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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기똥찬 순간을 만나고 싶을 때는

그림책 레터 <이렇게 멋진 날>

by 여울빛

무덥고 습한 날들이 계속되어

지치는 날들이 연일 계속되고 있으니

오늘은 긍정의 에너지에 절로 기분 좋아지는 그림책

<이렇게 멋진 날>을 소개합니다.

글 리처드 잭슨 그림 이수지 /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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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를 보니 먹구름 잔뜩 낀 하늘을

우산을 쓴 남자아이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첨벙첨벙, 찰방찰방

가볍고 신나는 발걸음으로 걸어가요.


아이 앞으로 폴짝 뛰어가는 강아지 발자국 소리도

파랗게 파랗게 들려오는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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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 시원하게 창밖으로 비가 내려요.


“ 이렇게 멋진 날이면...

우리는 춤을 춰.

뱅글뱅글 돌았다가

넓게 한 바퀴 더 빙그르르르.. ”


집안에만 무료하게 있던 삼 남매는

어느 순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지휘하는 오빠의 모습을 시작으로 몸을 풀어요.

비가 내리는 창밖은 여전하지만

흐르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아이들은

더없이 행복한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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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신명 나게 춤을 추고 나니

먹구름의 하늘은 걷히고

찬란하고 황홀한 햇살로 세상이 가득 채워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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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르르르 빛나는 햇살 속에서

바람을 타고

미끄럼도 타고

우리는 이렇게 반짝반짝 빛나! ”


그림책을 보며 아이가 어렸을 때

우산도 쓰지 않은 채 샌들을 신고 첨벙첨벙 ,

“까르르르르~” 웃으며

마구 뛰어다녔던 기억이 나요.

말리기는커녕 저는 그 웃는 모습이 너무나 예뻐

함께 비를 맞으며 깔깔깔~ ㅎ


어느 날은 수건으로 닭다리 만드는 법을

삼촌에게 배우더니

스스로 만들어 보겠다며 집안에 있는 수건 몇십 장을

모두 꺼내 닭다리를 만들어 늘어놓기도 했고요~ ㅎ


지금 생각해 보면

저는 아이가 어렸을 때 참 자유롭게 키웠던 것 같아요.

환경오염이 어쩌고.. 위험하건 말건..

안 죽어, 괜찮아! 놀아야지!

제한 없는 시공간 속에서 자유롭게 세상을 누려라~ 가

제 육아 방침이었으니까요 �


아이가 개학하기 며칠 전,

고성으로 저와 단 둘이 여행을 함께 다녀왔답니다.

조식으로 나온 전복죽을 먹으며 아이가 얘기하더군요.


“나 어렸을 때 엄마가 전복 사 오면 같이 놀았었는데..

지금도 기억나”

전복죽을 끓이려 전복을 사 오면

호기심 가득한 눈을 하는 아이에게 전복 한 마리를

꼭 내주었어요.

움직이는 전복을 아이와 함께 탐색하며

즐겁고 신이 났던 시간들...


벌써 10년도 훌쩍 더 된,

아주 어렸을 적 이야기인데 순간 울컥~! 했답니다.

“맞아! 기억하는구나.

생각해 보면 대희랑 같이 엄마도 참 재미있게 잘 놀았어.”


하지만 뒤이어 아이가 날리는 팩폭!!

“그랬던 엄마가 지금은 변했지”

하.. 아이가 고등학교 2학년이니 저도 입시생 엄마인지라

잔소리를 자꾸 하게 되는 현실...

저도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반성, 반성..) �


아이는 종종 얘기해요.

지난 ' 멋진 날'을 회상하면서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들을..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이제는 훌쩍 커버린 아이가 기억하는 순간들이

거창하게 계획 세워 매년 떠났던 해외여행 보다

일상에서, 자주 반복해서 떠났던 곳 에서의

‘멋진 날' 들이라는 것!!


너무나 사소한 기억들인 줄 알았는데

차곡차곡 쌓인 날들의 행복의 경험들이

아이의 내면에 쌓여

이 세상이 생각보다 참 괜찮은 곳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같습니다.


아이가 했던 허튼짓, 장난, 까불기는 바로

세상을 배우는 법이 아니었을까요.

탐색해 보고, 저질러보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지켜보며

세상을 배우고, 삶을 알아갔던 것.

그리고 이제는 그 추억들이

대화로 이루어지는 시기가 왔네요 :)


우리의 삶은

알아감과 살아감 속에서 시작되고 마감이 됩니다.

살아가면서 만드는 것이 ‘삶’이고,

알아가면서 만드는 것이 ‘앎’인 것.


삶에 집착하여 살아가고

삶을 깨달으며 알아가는 여정이

곧 배움이며

아이들에게 있어 그 배움은

온몸으로 누리는 ‘놀이’라는 것.


저는 마흔이 훌쩍 넘었지만

그림책을 보며 문득, 다시 한번

신나게 놀아보고 싶습니다.


비가 쏟아지는 날 비를 흠뻑 맞으며 뛰어보고 싶고,

윤슬이 가득한 호숫가를 지나가다 수영도 해보고 싶고,

두꺼운 외투를 입은 채 눈 밭을 쉼 없이 구르고 싶기도,

풍성하게 쌓여있는 낙엽들 속에서

허우적거려보고 싶어요. :)


혼자는 용기가 없으니 곁의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자고 꼬셔 봐야겠습니다. ㅎ


지난주 누군가 감동의 메시지를 보내주었어요.

아주 오래전, 한강에 비스듬히 누워

하늘도 보고 강도 보며 맥주 한 캔 했던 그날이

생각날 때가 있다며...


가끔 이렇게 잊고 살았던 멋진 날을

다시 추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소중한 이들이 있어요.

세월이 흘러 가물가물하기도 하고,

사는 게 바쁘니 잊고 지냈던 숱한 멋진 날 들..

더불어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제 모습을

예쁘게 기억해주고 있어 너무나 고맙고 감사한 마음…


가끔은 제가 지금의 나이이면서도

때로는 다섯 살의 나이이기도 하고,

열일곱의 나이이기도 하고,

스무 살의 나이 이기도 한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내 게서 버려진 내가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면서...

과거의 무수한 멋진 날들로 지금의 제가 만들어졌겠지요.


그래서 생각합니다.

제 나이가 지금 마흔셋이니 50이라는 나이가 되기 전,

기억에 남는 기똥찬 멋진 순간 만들어 보고 싶다고..

그리하여 지금 보다 더 멋진 날들로 가득 채워

더욱 단단한 제가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지요.


오늘은 10년 전 아이가 했던 말로 끝을 맺어봅니다.

“엄마,

여름 방학의 단점이 딱 하나 있는데 그게 뭔지 알아?”

언젠가는 끝이 난다는 거야~” (2014년, 8월 4일 8살의 기록)


10년 후인 2024년 지금 저는,

아이의 여름방학이 끝나고 기숙사로 들어가

너무 신이 난 엄마가 되었네요. ㅎ

그리하여 멋진 날들로 다시 가을을 누리려는 생각에

마냥 즐겁기만 한 엄마... ��


" 이 글을 보는 여러분도

저와 함께 기억에 남는 기똥찬 날들

만들어 보지 않으실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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