지 않고 바라보되,
슬픔이라는 바다에서 나를 잃지 않는 힘.
이 단단함은 누가 대신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닌,
살면서 쌓여진 사랑의 흔적들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 준 마음의 내성 같은 것.
그림책 제목처럼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너무 늦어버린 마음이 되어버린 말.
지금 두 분 모두 살아 계시다면
'나도 마흔 중반 쯤 되어보니 10년 전 그땐 몰랐지만
지금은 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고 말 하고 싶습니다.
그림책은 그렇게
제가 전하지 못한 말을 대신 말을 건네줍니다.
오늘 아침, 할머니에게 편지를 썼어요.
해님이 점차 모습을 감추더니, 숲이 고요해졌어요.
살면서 모든 이별은 언제나 애착을 떼어내는 고통과 닮아 있습니다.
관계의 끝, 꿈의 좌절, 다양한 상실의 여러 얼굴들…
그 모든 경험은 어쩌면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지만
또한 우리가 성장하는 방식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삶의 모든 형태는 흐름 속에 녹아듭니다.
꽃은 피고 지고, 해는 떠오르지만 저물고,
만남도, 머무름도,
결국에는 사라짐을 향해 걷고 있는 것.
사라져버려 미처 하지 못한 말,
그때 전하지 못한 사랑을 그림책을 보며 꺼내봅니다.
그 말들은 비록 늦었지만
지금도 제 안에서 계속 자라고 있고,
받은 사랑은 누군가에게 다시 건네고 싶은
제 안의 다정함의 근원이 되었다는 것을요.
슬픔은 사람을 유연하고 단단하게 만듭니다.
육체를 위해서는 운동이 필요하지만,
영혼을 위해서는 슬픔이 필요한 듯 합니다.
기쁨이란 감정은 밖으로 발산 시키는 감정이라면
슬픔이란 밖에서 안으로 수렴하는 감정이라 생각해요.
만일 올해,
큰 슬픔을 경험하신 분이 계시다면
비가 내릴 때마다 젖지 않으셨기를,
건드리기만 해도 쓰러지는 사람이 되지 않으셨기를,
그저 물방울처럼 투명해져
스스로를 속이지 않으셨기를 바래봅니다.
저는 올해의 남은 12월은 가는 것들과 헤어지고
다가오는 것들을 열렬히 환영하는 마음으로
내년을 기다립니다.
다만, 커다란 슬픔을 겪어낸 경험이 있는 저는
가수 로이킴의 노래 말처럼
좋은 일만 있게 해주세요 했던
어린 시절의 마음이 아닌,
아무 일도 없게 해주세요 라고 하는
조금은 서글픈 마음으로....:)
*이 글은 매주 목요일,
레피움에서 발행되는 [그림책레터]의 기록입니다.
더 많은 분과 나누고 싶어 이곳 브런치에도
차곡차곡 쌓아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