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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주문

그림책 레터 <이까짓 꺼!>

by 여울빛

단톡방에서 누군가 이야기합니다.

뭐 한 것도 없는데 시간만 잘 간다고,

그렇게 벌써 한 달이 지났다고...


듣고 있던 저는 올해가 다 가기 전,

뭔가 해야겠다 다짐한다 했더니

다른 누군가는

스트레스 받으니 다짐하지 말고 그냥 하라고..

그냥 하면 된다고..

마지막으로 누군가는 이야기 합니다.

" 그냥 이끌리는 대로 하세요.." 라고..


8월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으니

올해도 어느새 네 달 밖에 남지 않았음에

제 마음이 종종걸음칩니다.

그러다 ‘다짐하지 말아라, 이끌리는 대로 해라~ ’ 라는

조언들에 마음이 놓입니다. :)


개인적으로는 유난히 혹독하게 통과하고 있는 올해,

다가오는 하반기와 내년이 설레임 보다는

두려움으로 다가와요.

그래서 오늘은 마법의 주문을 저에게 걸어봅니다.

‘ 이까짓 거! ’ 라고..


< 이까짓 거! > 글그림 박현주 / 이야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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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까짓 거!” 비장한 외침과도 같은 말.

쉽지 않은 세상 살이로 인해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

오늘 따라 참 제 마음에 쏙~ 드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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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을 미처 챙겨 오지 못한 소녀가

걱정스럽게 비 오는 창밖을 바라봅니다.

표정을 보니 아이는 우산을 챙겨 오지 않은 듯 하고,

하교하는 아이들은 신이 나 우르르 복도를 뛰어갑니다.

쏟아지는 비를 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망설이는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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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같은 반이었던 준호가 나타나요.

드라마처럼

멋진 남자친구가 우산을 씌워주는 건 아니구요. ^^

소녀처럼 우산을 갖고 오지 않은 준호는

망설임 없이 비를 뚫고 나섭니다.

"넌 안 가냐? " 하는 말과 함께...


그렇게 소녀는 준호 뒤를 따라 달려요.

가방을 머리 위에 쓰고 최대한 빨리~

타닥타닥탁탁탁탁탁탁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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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빛으로 둘러싸인 세상 속,

색을 가지고 있는 존재는 단 두 사람.

그렇게 함께 비를 맞으며

문구점까지, 편의점까지,

분식점까지, 피아노 학원까지

두 아이는 빗속을 신나게 달립니다.

이제 소녀의 얼굴은 자신감이 충만하고

비 맞음이 어느새 하나의 놀이가 된 듯 해요.

그렇게 피아노 학원에 도착하자

세상 쿨하게 떠나는 준호.


거리에는 여전히 비는 쏟아지고 있고,

함께했던 준호는 이제 없어요.

길에는 우산을 쓴 많은 사람들이

밀물과 썰물처럼 오고가고..

처음처럼 소녀는 다시 혼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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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젠 달라진 소녀.

이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란 걸 이제 알았으니까…

소녀는 혼자 빗속을 힘차게 달립니다.


“얘, 우산 없니? 같이 갈래?”
“괜찮아요!“

그렇게 회색빛 어두웠던 하늘이

다시 노란 빛깔로 물들어요.


저는 맑은 날도 좋아하지만

흐리고 비오는 장마철도 참 좋아해요.

쏟아지는 폭우를 뚫으며

볼륨을 한껏 올린 뒤 드라이브를 하면

마음 깊은 곳까지 촉촉한 비와 음악이 스며들어요

그게 뭐라고.. 그리도 행복한지..


아.. 그러고 보니

아주 옛날 누군가 보내준 문자 메세지도

기억에 남습니다.

“창~ 문 두드리며 비가 오네. 눈물의 빗줄기~”

노래 가사를 애니콜 핸드폰 문자로

빗줄기와 음표를 그려 보내준 누군가.. ^^

그 문자를 보며 참 정성들여 그렸다 생각을 했었지요.


친구들과 가위바위보를 한 뒤,

진 사람 빗속에 1분 동안 서 있기 벌칙을 하며

깔깔 댔던 날들..

장마철 되면

비 오는거 좋아하던 승연이 생각 난다고

한번씩 메시지 주던 누군가도.............


어어어어어!!

잠들어 있던 기억들이 다시 한번 구름같이 일어납니다.....

그러고 보니 제 생의 장면 장면 속 비 내림의 기억은

단순한 장마철 비가 아닌 인생 이야기.


살다 보면 나쁜 일이 꼭

나쁨 패키지 상품처럼 몰려올 때가 있어요.

그것은 꼭 장마철 비처럼 쏴아아아아~~ 쏟아집니다.

그럴 땐 모두가 방패 같은 우산을 단단히 들고 갑니다.

나는 우산이 없는데..

나는 우비도 없는데.....

어쩌지...


꼭 낙오자가 된 것 같기도,

실패자 가 된 것 같기도 하는 날들...

그러니 그림책 속 소녀가 바로 저이고, 우리가 아닐까요..


소녀는 누군가와 함께 비 맞으며 뛰어보니

생각보다 별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함께한 경험 덕분에 작은 용기가 커져가고

이제는 혼자 나의 속도에 맞춰 뛰어갈 수 있는 것.


가끔은 준호처럼

그렇게 떠나는 누군가 때문에 서운할 수도,

실망할 수도 있지만 저는 저만의 길을 가야하겠지요.

그게 인생이니까.

그게.. 인생이니까요...


8월을 마무리하며 반년을 돌아봅니다.

때로는 장대비가, 때로는 먹구름이,

때로는 볕이 쨍 한 날들.

그때 함께 비를 맞아주었던 이들이 있었고

흠뻑 비를 맞아 당황스러워 어찌할 줄 모르고 있을때

우산을 씌워준 이도 있었고


글을 쓰는 이 시간에는 잊고 살았던 기억이

한꺼번에 구름같이 떠올라 혼자 미소짓게 됩니다.

아.. 내가 그 힘으로 살아가고 있구나~ 하면서 말이죠.

:)


그러니 비 좀 맞으면 어떻습니까.

이까짓 거.

때로는 함께, 때로는 혼자,

이까짓 꺼!를 외치며

묵묵하게, 담담하게 저의 길을 걸어야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안간힘을 쓰며 살아요.

하지만 너무 안간힘을 쓰고 애쓰면

언젠가는 부러지고 , 넘어지고, 엎어질 꺼에요.


하지만 비는....

언젠가 그칩니다.

때가 되면 그쳐요.


그러니 그때까지..

비가 멈출 때까지....

그렇게 견뎌내야겠습니다.


“ 이까짓거!” 를 외치며,

비 오는 날이면 너를 기억한다는

마음을 담은 메세지들을 기억하며...

함께 추억을 쌓아 올려

그 힘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준

그리운 이들을 기억하며......


맞습니다. 그러고보니

제 곁에는 함께 비 맞아줄 사람이 늘 있었고,

제 삶 안에서는 늘 사람이 풍경이 되어

마음을 쏟을 수 있는 순간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하여 다시 한번 글을 마무리하며

이까짓 비쯤 얼마든지 나 혼자서도 부딪힐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함을...


마법의 주문을 외워봅니다.

" 이까짓 거!! " �


" 여러분은 비를 온 몸으로 맞아야만 했던 시절,

어떻게 견뎌내셨나요?


노하우를 알려주신다면 앞으로 쏟아질 장대비를

저도 잘 대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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